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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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영화 평론을 분명 몇번인가는 읽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해 그리도 멋지게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질투나 경외감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얼마나 사랑하면, 얼마나 영화에 시간을 투자하면

그런 글이 나올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 이면에는 책에 관한 한 쇼핑중독자임을 자인하며

이제껏 만권의 책을 사들인, 책에 미친 사람이 있었던 거다.

만권이라니... 상상할 수 없는 숫자다.

 

결국 그 답은 또 '책'이다.

한 꼭지의 글에는 그 사람이 읽은 책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책날개에 이런 문장이 있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살고 싶고,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살고 싶다'

 

한 문장만 보면 알 수 있다.

나와 동류인지...

이어질 문장에 대한 예감 같은 것.

 

빨간 안경을 선택한 것도 맘에 든다.

지금은 안경을 벗었지만, 안경 끼던 시절 내가 제일 좋아하던 색깔도

와인색, 아님 빨강색이었다.

이동진만큼 과감하지 못하고 끌리는 거와는 반대로

항상 무난한 갈색을 선택했었지만...

'Why not'

 

책날개를 읽고

책 마지막 부분의 인용도서목록을 복사하고

본격적으로 책읽기.

 

과학, 언어학, 문화사 , 통계학 등 다양한 책을 섭렵하지만

그 속에서 꼭 인문학적 통찰을 이끌어 내는 점이 좋다.

예를 들어 별이 빛나는 원리를 인용하면서

화려하게 빛나 보이는 삶도 알고 보면

소진되는 자멸의 과정이라는 것.

 

글쓰기와 사유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힘이

다양한 책읽기에 있구나...

 

라디오 DJ답게 다정하게 책을 읽어 준다.

'책 읽어주는 남자' 나의 로망 ㅋㅋ

 

나도 밤의 책읽기를 가장 사랑한다.

돈을 벌고 밥을 먹는 이유이기도. ㅋㅋ

비록 이동진처럼 야행성은 아니지만...

 

밤의 아이, 낮의 어른

밤의 개인적 자아, 낮의 사회적 자아 

직장에서의 나와 집에서의 나가 다른 건

내가 이중인격이어서가 아니다.

 

밤은 오롯이 나의 내면을 위한 시간...

 

 

변화의 순간은 일종의 의식(儀式)을 필요로 할 때가 많은데, 말하자면 제게 그 의식은 빨간테

안경을 사는 일이었던 셈이지요. 삶에서 변화란 원래 그렇게 아주 작은 것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찾아오는게 아닐까요.

 

그래서 미국의 사상가 랠프 애머슨은 '명성과 휴식은 한 지붕 밑에서 살 수 없다'고 했던

것이겠지요. 그러니 다시 한번, 업적 대신 일상이 있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요.

 

결과적으로 '무진기행'을 옮겨 적는 일은 그 시절 제게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디딜 수 있는

일종의 발판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몇 차례에 걸쳐 이 소설을 필사하곤

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은 나날들을 통과할 때였지요.

 

독일어로 된 심리학 용어 중에 '샤덴프로이데'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일어로 '피해'를 뜻하는

단어와 '기쁨'을 의미하는 단어가 결합된 이 용어는 번역하자면 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기는

감정을 일컫지요. 타인에게 어떤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날 때,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남모르게 안도를 느끼고, 그 일이 그에게 일어나고 내게 일어나지 않은

데에는 뭔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우월감을 느낀다고 할까요.

 

떨어져서 보면 무척이나 화려해 보이는 삶이라도, 그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 휘황함이 사실은

격렬한 에너지 소모와 붕괴의 흔적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빛은 결코 행복의 증거가

아닙니다.

 

결국 가장 진부하고 가장 상투적인 표현도 그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가장 신선하고 가장

효과적인 표현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제는 넌더리가 나도록 지겨워진 일도, 닳고 닳은 행동과

뻔한 습관으로만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 사랑도, 그 시작은 두근거림이었겠지요.

 

순수함에 대한 강조는 종종 순수하지 않습니다. 순수는 분명 고귀한 가치입니다. 그러나 순수에의

확신과 순수로의 강요는 위험합니다. 일체의 뒤섞임이나 소통을 거부한 채 순도 100퍼센트를

지향하는 근본주의적 태도에는 항상 불길한 그림자가 일렁입니다.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진퇴양난의

상황에 스스로를 대입해 볼 필요을 느끼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와 준엄한

눈빛으로 거듭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렇다면 안전하게 관전하며 비판의 과도한 권리와 자유를

누리는 구경꾼의 윤리는 또 어떨까요. 과연 누가 진짜 독수리일까요.

 

아무리 숭고한 가치라도 그게 단 하나의 덕목으로 추앙되거나 반드시 지켜내야 할 기준으로

강제될 때, 가치는 쉽사리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가치의 순도나

강도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가치들 사이의 균형과 평화로운 공존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종종 저는 제 책에 사인을 부탁하시는 분들께 '꿈보다 연민'이란 글귀를 함께 적어 드리곤

합니다. 연민보다 더 소중한 감정을, 저는 알지 못하니까요.

 

여행이나 산책이 삶에 유익한 것은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내가 없어도 그 자체로 아무 부족함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쓸쓸히 인정한 뒤에도, 저만치 혼자 피어 있는

꽃의 아름다움에 작은 탄성을 터뜨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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