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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ㅣ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평점 :
by 서경식(창작과 비평)
"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 너무 많은 빛은 짙은 그림자를 만들듯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
서경식을 두 번째로 읽는다. '디아스포라 기행' 이후...
그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말할 수 없이 무겁고, 슬프다.
하루 정도는 그 우울의 늪에서 헤어나기가 힘들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를 당당한 자기변명으로 하여, 꾸역꾸역 일상을 살아낸 우리는,
일상의 댓가로 쌓인 적금을 해약하고 여행을 떠난다.
생활에 지친 나를 위로하기 위해, 또는 어떤 의미에서든지의 쾌락을 위해...
그러나 서경식은 자신의 여행을 '여행'이라 부르지 않는다.
고행의 의미를 담은 '순례'라고 이름 붙인다.
언젠가부터 나도 유럽 미술관 여행을 꿈꾸었다. 적어도 2~3달은 걸릴테지.
네덜란드의 렙브란트와 고흐 미술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런던의 테이트 갤러리, 스페인의 쁘라도 미술관, 그리고 수많은 대성당들...
실제로 서경식은 전 세계 백 여개가 넘는 미술관과 성당들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는 예술작품에서 생명을, 나이듬을, 죽음을, 전쟁을, 번뇌를, 슬픔과 고독을 처절하게 읽는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있었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글.
그 때는 어려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란히 묻힌 그들을 생각하니 참 슬프다.
마지막 편지에서 고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 생활은 뿌리가 뽑히고 내 걸음걸이도 휘청휘청한다.
나는 내가 너희들의 저주스러운 짐짝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전적으로 그렇진 않을지 몰라도 어쨌든-염려하게 되었다.'
고흐를 괴롭히는 '생활'이라는 것, 또한 나를 괴롭히는 '생활'...
이별률의 시 '생활에게'가 생각난다.
생활을 위해 집을 나가면서 반죽처럼 절반의 나를 떼어 내
그 절반의 내가 생활을 견뎌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살아갈 만하다는...
그리고 프랑스 땅에서의 고흐의 이른 죽음은 일본 땅에서 객사한 이상의 죽음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동생 테오 역시 형의 죽음 후 불과 몇 개월 뒤에 죽음을 맞는다.
'이상을 품지 않고, 자기실현을 포기하고, 평균적인 삶과, 남과 다르지 않은 죽음을 바라고 있는 우리들이야말로
고흐의 가차없는 고발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테오는 죽음으로 죄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을 보고 어떤 말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을 느낀다.
그 노예는 대한민국 어느 땅덩이에서 십수년간 양심수로 복역하고 있는 그의 두 형에 다름 아니며
자신은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자이며,
그 고통을 어쩌지 못해, 20대의 청춘을 허위허위 보내고,
유럽 여행에서조차 마냥 기쁠 수 없는 순례자일 수 밖에 없다.
대비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창조하는 자와 감상하는 자,
수태고지에서의 생명의 기쁨과 책형도, 그리스도의 고난에서의 죽음의 고통,
속세에서 성공하는 자와 떠돌이 망명자,
당대에 남은 예술과 역사에 길이 남은 예술,
하얀 길의 세계와 제3세계,
평온을 주는 대성당과 그 밑의 수천의 뼈들,
뽕삐에와 선구적 반역자들...
'memento mori'(죽음을 생각하라)
in book
- 고흐를 괴롭히고 있는 것도 역시 '생활'이라는 얘기다.
이러한 형의 존재가 단순히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좀 더 근원적인 의미에서 '저주스러운 짐짝'이 아닐 리 없다.
현세적인 가치관에 대한 순수한 저항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의식주 따위 현세적인 뒷받침은 필요하다.
(고흐의 경우는 화구까지도. 그것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 단순한 모순이야말로 옛날옛적부터 창조자,구도자,혁명가를 괴롭혀왔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채찍질을 해대지만, 그런 행위는 그 채찍의 의미를 이해하는 자까지도 함께 쓰러 뜨리고 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이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창조자,구도자,혁명가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이해자들이 그 채찍의 아픔을 참고 견뎌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짐짝'인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과 고독'은 고흐에게뿐 아니라 테오에게도 있었다.
그것을 처절한 색채감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형의 역할이었고, 그것을 말없이 감수하는 일이 아우의 몫이었다.
- 진보는 반동을 부른다. 아니 진보와 반동은 손을 잡고 온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 분류가 되지만 대개는 맥빠지게 완만하다.
그리하여 갔다가 되돌아섰다가 하는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장면에서 희생은 차곡차곡 쌓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그 희생이 가져다 주는 열매는 흔히 낯두꺼운 구세력에게 뺏겨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헛수고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희생 없이는 애당초 어떠한 열매도 맺히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단순하지도 직선적이지도 않다.
- '검은 그림'씨리즈 속에 한 점의 이색적인 개 그림이 있다.
'물살을 거스르는 개' 또는 '모래에 묻히는 개'라고 불린다.
보기에 따라서 급류를 허겁지겁 헤엄쳐 건너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유사의 개미 지옥에 삼켜져 구제불능의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개는 고야 자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이 개는 나라고 생각했다.
- 작자 미상의 '죽은 연인들'을 보면서
이 그림이 성공하고 있는 비밀은 졸렬함에 있다.
...그것은 비길 데 없이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죽음의 이미지'와 맞서는 일인 것이다.
- '노예'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형에게 보낼 그림엽서에 적을 소감을 정리해 보려고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뭐라 이름하기 어려운 광풍이 소용돌이쳐 도무지 진정할 줄을 모른다.
'지상의 숙명에 묶인 인간의 고뇌'라느니,
'육체의 어두운 뇌옥에서 벗어나 영원을 움켜 잡으려고 하는 혼'이라느니
그럴싸한 수사학이야 왜 없으랴.
하지만 그런 것을 쓰고 있겠는가.
'노예'는 나의 형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