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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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어 익숙한 쿳시의 작법이 '나라의 심장부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지배계급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고, 분명하지 않은 서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그렇다. 그럼에도 새롭다.  

소설은 아마도 20세기 초로 추정되는 남아프리카의 농장을 배경으로 한다. 홀아비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외동딸 마그다는 결혼적령기를 넘겼다. 이야기는 초반부터 격정적이다. 마그다는 새어머니와 아버지를 도끼로 살해하고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한다. 이는 곧 마그다의 상상으로 밝혀진다. 하지만 곧이어 마그다는 정말로 아버지를 총으로 죽여버린다.  

방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아버지의 시중을 들면서 신경과민의 노처녀로 늙어가는 마그다의 인식으로 쓰여지는 세계는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그다의 내면은 생생히 다가온다. 가까운 우체국까지 자전거로 이틀을 달려야하는 오지의 대농장에 아버지도 사라지고 홀로 된 마그다에게 압도적인 무기력이 찾아온다. 손길이 필요할수록 손을 놓아버리는 심리상태는 나도 경험이 있으므로 무척 공감하며 읽어갔다. 

권위적인 가장이었던 아버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제거해버린 마그다가 후에 찾아오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마그다는 스칼렛 오하라가 아니었다. 집안의 흑인 일꾼에게 강간을 당하지만 남성성에 굴복하며 매달리기까지 한다. 이는 인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의 한계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성별을 떠나 인간의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최종에 그녀는 진취적으로 자립하거나 남성에 종속되거나 아니면 고향을 떠나거나 하는 상식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다. 너무나 쉽지만 아무도 택하지 않았을, 그곳에서 죽게될 운명을 선택했다. 세상의 기대를 배반하며 기뻐하는 그녀에 전율하며 그녀를 동정한다.  

소설의 많은 부분은 로디지아를 무대로 삼았던 도리스 레싱의 '풀잎은 노래한다'와 유사해서 특유의 불친절한 쿳시의 문장을 오감이 풍성한 레싱의 글로 보완하며 따라갔다. 그러나 두 소설은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풀잎은 노래한다'는 여성작가의 작품답게 남성중심의 세계에 대항하는 여성이라는 고전적인 구도에 머물러 있었다.  

'나라의 심장부에서'도 역시 유사해보이지만 앞서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작가는 지배계급에 속하면서도 피압제자로 위치한 여성성을 택한 것일 뿐이다. 피부색으로 결정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도를 소재로 삼은 이전의 문학들과는 달리 지배계층의 한 곳에 자리한 쿳시의 위치선정은 절묘하다 하겠다. 본 작품은 세계의 근원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이전 문학보다 전진해있고 현대적이다. 무시무시한 도발로 맺는 결말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을 것이다. 나름 까다롭다고 자부하는 내 기준으로 감히 걸작이라 평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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