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쇼코의 설명에 따르면, 몇십년에 한 번, 온 세계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으로 흰사자가 태어난다고 한다.

극단적으로 색소가 희마한 사자인 모양인데,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터라, 어느 틈엔가

무리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 하지만, 그들은 마법의 사자래, 무리를 떠나서, 어디선가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초식성이야. 그래서, 물론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단명한다는 거야. 원래 생명력이 약한

데다 별로 먹지도 않으니까, 다들 금방 죽어 버린다나 봐. 추위나 더위, 그런 요인들 때문에. 사자들은

바위 위에 있는데, 바람이 휘날리는 갈기는 하얗다기보다 마치 은색처럼 아름답다는 거야."

 

그녀의 정신병이 정상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증명서를 가진 쇼코

그가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가진 무츠키

그리고 무츠키의 방에 가서 일주일동안 수많은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밤을 그린 곤...

 

그들은 은사자 무리다. 외로운, 섬세한 영혼의...

다른 사자들과 어울려 살 수 없는...

 

이 책을 읽으니, 몇 년 전에 보았던 영화 'gloomy sunday'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이상하게만 보이는 공존...

그렇지만 아름다운 공존...

 

남편이 호모인 이야기라고 줄거리를 들어서

그동안 읽고 싶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민경 언니는 이 책이 에쿠니 가오리 중 제일 좋다고 하였고

주현이는(그 우울하다는 느낌을 모르겠다던) 이 책을 읽고 한동안 '센치'한 기분에

빠져 있었다고 하길래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하긴 주현이는 나더러 '언니는 에쿠니 가오리를 끊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에쿠니 가오리를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움이 커진다.

나는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무츠키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시작한 결혼이지만

그를 사랑할수록 점점더 갈망하고 의지하게 되는 쇼코

무츠키에겐 곤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고 곤과 함께하는 이상한 공존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곤은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는 무츠키...

 

외로운 은사자들의 이야기...

 


이런 결혼 생활도 괜찮다, 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 불현듯, 물을 안는다는 시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점점 더 무츠키한데 의지하게 될 것이다.
엷은 커피는 뜨겁고, 건포도는 부드럽고 달콤하다. 기름과 설탕맛이 나, 나는 또 울고싶어졌다.

마치 물의 우리처럼, 부드러운데 움직일 수 없다. 무츠키는 내 기분을, 나는 무츠키의 기분을, 이렇듯 또렷하게 알 수 있다. 하네기를 불러낸 일로도, 휴대폰이 울린 일로도, 나는 이미 무츠키를 비난할 수 없다. 눈꺼풀에 느껴지는 무츠키의 손가락, 왜 우리는 이렇게 늘 서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일까.  

그날부터 곤은 매일 찾아왔어. 한 일주일 정도 지나 그림은 완성되었는데. 일부러 내 방까지 와서 그렸으니까. 틀림없이 무슨 특별한 그림일 거라고, 어쩌면 나의 초상을 그렸을지도 모른다고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그냥 밤하늘을 그린 그림이잖아. 어둠 속에 수많은 별이 아로새겨져 있는, 그냥 그런 그림이었어. 그 그림을 나한테 주겠다고 하더군. 쇼코가 알 수 있을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그림이 고통스러운 러브레터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어.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가까이 있었으니까 말이지. 그림 속의 밤하늘은 정말 깊고 맑고 조용했었어. 그리고 그 밤이 시작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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