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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평점 :

나오미와 가나코 / 오쿠다 히데오 저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책의 맨 겉장 띠지에 적힌 강렬한 글귀가 책의 내용을 읽기 전부터 시선을 끌었습니다. 어쩌다 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을까? 근래에 개봉한 영화가 생각나면서 남편에게 막대한 보험금이라고 있는 건가 했습니다. 실제 내용은 제 예상과는 많이 달랐지만...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님 실패할까? 앞으로 이 여자들은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들 떠올리며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나오미와 가나코
나오미는 스물여덟. 아오이 백화점의 외판2과 직원입니다. 대학에서 서양미술사를 공부했고 미술 전시회 관련 일을 하고 싶어서 미술관을 가진 아오이 백화점에 입사를 했지만, 장기 불황으로 미술관 쪽 인원이 축소되어 원래의 바람과 다른 부서에서 벌써 칠 년째 근무 중입니다. 나오미가 소속한 외판 2과는 부유한 개인고객을 상대하는 관계로 거의 집사처럼 고객의 사사로운 요청에도 다 응대를 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다 매출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서비스업에 자아는 필요 없다. 봉사 정신은 일종의 군대식 규율에서 생겨난다. 이런 합창을 매일 계속함으로써 인간은 자기최면에 빠진다. 큐레이터를 목표로 들어온 백화점에서 나오미는 빈틈없는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기계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p.16)
현재 하고 있는 일은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일반 서민이 싫어지고 자신의 생활마저 추레하게 생각된다. (p.22)
나오미의 오랜 친구는 가나코. 대학 동창으로 처음 만난 날 친해진 사이입니다. 우울할 때는 서로 위로해주며 무슨 일이든 의논하는 사이입니다.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로 나오미는 당차고 딱 부러진 구석이 있다면 가나코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둘 다 사치스럽지 않고 소설과 영화를 좋아해서 몇 시간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이이지요. 가나코는 작년 가을 은행원과 결혼하여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오미는 몸이 아프다는 가나코를 위해 먹을거리를 건네주러 갔다가 얼굴에 멍이 들고 볼이 부어있는 친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친구가 남편에게 결혼 이후 줄곧 폭력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린 시절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맞고 사는 엄마를 보며 자란 나오미는 가나코와 똑같이 공포를 느끼고 친구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다짐합니다.
어젯밤 가나코에게 들은 남편의 폭력 이야기에 나오미는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봉인됐던 기억의 상자가 열려 이중의 타격을 받았다. 기억에도 생생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얻어맞던 폭력의 광경. 가정 폭력은 주변 사람들마저 지옥에 빠트린다. (p.28)
클리어런스 플랜
왠지 백화점의 세일 같은 느낌이 들어 선택했다는 단어. 클리어런스 플랜(clearance plan). 나오미와 가나코는 가나코의 남편을 처리하기로 합니다. 그저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생각이려니 했던 것들이 가나코의 남편과 똑닮은 중국인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자 더 이상 이 계획에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느끼게 됩니다.
"이 계획, 완벽한 것 같지 않니?"
"응, 완벽한 것 같아. 하지만 잘 될까 싶기도 해."
가나코가 말했다. 그 말투는 할 마음이 생긴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건 우리가 하기 나름이야. 쉽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지만."
나오미는 자신을 타이르듯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남자를 한 사람 죽이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다만 이 대역 트릭에는 견딜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그것은 사람의 일반적인 감각을 온통 마비시켜버릴 정도였다. (p.168)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치밀하고 완벽한 계획을 준비한 듯했으나 부족한 현실감으로 인해 여기저기 드러나는 허점을 발견하는 스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거사일에 땅을 파느라 지체되는 시간을 막기 위해 미리 땅을 파두려고 계획하지만, 땅을 파러 가는 길에 ETC(전자요금 징수, 우리로 치면 하이패스쯤 되는 듯)가 무언지 몰라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헤매는 장면은 웃음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여자들이 사건의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소설입니다. 사건을 일으키는 나오미와 가나코 외에도 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많은 영향을 주는 화교 출신 아케미 사장과 본의 아니게 사건에 조력자가 된 사이토 부인. 그리고 두 여자를 구석으로 몰고 가는 남편의 여동생 요코. 심지어 맨션의 관리 이사장(CCTV와 관련한 인물)도 여자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전에 접했던 남성 위주의 작품들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나오미 이야기'와 '가나코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나오미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전반부는 사건의 계획, 실행쯤에 해당 된다고 하면 후반부는 가나코의 시선에서 전개되는 사건 뒷이야기쯤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에 두 여자의 성격이 잘 어울리는 훌륭한 구성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초반에서는 강하게 드러나지 않았던 가나코의 성품이 후반부로 가면서 주도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하는데 큰 기능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채 몇 페이지가 남지 않았을 때까지도 결말을 섣불리 예측하지 못하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작가분도 망설이셨군요. 왠지 덜 억울한데요.ㅎㅎ 재미있는 스릴러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분께 강력 추천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