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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떻게 살면 좋을지, 어디를 향해 가야할지 알 수 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텨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드는 한 편, 다시 내일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해진다. <어떤 양형 이유> 는 수많은 사람들을 등에 업고 매일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글이다. 그의 등에는 매일 더 많은 사람이 올라탄다.
저자의 하루들을 읽으면서 그의 단단함에 감탄을 하다가도 가끔씩 비춰지는 안쓰러움에 위로를 보내고 싶었고, 내 하루를 살아가기에 바빠 간과하고 있던 일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게 됐다.
<어떤 양형 이유>의 저자 박주영은 7년간 변호사를 하다가 판사가 되어 현재 울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이다. '세상이 평온할수록 법정은 최소한 그만큼 참혹해진다'는 그의 말처럼 '법원'이라는 공간은 온종일 누군가의 절규와 눈물, 분노와 비참함으로 가득차 있는 곳이다. 이 책은 그곳에서 매일을 보내며 세상의 참혹한 모습들을 최전방에서 마주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법은 생명, 사랑에도 가격을 매긴다. 판사는 이러한 법을 바탕으로 형량을 결정하고 판결문을 작성한다. 재판기록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파쇄하지만 판결문만은 영원히 보존된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문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무자비한 짓을 저질렀는데 고작 형량이 이정도라고?', '그런 딱한 사정이 있는데 이렇게 심한 형량을 주나' 등 판결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은 모두 판사의 몫이다. 재범의 발생, 사건관련자의 자살 등도 모두 판사의 몫이다. 판사도 선악을 알지만 법 앞에서는 손 쓸 방도가 없다.
이렇게 보면 판사의 결정에 그 사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을 쥐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그 사람 하나하나의 무게를 다 버티며 살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법은 그 누구보다 냉정하고 딱딱하지만 법을 해석하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일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추천사의 남궁인 전문의는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판결에 분노하지만, 판사도 분노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저자의 진심어린 분노에 동감한다.
이 책은 평생 보관되는 판결문 뒤에 있는 '사람'이 세상에 외치고 싶은 말을 담은 글이다. 법 앞에서 할 수 없었던 말들, 선악을 알면서도 판결에 반영하지 못했던 수많은 사건들, 현행법의 변화와 구멍 등에 대해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 한다. 때로 격한 마음이 들지만, 그 분노마저 세상을 똑바로 주시하며 또박또박 하고자 하는 말들을 풀어낸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얼마나 많이 되뇌었으면 이렇게 건조한 어투 속에 생생함을 담아낼 수 있을까.
저자는 많은 판례와 판결문 속 양형이유, 법원의 현실을 통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말한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법에 대해, 그 해석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외면했던 사람들을 보여준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수많은 재판(형사재판이 대다수이지만 부산가정법원에 있을 당시의 소년재판도 다룬다)을 통해 그가 지금까지 담아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곧 1심 판결문이고 독자는 당사자이면서 곧 상급심이다. 상급심은 1심의 결론을 받아들여 판결을 인용할 수도 있고, 결론이 틀렸다고 파기할 권한도 있다. 염치없게도, 이 판결이 일부라도 인용되기를 바라지만, 전부 폐기되어도 항소는 없다.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이다.
책을 덮으면서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따듯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참혹함 속에서 사회의 책임과 법조인의 역할에 대해, 냉정함과 따듯함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을 법원의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응원을 보낸다.
이제 함께 고민해보자고 손을 뻗고 싶다. 오늘만큼은 악몽의 데자뷰가 반복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