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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5,000원이다.
엄청나게 저렴한 가격이다. 아름다운 문장과 깊은 사유에 비하면...
'10년 동안 장자를 읽으며 마음의 상처들이 아무는 것을 지켜 보았다.
마침내 고요해졌다. 고요해졌으므로 물 같은 사람이 되었다.
물은 유약하나 그 유약함의 덕성으로 세상의 강성한 것들을 능히 이긴다.'
장석주 시인의 책을 두번째로 읽다. '취서만필'에 이어.
이 작가도 리뷰를 읽지 않은 채, 그 이름만으로 독서목록에 추가한다.
심플하고 명징한 시 '대추 한 알'도 좋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절로 둥글어질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올해 들어 '장자'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나이는 언제일까.
난 올해 들어 그렇게 느낀다.
이제 삶보다는 죽음을 더 의식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하고...
여전히 나는 빛나는 삶을 사랑한다.
아이의 살 냄새, 달콤한 믹스 커피 향, 머리칼의 샴푸 잔향
또렷한 아이의 목소리, 이른 아침 출근길의 새 소리, 운전하며 듣는 심장 소리 같은 클래식 음악
단어를 알지 못하는 아이의 글자, 줄기차게 접어 대는 색종이...
그렇기에 더더욱 죽음이 두렵다.
모든 것의 부재, 종결... 필연...
'장자' 원문을 읽기엔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섣불리 읽지 못했는데
장석주 시인이 이런 책을 냈다 하니 바로 집어 들었다.
인천 출장길 케이티엑스에서 반을 읽고
오늘 심란하고 소란한 밥벌이의 고통으로 가득한 사무실을 못 견뎌 내리 마신 커피 때문에 잠 못 이뤄 마저 읽고 이 글을 쓴다.
장자의 도는 내가 미처 생각지도, 실행하지도 못할 지혜와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
그걸 따라할 엄두는 내지 못하겠다.
그렇지만 그 자유로움, 경계를 넘나듬, 대범함, 현란한 비유는 실로 아름다워
그 자체로 글을 읽는 즐거움이 무한하다.
장석주의 문장도 마찬가지.
작가는 안성에 수졸재라는 집을 짓고 10년 넘게 책읽고, 글쓰고, 산책하며, 명상하며 지낸다.
벽오동나무, 층층나무, 회화나무, 보리수, 산벚나무, 매화나무, 앵두나무, 살구나무 들을 키우며...
그 10년 동안 머리맡에 '장자'를 두고 하루도 빠짐없이 이를 읽었단다.
따라서 이 책의 가격은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5천권의 독서량이 녹아 있는 책이 아닌가.
이런 책을 써야 한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어야 한다.
생애에 그 많은 책들을 다 읽을 수 없을 바에야
엄선된 책을...
올 겨울은 고독 속에 나를 밀어 넣고 자기극복과 궁구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생명들도 땅 속에 엎드려 움츠리는 계절이니...
(작가는 여자는 고독을 두려워한다고 했지만 말이다. 여자라고 쇼핑과 수다스러움과
우울함에만 빠져 있으라는 법은 없지... 요 부분은 조금 맘에 안 든다. ㅋㅋ)
탐욕을 그치고 마음을 지극한 고요에 이르게 할 일이다.
'나는 지난 10년동안 장자를 머리맡에 두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읽었다.
이 암울함이 암종처럼 자라는 시대에 책이 무슨 도움이 되느냐?
오늘의 시대야말로 책에게 귀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책은 삶과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책은 이 뜨겁고 평평하고 붐비는 세계 속에서 삶을 근본에서 짚어보고
최적의 생존에 맞는 자기혁신과 영감에 대해 말한다.
책에서 우리가 배우고 익힐 것은 존재의 기술이다. 존재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떻게 지혜롭게 존재하느냐를 찾아야 한다. 이의 핵심은 자기 탐색과 자기생성의 기술이다."
잘 모르겠다. 난, 내가 미친듯이 책을 읽는 이유를...
그렇지만 그 이외에 달리 무얼 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