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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사유의 시선 -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최진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서강대 철학과 교수인 최진석 교수님이 건명원이라는 곳에서 한 5회의 철학 강의를 묶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은 같은 얘기가 수도없이 반복되고 있어서, '강의한 것을 책으로 엮으면 이런 단점이 있구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중복되지 않게 손좀 보고 책을 내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는데, 읽다보니 한편으로는 이렇게 반복을 해주니 어려울 수 있는 책임에도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다가왔다.
다른 사람이 사유한 결과를
숙지하고 내면화하면서도
스스로
'생각한다'고 착각해왔다.
수입된 생각으로 사는 한,
독립적일 수 없다.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이어 펼친 첫번째 페이지의 서문 거의 초반부에서 이미 이 문장을 읽고 한 대 얻어 맞은 듯 했다. '내면화하면서도'라는 말만 없었어도 그냥 쉽게 동의하고 넘어갔을 이야기였는데, '내면화하면서도'라는 이 말이 마음에 걸리면서 슬쩍 반발심이 들었던 것이다. 무언가를 배워서 내것으로 만들고,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에 묘한 자부심과 즐거움을 느끼면서 사는 나에게는 아무리 그래봤자 그것 역시 니가 아니라는 얘기인 듯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것으로 만들어 확대 재생산 하는 것은 그야말로 "내것"으로 만든거 아닌가 싶던 마음은 뒷 부분 어느 즈음의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겨로가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함으로써 자기 삶을 꾸리고 세계를 운용하는 분위기를 '훈고'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용해서 산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다른 사람을 추종하며 산다는 것으로 바꿔 말할 수 있다'라는 부분에서 마치 맞은 데 또 맞은 듯한 느낌과 함께, '절망'이란 단어는 너무 쎄고, 뭐랄까...'낙심? 낙담'이 그나마 적절한 단어려나...여튼 그런 마음이 들었다. 흠....한숨과 함께.
그런데 바로 얼마 뒤의 '훈고적 기풍은 대개 다른 사람이 만든 이론을 그대로 따라 배우거나 자기 삶의 근거를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지식 체계나 이념 체계에서 찾게 합니다. 내 생각으로 내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해 놓은 생각의 결과로 내 삶을 꾸리는 격이지요. 그런데 왜 이렇게 되는걸까요? 지적으로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라면서 지적으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지점에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나의 어떤 지점을 꼬집어 말하고 있는 것인지를 온 몸으로 느끼면서, 너무 아닌 척 살아와 이미 나도 내 안에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아른거리는 그런 내가 다 까발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한다며 부지런을 떨면서 남들에겐 이지적인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좋았고 - 새로운 걸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임을 이 와중에도 슬쩍 한번 더 말하고 싶은 이 마음은 뭔지 - 그러면서 내가 알게 된 얄팍한 지식들을 이미 내 것으로 소화했다고 좋아라 하면서 떠들어 댈때는 그것들이 바로 나를 말해주는 것인 듯 자부심을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문득 문득 "그 이상의 생각하기와 생각 엮기"를 해볼까? 해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살짝 막막함을 느끼면서 '굳이 할 필요 있나? 해도 딱히 답도 없을테고...지금은 시간 없으니 나중에 좀 여유 있어지면...'이라고 미루어두던 내 모습이 저 깊숙이에서 떠오르면서, 바로 이런 나를 두고 저자분은 "지적으로 게으르다"고 하는 거구나 싶었다.
책에서는 후진국에서 중진국으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오르는 두 단계나, 피아노 연주자에서 음악가로, 음악가에서 예술가의 경지로 오르는 두 단계는 결코 같은 크기의 단계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다. 나를 아주 후하게 평가해줘서, 지금 중진국이나 음악가의 단계라고 쳐 준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고유의 생각과 시선을 갖는 일이 아닐까 싶다.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책의 제목처럼 "탁월한 사유의 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내 고유한 사유의 시선"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마음과 시간을 들여봐야 겠다. 간절하게...
지식의 축적 여부를 떠나
지성적인 높이를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가
그 삶의 격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