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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 더 초이스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6월
평점 :
기다리던 작가님의 10년만의 신간은 이러한 충격적인 발췌로 등장했다.
소녀의 시신을 땅에서 파낸 날
우리는 그렇게 한 소년을 만났다.
엿새 후 소년은 내게 죽었다.
한 소녀가 사고로 인해 죽게 되고 동시에 한 소년을 구하게 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초반의 분위기와 다르게 흘러간다. 감춰진 것이 많은 소년, 이카드는 자신이 잃어버린 검을 찾아다니고 티르는 그런 소년의 비밀을 알아챈다. 각자의 방식으로 마을이 한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죽은 소녀의 어머니, 포인도트 부인은 이렇게 외친다.
약속을 받았어요.
지상과 지하의 주인에게 칼을 찾아다 주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주인은 그들을 지상으로 지상으로 데려올거에요!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 빠질수 없는 요소는 부활의 이야기다. 포인도트 부인은 죽은 자신의 아이를 되살리기 위해 칼을 찾아다니고 티르는 그 검이 필연적으로 이카드가 찾고 있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상과 지하의 주인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세상의 주인을 신이라고 칭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혹은 악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또는 이세상에 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신이라면 세상에 이렇게 가혹할리가 없다고 하면서.
이파리 보안관과 티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에 대한 믿음은 제각각이다. 부활을 조건으로 내건 이가 누구일지 독자들도 유추하면서 동시에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지상과 지하의 주인이 누구인지 추리하는 것에 다 한번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 어느쪽도 가능할만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정말이지 상황은 뜻밖의 답을 내놓는다. 지상과 지하의 주인이 식물이라고?
예? 무슨 소리예요. 지상과 지하의 주인은 식물이잖아요?
삶과 죽음을 지나 부활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 행위의 주체가 신에서 악마로 굳게 믿고 있는 주인공들에게 뜻밖의 반론을 한다. 지상과 지하의 주인은 식물이다!
마법검 메뚜기. 동물의 배신자를 추적하도록 만들어진 이 검은 동물들을 배신하고 식물의 왕을 탄생시킬 자의 손으로 들어가도록 되어있다는데 우연이든 필연이든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마침내 변방의 한 개척자 마을의 어느 야채 뱀파이어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렇다면 그가 필시 식물에게 칼을 만들어 주어 식물의 왕을 등극시킬거라고, 소년 이카드는 주장했다.
수 많은 먹이사슬 피라미드에 최하위층을 담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식물이 동물을 멸종시킬 대적자가 된다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비웃을 것이다. 동물이 식물의 노예가 된다는 것 부터가 어불성설이라고. 하지만 땅에서 양분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땅에서 죽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대로 다시 부활시킨다는 것을 증명하는 이가 나타났다. 티르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인물이.
안녕. 티르
과거에 본인이 죽였던 인물이 되살아나 태연하게 말을 거는 상황이란 어떤 것일까.
티르는 지데가 되살아난다면 더이상 본인이 살인자가 아니라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녀를 부인하면서도 동시에 부인하고 싶어하지않아했다. 지데의 생존이란 티르에게는 죄의 무게를 더는 것과 같기 때문이고,아니면 양심의 가책을 덜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지데는 식물들의 사절로써 지상에 부활했고 사람들에게 식물들의 요구를 전한다.
120일 후에 인류의 3분의 1이 죽을테지만 앞으로 식물을 태우지 않으면 부활시켜주겠다.
겨울이 다가와 식물을 태우지 못한 인류는 얼어죽을테지만, 태우지만 않는다면 부활시켜주겠다.
식물들이 내놓은 어이없는 요구에 살아있는 자들은 반발하지만 죽은 이들을 그리워하는 자들은 동시에 혼란에 빠집니다. 식물을 태우지만 않는다면 죽은 자들을 다시 만나고, 죽어도 되살아 난다고?
식물들이 더이상 사람의 손에 불타지 않겠다고 결정했으니까요
얼핏보면 어렵지 않은 조건같지만 불을 잃는다면 인류의 문명을 잃게 된다는 것과 동일하고,
죽음이 사라진다면 삶은 의미를 잃는다는 점을 상기시켜보자면 식물은 살아있는 자들에게 존엄을 포기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조건을 건 것이다.
그럼 부활도 죄입니다. 살인과 부활은 같은 것이니까요
어째서 부활이 죄인지, 살인과 부활이 같다고 말하게 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라고 하고싶다. 끝까지 이야기를 모두 말해주기엔 아까운 이야기니 이정도로 설명하자면 분명 흥미있는 사람들은 책을 끝까지 읽을거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부활은 정말 어떻게 되는건지, 지데가 살아났다면 케이토가 어떻게 반응했을건지, 식물들의 왕이 진짜 있는건지,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는 티르가 정말로 소년을 죽였는지, 후후와 피피가 무엇인지,삶과 죽음, 부활과 인간같은 여러 이야기들이 남아있으니까. 여하튼.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처럼 살인과 부활 또한 같다고 말하는 논리가 어떤것인지, 작가는 오버더 초이스 한권에 이르러 조목조목 풀어나가는 것이 신선했으며, 매력적이었다.
또한 제목이 오버 더 초이스라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봤을때 가장 큰 주제인 부활을 중점으로 놓고 보자면 어떠한 선택지를 넘어섰다는 의미가 아닐까 유추해본다. 삶과 죽음과 같은 것들은 택하는 것 이전의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오버 더 호라이즌과 다르게 오버 더 초이스 한권 자체가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기에 주인공들의 호흡이나 여러 주장들이 단편과 달리 생각보다 많은 것을 이 한권에 담고 있었지만 이 작가님의 팬이라면이 또한 하나의 즐거움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깊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세상의 당연한 이치들을 다른 식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제시하는 것이라던가, 혹은 다른 누군가가 말했듯이 식물을 태우지 말라는 것을 감나무를 태우지 말라고 본다던지 말이다.
작중에서 제일 좋았던 것중 하나는 역시 이거였다.
후후와 피피에 걸고
티르 스트라이크를 하기 좋은 시대가 티르에게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