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 조선 최고의 사상범 - 한 천재의 혁명이 700년 역사를 뒤바꿔버렸다
박봉규 지음 / 인카운터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정도전 : 조선최고의 사상범]

- 박봉규(인카운터) -

우리는 정도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까? 아니 제대로 배운적이나 있나 모르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므로 태종의 입장에서 기록된 정도전에 대한 평가는 감히 왕권에 도전한 대역죄인으로만 서술되어있고, 현재까지 거의 기정사실로 고착화 된거같다.

최근에 재평가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거 같긴하지만, `뿌리깊은 나무`에서 묘사되어진 정도전은 반국가 단체, 혁명을 꿈꾸는 반역도들의 정신적 지주정도로만 묘사되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

고려말 이성계를 앞세워 역성혁명에 성공한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기전 6년이라는 딻은 기간동안 성리학적 통치이론에 근거해서 조선건국의 이론적 바탕을 구축하고, 재상정치와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확립했다. 또 `조전경국전`, `경제문감`, `고려사` 등을 편찬해서 국가통치의 기초를 확립했다. 사병을 혁파했고 요동정벌을 추진했으며, 농업생산력 강화를 위해 토지제도를 정비했다. 한양천도를 주도하면서 궁궐과 종묘의 위치, 심지어 우리에게 익숙한 `근정전`, `사정전` 등 전각의 이름까지 직접 지었다. 명나라에 직접가서 조선건국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승인을 받아왔으며, 불씨잡변을 저술해서 불교를 비판하고 성리학을 국가 지배이념으로 확립했다.

정도전은 민본위민사상을 기본으로 백성의 나라를 꿈꾸다가 결국 왕의 나라를 꿈꾸는 이방원과 부딪히게 되고, 결국 그의 꿈을 다 피지도 못하고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 그에 대한 평가도 조선왕조 내내 반역도의 고유명사처럼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조선은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을 바이블처럼 떠받들면서 그의 사상이 녹아든 정치제도속에서, 정도전이 만든 과전법이라는 경제제도속에서, 정도전이 설계하고 건축하고 이름붙인 한양과 경복궁에서 그 긴 역사를 이어왔다는 점이다. 그 반대로 정도전이 역사속에서 승자가 되었다면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을 우리는 가질수 없었을 것이다. 이래서 역사는 재미있다.

`맹자`를 기조로한 정도전의 사상은 드라마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왕이 꽃이면 재상은 뿌리이며 꽃은 시들면 꺾으면 되지만 뿌리가 썩으면 나무가 죽는다˝는 한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현대 민주주의까지는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당시 시대상황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진보적인 사상가임엔 틀림없다.
정도전에 대해 좀더 연구가 필요하고, 재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사족으로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세상의 모든 욕은 내가 다 들을 터이니 주상은 오직 성군이 되시오`라고 했다. 열매를 따기 전까지 황무지를 개간해서 밭을 일구고, 나무가지를 쳐내고 잡초를 뽑고, 해충을 없애는 작업을 태종이 해주지 않았다면 세종대왕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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