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 율리와 타쿠의 89일 그림일기
배율.진유탁 지음 / 김영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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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구장창 여행 에세이만 읽던 날들이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기는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가장 여유가 없던 날들이었다.

 몸이 도피할 곳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도피하자는 심정에 책을 집었고, 책 속 여러 여행지와 그곳을 다니는 여행자들의 마음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읽는 여행에세이, <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예쁜 구석이 많은 책이다. 내 눈에 예쁜 책, 남들 눈에도 예뻐 보였으면 좋겠어서 좁은 기숙사 방에서 제일 예쁜 거랑 같이 찍어봤다.

에세이집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표지에 적힌 그림일기가 더 딱 맞는 표현이다. 책은 글과 만화, 사진들로 이뤄졌다. 부록으로 치앙마이 투어맵도 있다. 그야말로 여행기 종합 선물세트(?)!



제목도 너무 예쁘다. 치앙마이에서는 천천히 걸을 것. 프리랜서 디자이너 두 명이 치앙마이를 선택한 이유는 그곳이 '디지털노마드'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노마드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장소에 상관하지 않고 여기저기 이동하며 업무를 보는 사람들을 말한다.

책을 쓴 두 명의 디자이너들도 일을 하며 먹고, 놀고, 쉰다. 단순한 관광 여행기가 아니라 더 좋다.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제목디자인에 '천천히'와 '걸을 것' 사이에 걷는 사람을 그려넣고 싶다. 그림 못그리니까 마음으로만 하기로...(ㅠㅠ)




얇고 작은 띠지는 보관한다고 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다 버리는데, 이건 띠지가 큼지막해서 책을 읽을 때 걸리적거리지도 않고 오히려 어디까지 읽었는지 표시할 수 있게 도와준다. 띠지의 일러스트도 너무 예뻐서 이걸 어찌 버려! 


띠지 속 숨겨진 표지를 살펴보는 건 책의 숨은 매력을 찾는 방법이다. 큼지막한 띠지를 잠시 벗기면 띠지를 이렇게 귀여운 비행기가 있다. 




책을 함께 채운 두 저자, 율리와 타쿠는 어찌보면 정말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89일간 치앙마이 생활을 했다니! 그들의 성격이 글과 그림에 담겨서 신기했다. 서로 다른 만큼 더 포용하려는 모습도 언뜻언뜻 보여서 흐뭇하게 봤다.


특히 나는 요즘 여행에 대해서 타쿠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큰 돈 들여서 뭐 여행을 가나.. 그냥 집이 최고..) 치앙마이 세달살이를 하면서 달라지는 타쿠의 생각을 글을 통해 읽는 것도 재미졌다.


그 수많은 얼굴 앞에서 예전 생각을 했다. 잠에서 덜 깬 멍한 머리로 출근지옥철을 타던 기억. 그 땐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누가 밀치고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그 등에 반드시 욕이라도 한마디 내뱉어주리라 다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나와 같은 얼굴들이었다.

친구들 여럿이 한자리에 모이면, 어느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던 버스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는 이야길 하곤 했다. 아침 전철 안의 찌푸린 얼굴과 밤 버스 안의 눈물로 흘러가는 날들이 우리의 날들이었다. 이유는 잘 몰랐다. "힘들어서 그래" 위로하고 "건강 잘 챙겨야 해 " 인사한 후 각자 집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여기 와서 문득 처음 보는 많은 얼굴들이 나를 향해 짓는 미소를 마주하게 됐다. 무뚝뚝할 것 같던 좌판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억센 얼굴 위로 싱긋 미소가 번지던 순간. 고양이를 쓰다듬는 나를 향한 할머니의 얼굴 위, 살며시 번진 미소를 마주하던 순간. ‘‘안녕, 반가워" "이곳에 있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이곳에 오고 나서야 나는 알게 된 것이다. 오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슬로건의 뜻을. 모르는 사람을 미소로 맞아주는 나라에 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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