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아홉 기둥 - 미국을 움직이는 숨은 저력, 연방대법원!
밥 우드워드 지음, 안경환 옮김 / 비즈니스맵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사법기관의 정점에 서있다. 우리로 치면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수행하는 연방대법원은 재심이 불가능한 최종판결을 내려야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다.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판례가 되고 행정부의 정책과 역사의 물길을 바꿔놓을 수 있다. 

책은 1969년에서 1975년까지의 연방대법원을 살펴본다. 당시의 미국은 변곡점을 지나고 있었다. 안으로는 증폭되는 인권운동이 구체제와 충돌을 일으켰으며, 밖으로는 명분없이 개입한 베트남에서 군사적 성과마저 거두지 못하고 지리멸렬했다.  

법알못임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본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데는 연방대법원이 정치사회의 이슈의 장이라는 특성이 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언론보도에서부터 포르노까지 이르는 표현의 자유, 낙태를 금지하거나 혹은 허용한다면 태아의 어느시기부터 해야할지에 대한 논란, 닉슨을 사임으로 몰아넣은 워터게이트 판결 등 일련의 중대하고 예민한 사안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기대하며 연방대법원으로 다다른다.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사안들의 선악으로 양분할 수 없는 복합성에 주목했다. 수많은 사람과 집단의 이익이 상충되는 쟁점을 옳다 그르다식으로 확답하기 힘들다. 도덕적인 기준이라면 어떤가. 모세의 십계명을 길잡이로 삼기엔 현대사회는 너무 고도화되고 거대해졌다.  

예를 들면 인종차별에 대한 사안들이 그렇다. 인종분리를 고수하거나 즉각 철폐를 원하는 양측만 있지는 않다. 인종분리철폐에 수긍하면서도 속도조절을 원하는 중도파 역시 존재한다. 연방대법원의 대법관들 역시 인종차별에 반대하면서도 그들이 내리는 판결이 주정부의 자치성을 훼손하는 판례로 남을지 고민한다.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9인의 대법관이다. 법관 커리어의 정점에 서있는 그들은 언뜻 신처럼 군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건조일색일 것같은 법조계에서도 드라마를 짚어내는 작가의 관찰로 묘사되는 대법관들 역시 인간일 뿐이었다. 평범한 나로서는 도저히 절충시키기 힘든 양극단 사이에서 대법관들 역시 고뇌한다.  

판결에 이르는 과정은 책의 백미이다. 대통령의 추천과 의회의 승인을 거쳐 채워진 대법관은 진보와 보수가 적절히 배분되어 있다. 이들이 저마다 신념을 앞세우거나 법의 논리에 꺽이며 합종연횡하는 광경은 그 자체로 정치다. 그러면서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여론을 담아내고 미국사회를 보다 정의롭고 열린사회로 인도했다. 적어도 책에서 그리는 1970년대 초중반의 연방대법원은 그러했다.  

나아가서 군사력과 GDP로 수치화할 수 없는 미국 국력의 근원을 발견한다. 연방대법원의 9인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작동하는 데에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서 초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절묘하기 때문이다. 또한 판결로 시민에게서 부여받은 도덕적 자신감 덕분이다. 최종적으로 신뢰받는 국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뢰를 잃어 막대한 비용을 치루고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까. 기관 혹은 국가는 시민의 신뢰를 얻어내야만 진정 막강해질 수 있음을 많은 이들이 본 책을 읽고 깨닫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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