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
N. K. 제미신 지음, 이나경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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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F와 판타지 그리고 그 업계에서 뿜어내는 인종차별과 

내가 스스로 내면화한 인종차별에 맞서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야 했는지. 

내 민족에게 미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책을 읽기에 앞서서, 책머리나 책 들어가기 전의 작가의 말을 꼭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처음부터 다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작가의 말보다는 읽는 소설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여겨 그것만 읽는 사람도 틀림없이 있을것이다. 나 또한 한때는 그러하였기에 하는 소리인데 이 책은 읽기 전에 꼭 작가의 말을 읽고나서 단편집을 읽기를 권하고 싶다.


흔히들 SF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이든, 아포칼립스이든, 현재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분기점의 이야기이든. 그리고 높은 확률로 그 이야기에 나오는 인종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백인, 그것도 아마도 남성을 떠올린다는 것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을까? 어쩌면 내가 국내의 SF작품을 많이 보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혹은 SF장르 영화나 소설 속 주인공들이 거의 다 백인이 까닭도 있겠으며 어쩌면 그들만이 미디어와 책에 오르내리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기억을 못하거나.


그리고 제미신은 말한다. 공상과학 미래과학의 이야기에서 한가지 인종과 성별만이 주를 이루고 그들의 이야기만 주구장창 이어진다면 그건 곧 다른 이들은 그 미래에 포함되지 않는것이 아닌가. 흑인 남성이 주인공인 SF소설? 혹은 판타지라도 좋다. 그것이 얼마나 되고 미디어에 얼마나 노출되는가? 보이지 않으면 잊혀지고 그들은 곧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제미신의 말을 읽고 내가 얼마나 놀랐으며 이 단편집에서 작가가 바란것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쓰고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을 받아들이고 내가 보고싶은 미래를 

자아내기 시작하자 얼마나 흐뭇한지.




제미신은 자신의 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제외시키지 않았다. 그말인즉슨, 작중에 나오는 주인공은 적어도 흑인이거나 여성이거나 혹은 소수자성을 가지고 있거나. 작가가 중요시 생각하는 것들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백인만이 가득찬 세상은 존재할 수 없다. 혹은 모든 인구가 남자이거나. 그러나 작가가 백인이거나 남성이라면 아무리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고 권리를 대변한다고 해도,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오로지 덜 불편할뿐. 그렇기에 흑인 여성 작가인 제미신은 꼭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물론 그녀가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읽어야한다는것이 아니라 우리 독자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작가가 되짚어주고 보여주고 느끼게해줄 부분이 분명 있다는 뜻이다.


무엇을 겪기전에 갖는 기대가 크면 실망할 가능성도 커지지만 이 책은 기대감을 갖고 읽어도 그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인종차별, 성차별, 소수자 차별에 대해 작가가 지닌 입장이나 생각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복시켜나가는지가 매우 흥미로웠다.


연금술사


어느날 낯선 남자가 프란카가 일하는 여관으로 찾아온다. 여관에 묵기 위해서가 아니라 프란카가 만드는 요리를 먹기 위해서 온 것인데 그는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더니 한가지 은밀한 제안을 한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재료와 레시피로 요리를 해달라고 한 것인데 그녀는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받아들였다고 하기에는 나무나 괴물같은 레시피였으나 그녀는 실력있는 셰프였고 커리어에서 정점을 찍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뛰어난 셰프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어떠한 일 때문에 영광의 자리에서 추락해 한미한 여관의 주방장을 하고있지만 그녀는 능력이 있었고 그 레시피를 이뤄낼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가 레시피대로 만들어낸 음식은 사람이 먹을 수 있을지조차 의심되는 케이크가 완성되었고 낯선 남자는 그것을 기뻐하며 먹었다. 그녀가 만든 케이크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했고 낯선 남자는 이번에는 그녀에게 레시피가 없이, 그녀가 하고싶은 대로 요리를 만들어 보라고 권하는데....




읽으면서 꼭 마녀와 스프나 고전에 나오는 낯선 이방인이 사실은 마술사였다! 같은 환상동화가 생각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 책의 장르는 SF이며 마법사가 아니라 연금술사가 나온다. 그러나 그 연금술사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연금술사와는 조금 달랐지만 요리 레시피들을 떠오르면 과학자나 요리사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작가는 그것을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제자와 스승, 조수와 요리사 그 관계가 예상과 다르게 이뤄졌고 야심차고 유쾌한 셰프 프란카의 미래가 기대되는 깔끔한 마무리에 단편집을 읽으면서 좋은 점을 되새겼다.


바로 앞으로의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것. 물론 장편도 그것이 가능하지만 단편은 짧은 이야기에 흥미로움을 더하며 그 여운으로 이 두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되어나갈지 바로 그려지는 점이 때로는 감질나서 아쉽고 때로는 뿌듯하여 단편집은 선물상자를 꺼내어 읽는것 같은 매력이 있다. 책 제목의 연금술사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꽤나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붉은 흙의 마녀



인종차별과 폭행의 시기가 만연한 시대에 엠에게 하얀 숙녀가 찾아온다. 이 땅의 희생양을 잡아먹고 자라온 그들은 엠에게 그녀의 딸을 요구하고 당연하지만 엠은 그것을 거절한다. 하얀 숙녀는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미래를 보여주며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면 그녀의 딸만큼은 안온히 살아남을 것을 약속했으나 엠은, 딸 폴린은 이를 거절한다.



아이를 잡아가는 요정과 이 땅의 주술사가 부리는 마법은 지팡이를 들고 마법의 주문을 외치며 빛이 번쩍이는 것이 아닌 그 땅에 오래전부터 내려왔던 것들인 로즈마리, 세이지, 무화과 같은 것들로 이루어진다. 


자유를 위해 흘릴 피를 흘리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그 자유가 꼭 이루어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변화는 고통스럽고 길고 엠, 에멀리는 그것을 믿기에는 너무나 오래 살았다. 그러나 미래를 보는 폴린은 그녀가 본 하얀 집에 흑인 남성이 살고 있는 것들, 자유를 찾기 위해 싸우고 마침내 찾아오는 평화와 같은 것들을 포기할 수 없어 하얀 숙녀에게 그녀 자신을 내주기로 하는데.....



프리덤 라이즈가 시작되기 전, 아직 백인과 흑인이 완전한 차별 속에 놓여있던 때에 오래된 적이 찾아온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조차 입밖으로 내뱉기 어려운 때에 세상이 바뀔거라 믿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고 이대로 안주하기에는 너무 멀리온 시기에 불확실한 미래를 믿고 내달리는 것을 얼마나 어려울지. 그 다음 세대를 위해 폴린을 남겨둔 에멀리와 남겨진 자의 의무와 변하리라 믿고 미래가 현재가 되기까지 살아온 폴린. 그리고 그 아랫세대로 이어지는 에멀리의 이야기까지 하나의 단편 속에 담겨진 이야기는 작가가 어떤 가치에 중점을 두고 있는지 분명하다.


세상은 아직까지도 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차별 또한 만연하다. 인종차별로 시위가 극대화 되어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기성 세대들은 말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너가 내 나이가 되어서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이것은 작중 에멀리의 시선이다. 그러나 아직 희망을 놓지 않고 싸우고 있는 세대, 폴린이 이야기한다. 언젠가 세상은 바뀔것이고 그것이 지난하고 긴 시간일지라도 그 때는 반드시 올거라고.


흑인이 버스 안에서 자리에 앉는 것 조차 자유롭지 못한 세대에서 지금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암울한 현재에 미래가 바뀌지 않을거라는 절망이 다가와도 결국 반드시 변하는 것은 있다는 희망을 주는 메세지가 아주 마음에 와닿았던 단편이다.





폐수 엔진



흑인 여성 제미니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타국에 숨어들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과학의 결정체를 실현시켜줄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흑인들의 나라를 백인들의 공격에서 무사히 지켜내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녀는 해당 나라에 숨어들기까지 아주 많은 신분을 위조했는데 때로는 노예였으며 때로는 노역자이기도 했고 때로는 백인의 정부 어떨때는 자유민의 신분으로 바꿔챘으나 그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계급과 특권이 엄격한 그 나라에서 하위계층의 사람의 피부가 유색인종이라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말이지 웃을 수 없는 이유였다.


폐수를 정제해 새로운 에너지 발전의 원동력을 삼으려는 그 계획에는 해당 기관을 실제로 구현해줄 사람이 필요했고 유색인종임에도 부유층에 속하는 과학자 릴리유를 만나 그것을 요청하려고 한다. 그러나 릴리유는 머리가 굳고 편견에 박힌 사람이었으며 본인은 과학자가 아니라 공학자라는 이유로 도면을 보기조차 거부한다. 포기하고 돌아가야하는 제미니에게 릴리유의 여동생이자 과학에 재능이 있는 유지니는 한줄기 빛과도 같았고... 여러가지 의미로 빛과도 같았다. 그러나 반쯤 스파이이자 해당 국가에서는 반동분자에 가까운 제미니에게는 암살자가 쳐들어왔고 제미니 뿐만 아니라 유지니까지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단순히 흑인 여성만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쓸수 있는 것은 똑같이 자유롭지 못하고 차별당하는 입장이기 때문이 아닐까한다. 그것을 너무 섹슈얼하게 그리거나 아무리 봐도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묘사가 아닌 말 그대로 여성이고 사랑하는 사람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것에 헤테로적 시각을 넣지 않는 것부터가 좋았는데 왜 이런 말을 했느냐... 


제미니는 아름다운 흑인 여성이었고 유지니 또한 부잣집 딸이었고 부유층이었지만 그녀 또한 여성이고 유색인종이라 그런 세상에서 할수 있는 제약이 어마무시한 세상이다. 이러한 제한된 세계에서 자유를 향해 손짓하는 제미니가 얼마나 매력적이었을지, 그것이 단순히 배움과 신분 직업 인종에 대한 차별 뿐만 아니라 성별에 대한 제한 조차 없는 세계라니!

같은 성별끼리 가족이 되고 그와 준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말에 흥분하는 부잣집 아가씨라니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톡톡튀는 유머또한 그 사랑스러움에 한몫을 한다.


물론 신분의 격차와 모든걸 버리고 떠나야하기 때문에 제미니는 유지니를 처음엔 단념하려했지만 아무리 부유하고 명성이 높아도 인종 때문에 그 집에 자신을 죽이려는 백인이 죽어있다면 결국 법은 백인의 편을 들거라는 말이 비수처럼 박히고 현실이 그러했다.


그러나 자유와 사랑 그리고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 두사람이 제 3세계와 같은 곳으로 떠나는 마무리가 참으로 현실과 비현실 그 언저리에 있는 듯 했다. 실제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지만 두 여성은 분명 자신의 손으로 행복을 일굴거라는 그런 확신이 주는 마무리가 유쾌함을 남기고 어쩌면 정말 이런 세상이 올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당 단편집의 단편은 총 22개지만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것만 적어보았는데 다른 단편집도 정말 재미있어서 서평 이벤트로 접하게 된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해당 작가의 유명한 다른 작품도 읽어보려고 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많은 소수자들이 글을 쓰고 그것을 우리가 읽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시각들이나 알지만 넘어가고 있었던 것들 우리에게 자연스러운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나 싶었던 서양의 문화와 이야기들 대신에 낯설지만 좀더 알고 싶은 나라의 문화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글을 읽는게 얼마나 즐거운지 간만에 다시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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