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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림이다 - 동서양 미술의 완전한 만남
손철주.이주은 지음 / 이봄 / 2011년 11월
평점 :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 손철주와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이
듀엣곡을 부르듯 함께 쓴 책이다.
두 작가의 책을 이미 읽었었기 때문에
문장을 따라 가기가 더 편안하다.
책 편집과 구상을 참 잘했다는 생각.
김훈의 서문으로부터, 민트색 지면엔 손철주, 연보라 지면엔 이주은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까지...
'키다리 아저씨'를 읽던 어린 시절부터
다감한 편지글을 좋아한다.
손철주는 동양화, 이주은은 서양화에 이야기를 덧붙이되
봄,여름,가을까지 왔다갔다 이어지는 편지글의 형식이라
다정하기 이를 데 없다.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의 시선의 미묘한 차이가
글을 읽는 잔재미를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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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나며 날마다 빈 화폭과 마주서는 자들은 고통 속에서 복되다.
빈 화폭은 귀순하지 않은 자유의 황무지이다. 그 화폭은 인간의 세상 속에
펼쳐져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빈 화폭은 아직 경험되지 않은
낯선 공간이고, 태어나지 않은 의미의 잠재태이다.
그 잠재태의 공간이 인간을 손짓해 부른다.
거룩하고 위대한 것이 아름다운 것은 맞는데, 저는 아름다움에 깃든 슬픔 쪽으로
자꾸 마음이 갑니다. 바로 '비장미'입니다. 그림도 비장한 아름다움이 감지될 때 좋습니다.
'초속 5 cm'라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혹시 보셨는지요? 초속 5cm는 벚꽃의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땅위로 떨어지는 현기증 나도록 아찔한 순간의 속도랍니다.
자기보존적이면서 성애적인 것이 합해진 삶에의 본능을 에로스(Eros)라 하고,
자기파괴적이면서 궁극적인 소멸로 치닫는 충동을 타나토스(Thanatos)라고 합니다.
물론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살기 위해 자기 꼬리를 먹으며 배를 채우는 뱀의 모습처럼
서로 둥글게 연결되어 있어요.
'이제 모든 게 쉬워졌군. 이렇게 쉬운 건지 왜 몰랐을까' 헤밍웨이가 쓴 저 유명한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대사이지요.
동양의 감필법에 무슨 장점이 있을까요? 뜯어보면 서양화와는 결이 다른 본색이 숨어
있습니다.
첫째, 거칠고 호방한 가운데 필과 묵이 살아있지요.
둘째, 서투른 가운데 법도를 지킵니다.
셋째, 괴상하고 허탄해도 이치에 맞습니다.
넷째, 허로써 실을 감당합니다.
다섯째, 평이하고 담담해도 의미가 깊습니다.
인상과 달리 환영은 이중적입니다.
완벽한 닮음이란, 그러니까 나를 대신하는 일종의 분신을 만든다는 것은,
거울 속의 세상처럼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할 가능성을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대상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함으로써 세상은 둘로 갈리게 됩니다.
그림 안의 세상과 그림 바깥의 세상으로 말이지요.
서양의 그림은 내가 사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문이기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른 세상을 향해 여는 창문이기도 합니다.
창을 가진 컴퓨터가 서양에서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니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