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재난복구전문가 루시 이스트호프의 <먼지가 가라앉은 뒤>를 읽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든는 것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출판사 창비의 책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창비의 책을 읽다 보면 흥미와 재미가 있지만 사회적인 메시지와 우리가 노력해야 할 것들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나는 행복하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 센치해져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산다는 건 무엇일까' 같은 것들.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사고를 볼 때마다 피해자들은 '왜 그런 일을 당했을까?', '왜 그들이 희생되어야 하는걸까?'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재난복구전문가가 말하는 사회의 일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읽고 느껴보고 싶었다.

사회적 인재(人災)에 대하여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우리 사회의 인재들을 떠올렸다. 평소 올림픽대로에서 운전하다보면 많은 사고들을 목격한다. 그럴 때마다 만감이 교차한다. 저 사고에 개인의 책임은 어느 정도이며, 인재의 가능성은 없는지 하며 생각하며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난다. 그 중,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처럼 누군가의 부주의가 한순간에 타인의 삶을 무너뜨리는 일도 있을 것이다. 종종 '한 번쯤은 괜찮겠지'하며 넘기지만, 그 한 번이 누군가에겐 인생 전체의 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루시 이스트호프는 말한다. "재난은 우리 자신과 사회, 그리고 지도자의 민낯을 드러낸다." 재난은 자연의 힘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와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예전에는 음주운전이 흔했고, 실수라는 범주 안에 비겁하게 숨어서 가볍게 넘기곤 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한 실수가 누군가의 가족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했고 사회는 바뀌었다.

졸음운전은 어떠한가. 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대한민국 사회문화 속에서 피로가 쌓이고, 결국 또 다른 비극을 낳고 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인재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졸음쉼터 등 여러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실효성 있는 변화가 부족하다. 졸음을 이겨내며 운전대를 잡을 수 밖에 없는 근로자들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나 자신도 개인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회복과 연대의 힘

저자는 재난이 끝난 뒤 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전한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 다 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면, 그 목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애도와 회복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가능하다는 말이다. 리버풀FC의 오랜 팬으로 힐스버러 참사(경기장 과다 인원 수용으로 인한 대규모 압사사고) 이야기를 더 가까이 들어볼 수 있었다.

저자는 리버풀 출신으로 자랐다. 해당 참사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보다 더 슬펐던 것은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시선이었다.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 언론의 그릇된 기자정신은 리버풀 사람들의 비극을 더 깊고 오래 가게 만들었다. 저자는 그 상황을 가장 가까이 지켜보았고, 나 또한 이야기를 듣고 국가의 역할과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생각했다.

우리 눈에 보이지만 가까이 있지 않아 지나치기 쉬운 사건·사고들. 그런 일들을 우리는 정보과잉의 시대에서 빠르고 자주 잊는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공감했으면 한다. 조금이라도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이다.

인간의 존엄, 그리고 묵묵히 나아감

"모든 재난 한 건 한 건이 내 인생과 나라는 사람의 면면을 밎어냈다." 저자는 재난을 단순히 '끝'으로 규정짓지 않는다.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본다. 인간으로서 혹은 직업인으로서.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참 오래 곱씹었다. 일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재난을 마주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우리를 빚는다고 생각했다. 이어서 "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들은 담담히 앞으로 나아간다. 인생은 고통을 에워싼 채 묵묵히 계속된다." 이 문장은 나에게 깊은 통찰력을 주었다.

재난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그 뒤를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사회 속에서 '책임'에 대한 가치를 깊게 이해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묵묵히 다음을 준비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싶은 사람은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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