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탑
에도가와 란포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민경욱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1937년 신문에 연재되었던 '유령탑'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제공했던 모양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 중 하나였던듯 직접 그린 그림으로 책의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책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다. 거대한 시계탑이 포함되어있는 서양식의 대저택이 주인을 잃어버린채 숲 속에 방치되어 있다. 으스스한 구조물로 각자 비밀스러운 냄새를 노골적으로 풍기는 인물들이 모여드는 도입부는 지금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을 받은 만화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수없이 봐왔던 것이니 말이다. 물론 장르에서 작가의 역사적 위치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대중은 재미를 위해 책을 든게 아닌가.  

하지만 읽을수록 그게 아니다. 저택에서 일어나는 수상쩍은 범죄의 용의점이 미스테리한 여인 아키코에게로 향하지만, 주인공인 화자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한다. 사랑에 눈멀어 수렁에 빠지는 심리가 작가 특유의 분위기 조성으로 환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현실과 거리를 두는 작가의 작법은 기상천외한 범죄기법이나 캐릭터 형성에도 발휘되면서, 소설 속 세계가 한 편의 악몽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에드가 앨런 포에서 따왔다는 작가의 필명답다.  

어릴 적 읽은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이 생각난다. 구체적인 스토리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섬과 동굴의 배경에서 풍겨나왔던 으스스한 분위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런 인상이 단지 추억보정이 아니란 걸 '유령탑'은 말해준다. 분위기를 조성해가며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독보적인 작법과 동양과 서양이 뒤섞인 기묘한 상상력이 발휘된 설정들은 추리과정과 트릭을 제거해봐도 그 자체로 즐기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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