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선인의 눈과 마음으로 느껴보는 옛 그림의 깊은 맛

이진숙의 ART BOOK 깊이 읽기 <12>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03)과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2』(1999년 초판 발행)

이진숙 kmedichi@hanmail.net | 제211호 | 20110327 입력 height=0 marginHeight=0 src="http://sunday.joins.com/article/findReporterIDnew.asp?reporter=/Article/@reporter" frameBorder=0 width=0 marginWidth=0 scrolling=no>
1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03)2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999)
미술 시장에서 전통 회화와 한국화의 가격은 현대 미술품과 비교해 볼 때 이해할 수 없이 낮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가격이 작품의 질을 무조건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이런 편중 현상은 전체 미술계 발전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오래된 미술에 대한 부당한 평가는 2~3년 만에 사라지는 반짝 작가들의 존재, 갖가지 비리와 어우러져 시장의 피로감을 누적시키고 미술계 전체의 발전을 지체시킨다. 물론 전통 미술품 가격의 답보 상태는 각종 위작 사건 등과 관련된 불신, 주택 구조의 변화에 따른 장식성의 저하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전통 미술이 이렇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데는 근본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 바로 ‘우리 것을 알아보는 안목의 결여’, ‘심미안의 부재’, ‘전통의 단절’이 바로 그것이다. 눈앞에 세계 최고의 명화가 있다 한들 알아보지 못하면, 그것은 불쏘시개용 종이에 지나지 않게 마련이다.

음악에는 ‘귀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 음악 연주는 하지 못하지만 탁월한 청음으로 좋은 음악을 분별해낼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음악 애호가들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담긴 멋진 개념이며 저변 확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귀명창들은 좋은 음악에 열광하며 공연, 음반 판매 등 음악 유통 과정의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일등 공신들이기도 하다.

3 작자 미상, ‘이재(李縡) 초상’, 비단에 채색 97.9 x 56.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미술에서도 직접 작품을 제작하지는 못하지만 좋은 작품을 알아보고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심미안을 갖은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눈대가’라는 말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미술 작품에 대한 안목과 식견이 중요한 교양의 잣대가 될 수 있도록 서로를 고무해보자는 말이다. 이는 미술 시장 및 미술계 전반이 특정 경향에 쏠리는 것을 막고 건전하고 다양한 취향의 작품이 존중받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귀명창’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듯 ‘눈대가’ 역시 부단한 노력으로 이루어질 터다. 심미안을 갖춘 ‘눈대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본인의 의지이며 두 번째는 당연히 좋은 스승이다. 좋은 스승의 눈을 빌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몸으로 체득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나가게 될 것이다. 오주석은 이런 의미에서 미술에 대한 열정과 한국 전통 미술의 아름다움을 눈뜨게 해주는 좋은 스승 중 하나다.

그는 2005년 지병으로 타계했다. 만 49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여러 책은 여전히 살아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2003, 솔출판사, 1만8000원)은 그의 다른 저서들과 전통미술 전반에 대한 좋은 입문서다.

한국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열성이었던 그는 대중 강연에도 열심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강의 녹취를 기초로 했다. 책을 읽고 나면 그의 생전에 강의를 한번 들어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더 궁금하면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2』(1999년 초판 발행, 솔출판사, 각 1만5000원)를, 그다음에는 더욱 상세한 논의로 『단원 김홍도』『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읽어나가면 좋겠다. 우리 옛 그림 ‘읽기’의 치열함과 즐거움에 매료될 것이다. 김홍도의 ‘씨름’은 이 책에 관련 도판만 8개가 실려 있다. 각 세부에 대한 설명에 따라 도판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품을 뜯어보고, 이리저리 굴려보고, 엮어보는 재미가 꿀맛이다.

이 책은 우선 옛 그림 감상의 두 원칙을 제시하고, 나아가 그림에 담긴 선인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며, 궁극적으로는 옛 그림으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본다는 점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서화일률(書畵一律)의 전통에 따라 그려진 전통 회화는 옛 글씨를 쓰는 원칙대로 좌상우하의 법칙에 따라 읽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주장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는 가로쓰기에 몸이 굳어진 현대인들의 미술감상법을 우선 신체적으로 교정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미술을 이해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설명 방법이다. 이러한 자세 교정은 “옛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끼기”를 위한 첫걸음이다. 개별 작가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만이 이 책을 읽는 보람의 전부가 아니다. 그가 작품을 설명하는 방법을 보면 심미안을 갈고 닦는 다양한 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주석은 잔재주만 품은 그림은 높이 보지 않는다. 손끝의 솜씨에 현혹되지 않고 그림 속에 깃들어 있는 위대한 인간의 마음을 우선으로 친다. 다른 책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1, 2』에서는 김명국의 ‘달마도’ 읽기를 통해 “작품에 대한 생각은 오래고, 그 구상은 깊되, 드러난 필획은 매우 간결하다”라고 우리 그림의 덕성을 집어낸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의 화풍과 비교하여 담백하고 독특한 우리의 회화 미학을 관통하는 말이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작가 김홍도는 어떤 것을 그려도 한국적인 특색을 드러내는 특출한 재주를 가졌다는 점에서 높게 평한다. 더 나아가 작자 미상의 ‘이재 초상’을 “인류 회화를 통틀어 최정상급 초상화”로 “렘브란트에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고 상찬해 마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음양오행론을 근간으로 하는 주역의 세계관이 우리 옛 그림의 바탕을 이루는 마음이며 우리 문화 전반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미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자연스럽게 이 땅에 대한 자부심으로, 국민적인 자존감으로 연결된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세종대왕 시절의 수준 높은 문화를 웅변하며, 김홍도의 작품들은 영·정조간의 치세를 배경으로 한다. 이런 위대한 미술품을 탄생시킨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논하면서 성리학적 민본주의에 기초한 “조선은 문화와 도덕이 튼실했던 나라”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떤 역대 대통령도 심어주지 못한, 국민적 자부심을 고양하는 발언이다. “예술에 국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의 국경이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높다”라는 그는 주장을 들으면 그림을 보는 심미안을 가진 ‘눈대가’가 되는 것은 더 나아가서 이 땅을 사랑하는 다른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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