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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의 방방
최민지 지음 / 미디어창비 / 2020년 4월
평점 :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백화점 옥상에
놀이동산이 생겼다.
놀이동산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요즘 마트에서 볼 수 있는 놀이기구를 몇 가지 가져다 놓은 것이었는데,
그 시대 놀거리도 많지 않고, 놀 곳도 마땅치 않았던 우리에게는
신세계나 다름 없었다.
100원이면 10분 정도 방방이를 탈 수 있었는데
처음 타본 거대 방방의 위력은 실로 위대했다.
386 컴퓨터와 피아노를 모두 가지고 있는 동네에 몇 안되는 집이었지만
방방은 디거나 너구리 게임보다,
을지악보 피스를 연주하는 재미보다
더 강렬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시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가장 높은 곳에서
더 높이 뛸 수 있다는 것.
방~방~~ 뛰다 보면
하늘 속으로 우주 멀리까지 피융- 하고 날아갈 것 같았다.
친구와 함께 방방을 뛰다 드러누워 있으면
울렁울렁 출렁출렁 구름 위에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땅으로 내려오고나면
무릎이 휙휙 꺾이는 관성의 법칙(!)도 체감할 수 있었더랬다.
대학에 와서
방방이 방방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 내가 홍길동도 아니고 방방을 방방이라 부르지 못하다니..
이 한마디에 다 큰 녀석들끼리 길가에서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었다.
'마법의 방방'은
심심해 마을의 지루하고 지친 사람들을 위한 방방이다.
하지만
아무리 '마법'의 방방이라고 써놓아도
아무도 올라서지 않는다.
누구도 나서지 않는 그 순간 빨간 모자를 쓴 녀석이 용감하게
방방에 올라선다.
그렇게 던져진 아이는
구름을 가르고
하늘을 넘어
온동네의 방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을 만나
우주까지 솟구친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방방
다시 타지 않고는 못 배긴다.
모두를 눈물의 바다 속에 한바탕 담갔다가 건져내 빨랫줄에 널어 두었던
서현의 '눈물바다'에서만큼은 아니지만
통통 뛰는 몇 동작만으로
먼 곳까지 다녀오는 상상력만큼은 자랑할만 하다.
줄 서서 기다렸지만, 방방 위에 오르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어떤 방방의 모습이 그려질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