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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익살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사람이란 것이 알 수가 없어졌고, 저 혼자 별난 놈인 것 같은
불안과 공포가 엄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웃 사람하고 거의 대화를 못 나눕니다.
무엇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랐던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저의 최후의 구애였습니다.
저는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도 아무래도 인간을 단념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익살이라는 가는 실로 간신히 인간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한테 간파당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존경받는다'라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저는 바른생활 교과서에 나오는 정의니 뭐니 하는 도덕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것입니다.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弔詞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그 사람은 말로는 '쓸쓸하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만, 무언중에 심한 적요감을 몸 외각에
한치의 두께는 될 기류 같은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면 이쪽 몸까지도
그 기류에 휩싸여 내가 가지고 있는 다소 가시 돋친 음울한 기류와 적당히 융합되어,
나의 몸은 공포에서도 불안에서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백치같은 매춘부 품 속에서 안심하고 푹 잠드는 그 느낌과는 아주 딴판이어서
- 저 창부들은 명랑했지요 - 해방된 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 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똑같은 관례를 따르면 된다.
즉 거칠고 큰 기쁨을 피하기만 한다면,
자연히 큰 슬픔 또한 찾아오지 않는다.
앞길을 막는 방해꾼 돌을
두꺼비는 돌아서 지나간다.
- 기 샤를 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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