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아버지 - 아버지의 시대, 아들의 유년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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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아버지'는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실상 작가의 회고록이다. 1942년에 태어난 작가는 다사다난했던 한반도의 격변기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전쟁으로 인해 수탈이 극심했던 일제식민지의 끝자락에서 해방 직후에 이념 갈등에서 비롯된 혼란으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작품의 테마가 되는 작가의 아버지는 일제시대부터 좌익에 투신한 지식인이었다. 독립운동을 하고 혁명으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신념은 찬란하나, 서슬퍼런 세상에서 딸린 식구들의 고생은 가히 말할 수 없었다. 굶주림 정도가 아니었다. 사선을 수없이 넘나들었고, 아버지가 월북한 뒤 작가의 가족들은 살아남아 회상할 여유를 이제야 가질 수 있었다.  

심각한 내용임에도 긴긴 이야기를 뭣에 홀린듯 정신없이 읽어나갔다. 작가가 어린 아이였을 적 눈으로 바라보았던 김해군 진영읍의 산하는, 나 역시 진영읍에서 살았으므로 반갑고 생생하게 나의 머릿 속에서 펼쳐졌다. 또한 책 속의 그들이 나누는 동남방언들은 정겹고 따스했다. 삶의 기초가 되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영은 나에게도 뭉클한 장소였고 기억이었음을 깨달았다.  

작가의 아버지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열정에 반비례해 가정에 소홀했다. 때문에 책에서 그려진 아버지는 10살 이전에 국한된 흐릿한 기억들과 가족들의 증언 혹은 작가적 상상력에 기반해 있다. 이러한 결과물은 경이롭다. 아이의 눈으로 당시에 이해되지 않았던 아버지의 비합리적이고 불가해한 삶의 흐름이 이제야 눈에 보이는 것은 문학이라는 도구 덕분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힘이기도 하다. 작가는 당시 아버지보다 곱절의 나이가 된 70에 책을 썼다. 아버지를 향한 애증과 현대사의 거대담론은 빛바래있다.  

작가의 회고에 건방지게 비교나 평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통과한 어르신의 솜씨좋게 구성진 이야기에 말없이 푹 젖어들었을 뿐이다. '고생하셨습니다'라고 나지막히 한 마디를 건네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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