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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기타노 다케시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기타노 다케시.
만담 코미디언, 배우, 영화감독.
생사, 교육, 예법, 관계, 영화에 대한 생각을 쉽고 솔직하고 간명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군더더기 없는 명쾌한 생각, 패러독스가 뿜어내는 진실, 진지함 가운데에서도 놓치지 않는 유머.
죽음의 고비를 넘긴 후 생에 대해 담담하게, 덤인 양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단지, 태양 뒷면에 숨겨진 소행성의 존재를 3일 전에 안다면 지구의 끝을 예견할 수 있듯이, 3일 전에만 죽음의 시기를 알았으면 좋겠단다. 죽고 나면 지우개로 지우듯 모든게 끝이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지만, 한편 물질이 아닌 진동의 기운이 지구에 넘쳐나는 걸로 보아, 어떤 영혼의 존재도 아예 부정할 수는 없다고 말하는 사람.
세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다고, 무조건적인 칭찬이 라이벌을 죽이는 방법이라고, 아이에게 아부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생애 최초의 벽, 세상엔 안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알려주는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고 한치의 흔들림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
서로가 힘들 때 도와주겠다는 마음은 우정이 아니라, 보험약관 같은 것이라며, 우정은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라고, 네가 힘들 때 나는 네 옆에 있겠지만, 내가 힘들 때 나는 너를 절대 찾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
몰입, 집중, 온 정신을 쏟아붓는, 자신을 위해 만드는 예술... 예술이 없어도 사람은 먹고 살고,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무슨 소용일까를 생각하면서도 영화를 만들지 않을 수 없는 사람.
진정한 어른의 예법과 수줍음, 절도와 배려.
반대의 심상, 정체되지 않는 자유로운 흐름을 추구하는 멋쟁이인 듯.
그를 알고 나니, 영화 '하나비' 를 보고 싶다.
in book
물체는 심하게 흔들리면 그만큼 마찰이 커진다.
인간도 심하게 움직이면 열이 난다. 옆에서 보면 분명 빛나고 있는 인간이 부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빛나고 있는 본인은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묘한 이야기지만 인생의 기쁨과 슬픔도 근본적으로 그런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원래 아무런 색도 없다. 거기에 기쁨이니 슬픔이니 하는 색을 입히는 것은 인간이다.
누구에게나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는 결국 모든 실패는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더 노력하면 잘할 수 있다. 오늘 진 것은 노력이 부족했던 것 뿐이다' 아이들에게 계속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싹수가 노란 만화가 지망생의 귓가에다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잘될거야'라고 속삭여 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애정도 뭣도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놈은 안된다.
자유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테두리가 있어야 비로소 성립한다. 무엇이든 해도 좋다고 하는 세계, 즉 테두리가 없는 세계에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혼돈이다.
인간이란 아무리 폼을 잡아도 한꺼풀 벗기면 욕망의 덩어리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 한꺼풀의 자존심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문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