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에 다가서기
강영조 지음 / 효형출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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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8> 『풍경에 다가서기』

이진숙 kmedichi@hanmail.net | 제201호 | 20110116 입력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클로드 로랭의 ‘이집트로 도피 중 휴식을 취하는 예수 일가가 있는 풍경’. 황량한 자연 풍경과 폐허를 고대 문명을 동경하듯 묘사하고 있다. 효형출판사 제공
“왜 요즘 젊은 화가들은 풍경화를 안 그릴까”라는 우문에 던진 한 지인의 현답. “그릴 만한 풍경이 없는가 보지.” 창 밖으로 눈길을 던지니 빽빽한 빌딩 숲. 날선 기하학적 도형의 현란함이 하늘 끝까지 차있다. 그러고 보니 도시 조형의 기하학적 패턴의 아름다움을 그린 그림들은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굳이 풍경화라고 부르지 않는다. 21세기는 풍경화를 잃어버린 시대인가. 아니다. 때로는 ‘이발소 그림’이라는 형태로도 풍경화는 여기에 있고 여전히 우리에게 위안과 안식을 주고 있다. 조경학자 강영조의 『풍경에 다가서기』(효형출판사·2003·1만8000원)에서 나는 풍경화를 이해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코드를 발견했다. 실제 풍경을 기획하는 데 관심이 있는 조경학자의 시선은 실제 풍경과 풍경화의 관계를 아우르며 미술사학자들과는 또 다른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서양 풍경화의 역사는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풍경화가 있었다고. 아름다운 풍경을 형용하는 ‘그림 같은(picturesque)’이라는 단어는 ‘그림(picture)’이 먼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화가가 발견하고 구성해낸 아름다운 풍경화로 풍경 감상법을 눈에 익힌 사람들이 실제 풍경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발견해내고 더 나아가 그런 풍경을 만든다. 17세기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를 사랑한 사람들이 100여 년이 지난 후 풍경화 같은 정원을 만들어낸 것이 영국식 정원이다.

풍경화가 일찍이 발전한 동양에서는 자연에 대한 시문학의 예찬이 풍경화에 선행한다. 중국의 ‘소상팔경’에서 시작된 한국의 ‘관동팔경’, 일본의 ‘오오미팔경’ 등의 선정과 이와 관련된 그림들은 문학적 상상력으로 고안된 풍경 감상의 패턴이 적절한 지점과 조우하며 탄생한 것이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좋은 풍경을 선별하는 눈을 만들어준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풍경화 속에서 체험했던 풍경을 창문 너머의 정원 공간에 그대로 실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조경학에서 말하는 풍경의 탄생이다. 신선경을 재현한 백제의 왕궁이나 사대부의 별서 정원, 영국의 풍경식 정원 등은 모두 화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이상적인 풍경을 현실의 정원으로 만든 것들이다. 이것들은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의 예제들로 풍경 감상법의 일차적인 교과서가 된다. 저자의 주장대로 풍경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하는 것이다.

지구가 탄생한 이래로 자연은 늘 거기 있었다. 무심한 자연이 풍경으로 탄생하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선’, 예술가들이 고안해낸 일종의 풍경감상법 덕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양에서 풍경화는 17세기에 시작된다. 시민적 자부심과 향토심이 깊었던 네덜란드 작가들은 풍경화에 독자적인 가치를 부여한다.

서양의 풍경화가 풍경의 시각적인 전유에 중점을 두는 반면, 동양의 산수화는 단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들어가 즐기는 와유(臥遊)를 위한 그림이다. 원근법의 구속을 받는 서양화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풍경감상법을 담고 있다. 저자는 정선의 그림 속의 풍경감상법을 세세히 펼쳐 보여준다. 정선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누각들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지점과 시점을 암시한다. 정선의 그림 속에는 둘러보고, 올려보고, 내려보고, 지나치며 보고, 넘어보고, 사이로 바라보고, 마주보는 다양한 풍경감상법이 구현돼 있다. 와유적 풍경 감상이란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듯이 보는 것”이다. 풍경은 시각·청각·촉각·후각, 그리고 지역 음식을 먹는 미각까지 동원된 입체적 감상의 대상이 된다.

이로써 풍경은 그저 볼 수 있는 시각상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된 공간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풍경화가 구현한 다양한 풍경감상법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풍경화가 인류가 공유한 근원적 체험의 파장 안에 있기 때문이다. 외부 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원한 ‘조망’과 정자나 누각 등 ‘은신’할 수 있는 건물 등이 있는 풍경을 더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원시의 인간이 견지하고 있던 생존을 위한 시각 행동이 현대인에게는 미적 체험의 규준”으로 자리바꿈했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힘겨운 투쟁 속에 있던 원시 인류의 고독감은 미지의 자연을 시각적으로 자기화하고 일체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망의 시선과 결부된다. 바라보는 주체가 정립된 다음에야 자연은 풍경이라 이름이 붙으므로 저자는 풍경은 ‘결연의 미학’, 즉 관계의 미학 속에 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안식처를 찾으려는 욕망이 작동함으로써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풍경화에는 ‘낙원에 대한 동경’이 공통적으로 담기게 된다. 낙원은 두고 온 고향처럼 늘 그리움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풍경화 속의 풍경은 늘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한국의 성인들에게 고향 풍경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으면 대략, ‘울타리가 쳐진 초가집, 까치밥이 달린 감나무’ 등을 떠올린다. 대도시에서 태어나 아파트 놀이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공동주택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두고 온 고향에 관한 모든 것을 함축한 그림이 바로 박수근의 그림이다. 황토빛 흙의 색감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질감, 다소 둔탁하고 사물처럼 보이는 인물들 역시 고향의 풍경적 요소를 이룬다. 박수근이 국민작가인 이유다. 풍경의 탄생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풍경 자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풍경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즉 사람들 속에서 갖는 의미다. 박수근의 소박한 전근대적인 풍경은 고향이라는 이름과 결부되며 계속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현대 미술에서는 풍경화가 거의 사라졌다. 19세기 말 사진의 등장과 더불어 고전적인 풍경화가 힘을 잃은 측면도 있지만 마구잡이개발로 말미암아 풍경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일이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작가들은 풍경을 발견하는 대신 직접 풍경을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로버트 스미슨, 월터 드 마리아 같은 대지미술가들은 자연물에 인공물을 더해 새로운 풍경을 창조했다. 자연에 부가된 인공물은 자연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풍경에 마음을 의탁하고 낙원을 꿈꾸던 과거 풍경화와는 큰 거리가 있다. 오감만족적 풍경 체험은 역시 잃어버린 과거의 것이 되고 말았나 보다.

낯선 나라에서 스타벅스나 맥도날드의 간판을 보고 반가움을 느끼는 것은 원초적 풍경 체험의 변형이다. 말이 안 통해도 거기에서는 먹어본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낯선 거리를 친숙한 것으로 바꾼다. 그러나 이로써 동시에 풍경의 개별성은 상실되고, 특정 풍경을 배경으로 하는 나의 개별성도 무화된다. 창 밖으로 펼쳐진 빽빽한 빌딩 숲을 바라보며 다시 물어본다. 박수근의 그림 속에 담긴 고향 풍경은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까. 나와 유의미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풍경, 우리에게 안식과 위안을 주는 풍경은 어디 있는 것일까. 지인은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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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 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개정판
최순우 지음 / 학고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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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최순우의 형용사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 <7>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이진숙 kmedichi@hanmail.net | 제199호 | 20110102 입력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담담한, 의젓한, 어리숭한, 솔직한, 정다운, 온아한, 소산한, 질소 담백한, 한아한, 갓맑은, 너그러운, 늣늣한, 고담한, 싱거운, 구수한, 아련한, 은근한, 익살스러운, 고급한, 편안한, 간결한, 청순한, 맵자한, 겉부시시한, 담소한, 조촐한, 원만한, 그윽한, 정제된, 청정스러운, 따스한, 서글픈, 화사한, 무던한, 부드러운, 홈홈한, 소탈한, 명상적인, 간명한, 어진, 무던한, 풍요한. 순후한, 무심한, 희떠운….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학고재·1만9800원)에서 저자 최순우<사진>가 한국미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수식어들이다. 우선 우리말에 이렇게 많은 형용사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형용하는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게 세분화되어 발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열된 단어만으로도 한국미의 세계를 얼추 헤아려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눈에 ‘이것이 한국미다’라고 느끼게 하는 경지가 있고, 또 그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의 경지가 있다. 그러나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실체를 호명하는 작업, 그 실체를 설명하는 언어를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서 그 답을 구했다.

단일한 형용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해맑고도 담담해서 깊고 조용한, 부드럽고 상냥하며 또 연연한, 무심하고도 순정적인, 칭칭하고도 가냘픈, 늣늣하고도 희떱고 희떠우면서도 익살스러운, 번잡스러운 듯싶으면서도 단순하고 단순한 듯싶으면서도 고요한, 선의와 치기가 깃들인, 화려하고도 어리광스러운, 스산스러우면서도 어딘가 호연한…” 같은 표현들은 한국미의 교묘함을 보여준다. 한국미는 미묘한 감성의 변곡점을 통과하며 느껴지는 복합적이고 섬세한 아름다움이다. 시대에 따른 변이는 있으나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의 미학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현대 미술을 설명하기 위해 ‘쎄다’라는 말을 곧잘 쓴다. 대략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강렬한 인상과 뜨르르한 규모를 자랑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이런 ‘쎈’ 미술품과는 달리 고전적인 한국미는 자세를 낮추어 눈여겨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곱고 섬세하며 높은 경지에 이른, 그러나 한 번 눈을 뜨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한 중독성 있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최순우의 형용사 중에는 뜻을 쉽게 알 수도 없고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단어들도 더러 있다. 그가 느낀 것을 지금의 우리는 제대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1916년생인 최순우의 추억 속에는 “으레 밝은 창가의 수틀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던” 고운 누이와 “얼굴이 비칠 정도로 들기름과 콩댐으로 정성들인 장판방의 신비로운 밀화 빛 따사로움”이 있다.

그가 바라보던 풍경과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1984년 작고한 그는 디지털과 IT강국의 한국을 보지 못했고, 그가 보았던 근대화 이전의 고운 산천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 미적 감수성의 근원이 원천적으로 단절된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 때문에 그의 글은 더욱 빛을 발한다. 산천과 사람은 바뀌었어도 한국 미술품과 한국적 아름다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며 그 미감은 우리의 DNA 속에 내재해 있다. 감수성의 단절을 메워주고 한국미를 일깨워주는 것이 최순우의 이 책이다.

이 책은 평생을 박물관에서 보낸 선생의 글 중에서 대중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글들만 추려 묶은 글이다. 얼마 전 컬러 도판을 실은 모습으로 업그레이드된 이 책은 94년 초판 발행 이래 지금까지 50만 권 이상이 팔린 국민서적이다.

우리 미술품을 상찬하는 최순우의 시각은 민족의 생활감정을 심도 있게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가 사용하는 풍부한 형용사들은 한국미를 머리로 이해하고 도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 감정에서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이끌어낸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것들이다. 최순우를 회고하는 사람들은 그가 ‘멋’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가 먼저 이해한 것은 한국 자연의 아름다움이요, 거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생활 감정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에 대한 감식안이 생겨나고 이 감식안은 작품의 세세한 디테일을 읽어내고 긍정해내는 힘이 된다.

“민족적 아름다움이란 어디서나 그 자연과 인문, 그리고 그 족속의 감정이 멋지게 해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격조가 생긴다”는 주장대로 그는 자연과의 조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한국미의 최고 덕목 중 하나로 꼽는다. 건축물의 위치와 크기가 산천의 풍광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점지의 묘’가 그런 예다.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으려는 자연친화적 태도는 다른 미술품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기물들을 볼 때는 쓸모 있는 기능과 또 시각적으로 주위 환경과 그것을 쓰는 이의 분수에 알맞은 ‘제격’을 갖추었는지를 따진다. 자연과 예술을 하나의 격으로 여기는 한국 미술은 “무엇을 이렇게 그리고자 한 계산도 없고 또 그런 대로 따지고 봐도 별로 서운한 구석도 없어 보이”며 “기교를 넘어선 방심의 아름다움”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반영된 것은 한국인들의 담담한 마음씨다. 그는 한국인들이 어질고 순하며 또 매우 자유로운 영혼과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불상들에서 읽어내는 것은 한국인 얼굴들의 원형이요, 더 나아가 전 인류에 의해 상찬되어 마땅한 ‘미소의 원초’다. 500여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 구절구절에서 최순우는 우리의 민족적인 조형 역량을 가늠하며 늘 대견스러워한다. 그 유전자가 우리에게 있고, 언젠가는 발현될 날이 또 올 것이다.

몇 년 전 일본 팝아트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가 대형 달마도를 선보였을 때, 아이쿠 싶었다. 달마도는 한·중·일 삼국 모두의 전통적인 그림인데, 일본 작가인 무라카미 다카시가 그것으로 현대 미술을 만들었으니, 이제 중국과 한국 작가들이 달마도를 가지고 무엇을 해보았자 짝퉁 소리를 면하기 어렵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이 우선 들었다. 거대하고 그로테스크한 망가풍의 달마도는 무라카미 다카시를 대표하는 중요한 그림이 되었고 달마도는 일본산(産)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 아니메와 망가를 근거로 한 J-pop의 대표적인 작가지만, 그가 일본 전통회화 전공자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러 징후들이 이제 동아시아 미술, 한국 미술의 중요한 티핑 포인트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한국 작가들은 유학, IT 강국의 이점 등으로 이미 충분히 글로벌한 관점과 역량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뒤가 여전히 허전하고 유행하는 담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게만 되는 것은, 그들의 미감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멀리 가기 위해서 때로는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국가 간 경쟁은 더 가열차지며 각국의 민족적 고유성은 더욱 중요한 요소가 된다. 예술에서의 경쟁 무기는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시킬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이다. 이런 점에서 민족적 전통은 더욱 중요한 자산이 된다. 축적된 작가적인 역량, 세계 경제 13위의 한국의 지위, 새로운 것을 갈급하는 세계 미술계의 요구들은 새로운 도약의 기틀이 될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 바로 최순우가 언급한 바대로 “좋은 안목을 지닌 사색하는 눈들”이다. 든든한 배경은 앞으로 나아가는 데 큰 힘이 된다는 것이 세상사는 이치다. 최순우를 통해 우리는 다시금 우리 뒤에 진정 아름답고 개성 넘치는 한국미의 배경이 존재함을 실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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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
재키 울슐라거 지음, 최준영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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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샤갈에게 환상과 신비로운 감성의 샘이었다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6>『샤갈』(재키 울슐라거·민음사·2010)

김진숙 kmedichi@hanmail.net | 제195호 | 20101205 입력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1 39음악(유대인 극단의 벽화)39(1920 ), 캔버스에 템페라및 과슈, 104*213㎝
“너희들의 세모 난 식탁 위에 네모 난 배들을 올려놓고 배고파 죽어버려라!”
거만한 입체파들이 그린 각진 그림을 보면서 스무 살의 샤갈이 던진 귀여운 저주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파리를 점령한 것은 야수파의 마티스와 입체파의 피카소였다. 러시아 출신의 시골뜨기 샤갈로프(Cthagalloff)가 촌스러운 꼬리를 떼어내고 샤갈(Chagall)로 이름을 바꾸어도 파리의 주류 미술에 들어가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샤갈은 주류 미술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고유한 매력으로 20세기 현대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시켰다. 피카소와 마티스의 그림들이 당시에 매우 충격적인 것들이기는 했지만, 그들이 택한 주제(정물·인물)는 어디까지나 서양미술사 전통 안에 있는 것들이었다.그러나 “샤갈의 공상들은 그 바깥에 있었다. 샤갈은 서양 미술의 역사와 함께 자라난 게 아니었다.” 샤갈은 칸딘스키나 말레비치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바로 러시아라는 하늘에서 말이다.

샤갈은 오래 살았다. 1985년 세상을 떴을 때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1차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2차 세계대전 등 세계사의 격변을 겪고 살아남은 유대인인 샤갈은 장수와 말년의 평안과 유복함으로 그를 곤경에 빠뜨렸던 모든 사람과 역사에 개인적으로 복수한 셈이다. 샤갈의 첫 번째 전기는 1922년 샤갈이 쓴 자서전 『나의 인생』이었다. 러시아 혁명 발발 후 망명한 시점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35세의 샤갈이 자서전을 쓸 생각을 할 정도로 그의 젊은 시절은 쉽지 않았다. 유대인이었고, 러시아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샤갈, 꿈꾸는 마을의 화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다. 자서전을 쓸 때의 젊은 샤갈은 앞으로 63년간을 더 살면서 겪어내야 할 무시무시한 일이 한참이나 남아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 못했으리라.

2008년 발간된 재키 울슐라거의 『샤갈』(민음사·2010·3만9000원)은 그의 긴 생애를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옆집 숟가락 숫자까지 조사하는 꼼꼼함과 시대의 정신적 지형도를 풍부하게 그려내는 문화사적 안목이 결부된 원숙한 평전의 한 예다. 이 책은 286개의 도판을 포함해 750여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책의 5분의 4를 차지하는 것은 첫 번째 아내인 벨라가 죽는 1944년까지의 이야기다. 인생의 중요한 어느 한 때의 1년은 다른 때의 10년보다 더 값어치가 있는 법이다. 이 책은 완성기의 샤갈이 누린 지루한 영광보다 작가로서 완성돼 가는 고단하면서도 찬란한 여정에 초점을 맞추어 놓았다. ‘유대인’ ‘러시아’ ‘사랑’은 샤갈의 긴 생애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칸딘스키를 비롯한 많은 작가가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유대인’이란 단어가 중요한 키워드로 작동한 것은 샤갈의 작품뿐이다. 샤갈은 동유럽 쪽에 널리 퍼진 유대교 종파인 하시디즘의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작품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염소·수탉·물고기·소 등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신비주의적인 하시디즘의 반영이다.

하시디즘에 힘입어 샤갈은 유년기의 가난하고 우울한 고향마을을 캔버스 위에서 아름다운 환상으로 변형시켰다. 샤갈이 그린 지붕 위에서 ‘깽깽이’를 켜는 유대인의 모습은 후에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모티브가 되었다. 샤갈은 유대교뿐 아니라 기독교 전반을 ‘사랑과 화해’라는 관점에서 끊임없이 시각화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는 추방되었고 고난을 겪었으나, 2차 세계대전 후 샤갈은 전쟁과 파시즘을 이겨낸 영웅 대열에 함께 올랐다. 샤갈은 ‘유대인’적인 특성에 몰두했으나 그를 넘어 세계인이 되었다.

2 1939년 카네기상을 받은 작품 39약혼자들39앞에 있는 샤갈과 벨라
미술사에서 샤갈은 파리파(ecole de Paris)로 분류되고, 프랑스의 국민훈장을 받고, 프랑스에서 죽었지만, 영혼의 핵심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러시아의 고향 비테프스크를 사랑했고 그것을 그렸다. 작가로서의 샤갈의 세계를 완성시키는데 러시아 미술작가들과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 샤갈은 러시아 상징주의 작가 브루벨을 자신의 큰형이라고 거론하며, 스승인 레옹 박스트와는 평생을 애증관계에 있었다. 절대주의자 말레비치와의 충돌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와 샤갈은 결국 러시아를 영원히 떠나게 된다. ‘러시아’와 ‘유대인’이란 키워드가 겹쳐져 탄생한 것이 모스크바에 있는 유대인 극장의 장식 그림이다. 러시아의 비테프스크라는 이국적인 고향을 그리는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감성은 샤갈이 서양미술사에 공급한 신선한 언어였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본 시인 아폴리네르는 이렇게 말했다. “초자연적이군!” 나중에 앙드레 브르통은 샤갈이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샤갈의 그림 속에서 신랑은 신부를 놓칠세라 꼭 껴안고 날아간다. ‘사랑’의 힘이다. 평생의 뮤즈였던 첫 번째 아내인 벨라, 헌신적인 매니저이기도 했던 딸 이다(Ida), 늦둥이 아들과 사랑의 배신감을 동시에 선사한 버지니아, 말년을 지켜 준 바바 등 샤갈의 긴 인생에는 강하고 매력적인 여인들이 등장한다. 샤갈은 이 쎈 여인들의 사랑에 기꺼이 자신을 맡겼다. 고향 친구이며 첫 아내이자 사랑스러운 딸 이다의 어머니인 벨라는 가장 중요한 여인이다. 샤갈이 망명 후에도 오랫동안 러시아계 유대인을 주제로 창조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벨라 덕분이었다. “벨라는 샤갈을 위해 비테프스크, 유대인의 러시아가 되어 외국으로 고향을 옮겨다 주었으며 시간을 멈추어주었다.” 사랑했던 만큼 고통도 컸고 의미가 컸던 만큼 변화도 컸다. 벨라의 사망 이후 고향과의 연관은 희미한 기억으로 퇴색해 그림 속에서는 윤곽선은 희미해지고 가물가물한 옅은 색채가 주를 이루게 된다.

실제로 벨라가 죽은 1944년 이후 샤갈은 “이젤 화가로서 더 이상 혁신은 없었다”. 젊은 시절에 이룬 것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냉정한 비평가들은 러시아를 탈출하던 1922년을 샤갈의 최절정기로 보기도 한다. 벨라가 죽은 후 그 다음 40년 동안 샤갈은 스테인드글라스, 공공벽화, 극장미술 등 새로운 양식의 작업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찾았다.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의 벽장식 등으로 샤갈은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의 생존 화가로 추앙받게 된다.

1950년 이후 “대략 제왕 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마티스·피카소와 얽힌 에피소드들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피카소는 그를 “마티스와 더불어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색채 화가”라고 평했다. 저자는 샤갈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50년대와 60년대의 맥락에서 샤갈의 의미를 되집는다. 전쟁으로 분열되고 대학살의 공포로 질린 시대에 사랑과 종교는 최고의 가치였다. 그리고 “독특하고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이미지들 속에서 잃어버린 세계를 요약해 보여줄 수 있는 유대인 화가이자 생존자”인 샤갈은 특히 환영받았다. 추상미술이 판을 치던 당시에 샤갈은 다른 어떤 예술가도 전하지 못하던 “즐거움과 위로”를 관객에게 주었다. 그리고 지금도 샤갈이라는 이름은 환상적인 색채와 더불어 ‘꿈, 환상, 추억, 고향, 사랑, 가족’ 같은 달콤하고 가슴 설레는 단어와 연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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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방가르드 - 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 방송문화진흥총서 102
이광석 지음 / 안그라픽스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건강한 비주류 하위문화는 신선한 문화를 위한 젊은피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 <5> 이광석의 『사이방가르드』(안그라픽스, 2010)

이진숙 kmedichi@hanmail.net | 제197호 | 20101219 입력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Ron English “Rainbow Lincoln” 링컨의 얼굴과 오바마의 이미지를 합성한 걸개그림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한 장면. 주인공이 지나가자 거리의 광고판들이 홍체 인식으로 개인정보를 파악하고 이름을 직접 불러가며 타깃 마케팅을 펼친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한다. 하나는 기계와 인간을 연결하는 각종 인터페이스가 소멸되고 신체의 특정 부분을 스캔함으로써 개인정보가 즉각적으로 파악되는 신기술의 등장이다.

두 번째는 주인공이 걸어다니는 거리는 실제 현실과 가상현실이 공존하고 있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의 공간이다. 스마트폰 덕분에 증강현실은 더 이상 먼 이야기가 아니다. 스마트폰의 본격적인 붐이 시작된 것이 2010년 1월이다. 채 1년도 걸리지 않아 우리는 새로운 이름의 현실에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자고 나면 세상이 바뀌고 있으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의 2054년은 너무 넉넉히 잡은 설정인지도 모르겠다.

이광석의 『사이방가르드』(안그라픽스, 2010, 2만원)는 자고 나면 바뀌는 세상, ‘증강현실’이 대세가 된 사이버 시대 미술에 대한 탐구다. 이 분야 쪽으로는 외국 학자의 최신 논문들을 엮어낸 책들이 많은데, 논의의 앞뒤를 잡아내 읽기가 쉽지 않았다. 반면 낯선 용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무난히 읽히는 것은 저자의 관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간만에 읽은 뜨거운 이론서다. 사이버시대의 아방가르드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이 책은 미술에서 신기술 채용의 의미와 비주류 하위문화에 대한 고찰이라는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사이버(Cyber)와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합성어인 사이방가르드(Cyvantgarde)는 말 그대로 사이버 시대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일컫는다. 저항의 예술인 아방가르드가 사이버 시대에는 어떻게 발현되는가가 저자의 관심사다. 저자가 미디어 아트, 환경 아트, 정보 아트, 뉴미디어, 네트 아트 등 혼란스러운 용어 사용을 일갈하고 사이방가르드라는 용어로 통합할 수 있는 것도 매체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저항예술의 근본적인 존재 방식을 밝히는 데 더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시대마다 등장했던 아방가르드 예술 집단들은 언제나 새로운 매체 기술에 심취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법이어서, 기성의 질서에 저항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예술가들은 자신들을 표현할 새로운 매체를 기꺼이 채택한다.

게임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가 보여주는 그래픽은 입이 떡 벌어지게 놀랍다. 그러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현실의 인간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1960년대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그랬듯, 동일한 기술이라도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데 복무한다면 기꺼이 예술이라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책은 사이방가르드 예술의 예를 다양하게 들고 있다. 기술의 비인간화와 권위주의적 사회에 도전하는 각종 ‘싸움의 기술’의 목록이자 문화적 저항행위 사례연구집이기도 하다.

저작권 소송에서 패소한 제프 쿤스, 낙서화가 뱅시(Banksy),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해커, 기계 혐오론자, 이동 책장수에서부터 ‘전자교란극장’ ‘카본방위연맹’ ‘역기술국’ ‘응용자율성연구소’ ‘개미농장’ ‘예스맨’ 등 이름만으로는 정체가 파악되지 않는 행위예술가들까지 아우른다.

이 행위예술가들은 기발한 최첨단 기법을 동원한다. 여러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협업해 이뤄내는 집단지성의 미술이다. 예컨대 ‘전자교란극장’은 멕시코 정부 홈페이지에 ‘정의’ ‘인권’ 등의 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를 요청하게 만들거나, ‘이 사이트에는 정의·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404 에러’ 문구를 연속해 뜨게 만든다. 서버 다운, 중요 정보 해킹 등의 범죄행위는 하지 않으니 사법처리도 애매하다. 달리 경제적 이윤도 취하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은 테러나 해커가 아닌 ‘문화간섭’의 일환으로 일종의 개념미술적 퍼포먼스로 받아들여진다.

문화계의 악동 ‘예스맨’ 그룹의 활동은 혀를 차게 한다. 2004년 그들은 짝퉁 다우 케미컬 사이트를 만들어 1984년에 2800명가량의 인명을 잃었던 인도의 보팔 사고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한다. 특종이라고 생각한 BBC는 다우 케미컬의 대변인임을 주장하는 예스맨의 멤버와 인터뷰를 하게 된다. BBC까지 낚인 대단한 사기극 혹은 예술적 해프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우 케미컬이라는 다국적 기업의 비윤리적 사고 처리 과정이 다시금 언론의 수면 위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예술가가 아니라면 돈도 안 되는 일에 이렇게 열심일 리 없는 세상이다.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통쾌하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죽을 맛인 일이다. 고향 풍경, 아름다운 여자와 꽃다발 그림에서 미적 향수를 느껴야 한다고 배워온 사람들에게도 불편한 미술임에 틀림없다. 더러 그들이 공박하는 저작권 문제처럼 정보의 민주화와 대중적 창작의 자유를 위한 배려와 창작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문제가 있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새로운 감각과 감성을 날것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방가르드가 만들어내는 비주류 하위문화의 매력임은 틀림없다. 사실 문화의 다양한 층위 간의 소통과 충돌은 언제나 생산적인 결과로 귀결된다.

어미·아비를 모르고 꺼덕대던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는 법이다. 비주류 하위문화는 주류문화로 편입돼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화염병 대신 꽃다발을 던지는 시위대 그림으로 유명한 낙서화가 뱅시의 한 작품은 2007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6억원에 팔렸다. 20세기 초반의 다다이스트들, 60년대 백남준과 요제프 보이스의 플럭서스 그룹들 모두 시간과 함께 미술사의 중요한 흐름으로 등재됐다. 주류문화로의 편입은 비주류 문화의 저항성이 희석되었다는 것과 동시에 주류문화가 그만큼 건강한 포용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불편한 이 미술들은 건강한 비주류 하위문화를 형성하며 문화 전체에 신선한 피를 수혈해 젊음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저자 자신이 저항의 의지와 사이버 시대에 대한 유토피아적 희망을 갖고 있는 이론적 아방가르드다. 게다가 인터넷의 수평적인 소통관계, 자유로운 아마추어 정보 생산자들의 힘을 중시하는 디지털 민주주의자다. 그가 꿈꾸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유비쿼터스 세상이다. “이제까지 혁명이라 말한 것들은 인간 삶의 일부만 변화시켰을 뿐이다”라고 말하며 저자는 정권의 색깔과 지도자의 얼굴만 바뀐 기존 혁명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디지털은 이 모든 것들의 혁명이다. 삶의 결 하나하나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것, 그것이 디지털이 만들어내는 거대 혁명이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기술은 현실의 불평등 조건을 그대로 떠안고 다가온다. 법과 경제의 논리는 당연히 기술 소유자의 권리를 수호하는 방향을 취한다. 기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에 대해 숙고하고 기술의 맹목적이고 비인간적인 발전에 딴죽을 거는 역할은 다시금 예술의 것이 된다. 그 이름이 무엇일지라도 이것은 변함없는 예술의 숙명이고 존재 이유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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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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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이진숙의 ART BOOK 깊이읽기 <4>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1』

이진숙 kmedichi@hanmail.net | 제192호 | 20101114 입력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백제금동대향로
“살아보니 옛말 틀린 게 없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었다. 겨우 옛말이 옳다는 것이나 증명하기 위해 인생을 산다는 것은 죄악이 아닐까?그런데 최근에는 “옛말이 더러 옳을지도 모른다”고 수위 조정을 하게 됐다. 옳고 그름을 떠나 우리 옛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미술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면서부터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 현대 미술이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정체성 확보다. 세계 미술시장에 통용될 한국 현대 미술의 마케팅 포인트가 쉽게 잡히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컨대 중국 미술은 ‘정치적인 팝’이라는 말로, 일본 미술은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재패니즈 팝’ 혹은 요괴주의적 특성으로 세계 미술시장에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기본 개념을 근거로 다양한 작품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개별 작가들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전체로서 한국적 미감을 일목요연하게 전하지 못하는 것은 한국 현대 미술이 봉착한 문제 중 하나다. 미술 평론가들도 수입 담론에 맞추어 우리 미술을 설명하는 데 급급했지, 우리의 고유한 미감(美感)을 발전시키는 데는 게으르지 않았던가 하는 반성을 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의 고유한 미감에 대한 고민은 오히려 고리타분한 일처럼 여겨졌다. “나에게 한국미술은 서양미술처럼 낯선 것이었다”는 한 젊은 작가의 솔직한 말은 충격이었다. 그리스 석고상을 열심히 그려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우리 미술교육의 현실이니 이런 말이 나올 만하다. 외국에서 서양미술사를 먼저 익힌 나도 그 미감의 기본이 어디에 닿아 있는가를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미감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감각이 있는 사람은 예외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대해서 지속적인 훈련을 받아야 하며 노력해야 된다. 이런 의미에서 유홍준의 '한국미술사1'(눌와, 2010, 2만8000원)은 아주 반가운 책이었다. 1969년 김원룡의 책 이후 40년 만에 나온 한국미술사 통사인 이 책은 ‘한민족 고유의 고전적 미적 가치’가 역사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이야기하듯 들려준다. 이번에 나온 1권은 선사시대부터 발해까지 다뤘고, 2권에서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3권에서는 조선시대를 다룰 예정이다. 2012년까지 완간을 목표로 한다.

저자는 중국과 일본 등 인접 국가와의 비교 즉, ‘동아시아 미술사 시각’에서 한국미술을 바라본다. “한국이 빠진 동아시아 문화사는 불완전한 것이다.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당당한 지분을 가진 문화적 주주국가”라고 서문에서 말한다. 세계 경제 14위의 대한민국에서 이제야 이런 말이 나온다는 것이 사실 부끄럽다.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천덕꾸러기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일까? 아름다움의 향유를 경제적 상황 때문에 미루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패배자들의 논리다. 일제 강점기 때 이식된 문화적 패배의식, 열등의식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한국미술의 고유성을 드러내기 위해 기존 미술사와는 다른 서술 방법을 택했다. 한반도에 인류가 거주했던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감은 주어진 자연환경과의 투쟁 속에서 형성된다는 논리다. 또 건축·회화·조각·공예로 나누는 기존의 기술 방식에서 벗어나 당시의 한국미술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고분 미술과 불교 미술의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우선 보았다. 볼 만한 책이었다. 언급된 작품의 이미지를 대부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지식은 생생한 감각의 힘을 얻는다. 체계적으로 분류된 도판은 고유한 미감을 시각적으로 전한다. 청동기 시대의 굽다리 접시, 날아갈 듯 살포시 앉은 원삼국시대의 주머니 항아리, 듬직해 보이는 세발원통모양단지, 가야의 긴목항아리가 가지고 있는 조형미는 현대적 관점에서 보아도 세련되고 아름답다. 대규모 고분군들은 대지미술을 연상케 한다. 상세히 소개된 고구려 고분 벽화의 화려한 세계는 또 어떤가.

압권은 1993년 발굴된 백제금동향로다. 눈앞에 있는 것처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고분과 산성 부분을 읽고 나면 무너진 돌 더미들도 예사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한국미술을 저자가 어떻게 느끼고 묘사하는가도 관심사였다. ‘고구려의 강인함, 백제의 우아함, 신라의 화려함’은 저자가 요약한 “역사 속에서 이룩한 한민족 고유의 고전적 미적 가치”다. 저자는 삼국 미술의 백미로 백제의 문화를 꼽았다. 이름하여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6040>)’,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말이다. 무릎을 딱 치게 하는 대목이다. 날 선 모서리를 깎아내고 미묘한 경계에 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세련된 경지다. 이 폭넓은 규정은 새로운 상상력과 새로운 미감 형성의 기초가 될 만하다.

백제의 미학은 통일신라로, 고려로, 조선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의 DNA 속에 깊숙이 저장되어 있다. 원삼국시대의 주머니 항아리의 날렵한 선은 외씨버선에서, 기와지붕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단 하나의 선이지만 우리의 미감을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나는 이런 미감들이 현대에도 계속 발견되길 원한다. 그래서 “한국적이되 편협하지 않고, 세계적이되 뿌리를 잃지 않는다”라는 평가를 한국 현대 미술이 받기를 바란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고구려 유주지사 진의 무덤 벽화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저자는 작게 그려진 시종들의 모습에 관하여 원근법 구사의 미숙함, “3차원의 인물을 2차원의 평면으로 옮겨본 경험의 부족”을 지적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람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작게 그리는 것은 단순히 ‘서투름’이라는 평가를 받을 요인은 아니다. 르네상스식 원근법이 발견되기 이전의 서양회화에서도 등장하는 요소다. 르네상스의 근대적 세계관과는 다른 세계관에서 기인하는 형상화 방법이다. 시대별로 다른 형상화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미술사의 요체라는 면에서 보면 그렇다.

나는 이 책을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한국적 미감을 세련되게 훈련하고, “내가 생각하는 한국미는 이런 것이다”고 자유롭게 말하고 제멋대로 상상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비어 있는 가야사와 발해사 연구에 평생을 바치고, 현무도와 천마도를 현대 미술의 언어로 옮기고, 다중롤플레잉 온라인 게임의 단초를 찾아내고, 3D(3차원) SF 영화의 모티브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시공간을 초월해 문화와 문화가 만나고 코드화되는 시대인 21세기에 생산적 원천이 될 낯설면서도 친숙한 한국 옛 미술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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