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백나무성의 라푼젤
배명은 지음 / 고블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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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아름다운 공포’라는 말이 과연 성립할 수 있을까. 『측백나무성의 라푼젤』 의 공포는 귀신이 나오고 피가 흐르는 단순한 무서움에서 오지 않는다. 민속과 설화, 잔혹동화, 현실의 폭력까지 서로 다른 결의 공포가 담겨 있는데, 모두 읽고 나면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떠올려보게 되는 책이다.

단편 중 「매혹」은 폐쇄적인 시골 마을과 그곳에서 모시는 수상한 신이라는,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소재인데도 읽다 보면 아주 섬뜩해진다.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폭력이 점점 심해지면서 고통받던 서은은 마을 여자들의 도움으로 그 마을이 모시는 신인 천녀를 만나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서은에게 천녀는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이상할 만큼 매혹적으로 느껴진다. “네 고통을 나에게 주면 돼.”라는 말도 처음에는 서은을 구해주겠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누군가의 고통을 대신 가져가는 것이 정말 구원일까. 제목이 아주 의미심장했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귀신보다 현실이 더 무서운 작품이다. 층간소음과 이웃의 사생활, 그리고 눈앞에서 벌어지는 데이트 폭력까지 너무 현실적인 공간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읽는 동안 불편한 긴장감이 계속된다. 새벽 3시 30분, 아무도 없는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주기도문 소리처럼 일상의 틈에 비현실적인 공포가 스며드는 방식도 좋았다.

그리고 표제작 「측백나무성의 라푼젤」에 대해서도 빼놓을 수 없다. 측백나무와 가시 울타리에 둘러싸인 집, 창문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얼굴,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까지 동화 속 라푼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훨씬 섬뜩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비틀어낸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건 그 집 안에서 누군가가 오랫동안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채 상처받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라푼젤의 탑이 외부와 단절된 집이 되면서, 사랑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붙잡아두는 것도 또 다른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일곱 편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공포를 만들어내지만 그 끝에는 상실과 후회, 폭력과 억압이 남는다. 그래서 분명 무서운 이야기들이 이상하게 슬프게 느껴지기도 하고, 우리는 그 안의 인물들에 대해서도 한번더 바라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가해진 폭력을 외면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측백나무성의라푼젤 #배명은 #고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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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페페페
짐리원 지음 / 아작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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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짐리원의 『펫페페페』는 멸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따뜻한 느낌의 단편 소설집이다. 무려 열 편이나 되는 단편들을 읽는 동안 기분이 자꾸 서늘해지곤 하는데, 단순히 세계의 멸망이 무서워서 생기는 절망은 확실히 아니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계절과 풍경, 그리고 우리 주위의 생명들은 생각보다 취약하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어쩐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어서일까. 그래서 그런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시원한 바람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오늘따라 푸른 하늘을 한 번 더 바라보게 되는 책이다.

역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표제작 〈펫페페페〉다. 플라스틱을 먹는 오리들이 인간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예나와 보현은 오리들을 빼돌리고, 결국 하늘로 날려 보낸다. 오리들이 서울 어딘가에서 쓰레기를 먹다가 죽을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완벽하게 살려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유롭게 놓아주는 이들의 결정이 상당히 먹먹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장면이다. 과연 인간이 모든 생명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가 있는 걸까.

또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은 읽으면서 괜히 마음이 뭉클해지는 단편이었다. 미래에는 사라져버린 가을의 바람과 15~20도의 적정하고 좋은 날씨를 느끼기 위해 사람들이 과거의 서울까지 찾아온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 평범한 날씨가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돈을 내고 찾아가야 할 기억이 된다는 설정이 물을 돈주고 사먹게 된 현재를 보는것 같기도 해 은근 씁쓸하기도 하다.

“언젠가 없어진다고 해도 지금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처럼, 이 책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가 끝나가는 순간에도 빛과 바람을 좋아할 수 있고, 누군가를 걱정할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날아가려는 생명을 기꺼이 놓아주기도 한다. 『펫페페페』는 이렇게 멸망의 어두움 속에서도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준다. 세계는 끝나기 직전에도 아름답다는 문장처럼. 어쩌면 그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이 세계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펫페페페 #짐리원 #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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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기담 - 경성의 밤을 뒤흔든 살인 사건으로 들여다본 식민지 조선의 속살
전봉관 지음 / 더숲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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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일단 『경성기담』은 두께가 어마어마한 책이다. 하지만 그만큼 재밌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역사를 읽는 재미가 꼭 위대한 인물이나 거대한 사건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경성기담』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 이 책에는 100년 전 신문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기, 도난 같은 사건들이 담겨 있지만, 사건들만 주구장창 파헤치는 그런 뻔한 책은 아니다. 그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욕망과 돈, 가족과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식민지 조선의 일상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야기는 ‘이수탁 살부 공판’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100만 원의 재산을 협잡배들에게 빼앗기고, 자신이 써보지도 못한 20여만 원의 빚까지 떠안은 이수탁은 한순간에 백만장자에서 알거지가 된다. 재산이 사라지자 하이에나처럼 몰려들던 사람들도, 친척들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게다가 이수탁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결국 살부 혐의로 8년 1개월을 옥살이한 뒤에야 협잡배들의 모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무죄가 확정되어 풀려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씁쓸했다.

반면 ‘경의선 특급열차 2만 원 도난 사건’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금고 위에 앉아 졸고 있던 사람에게서 현금 2만 원이 사라졌는데, 열차가 잠깐 멈춘 시간까지 따져도 도난당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금고를 열고 돈만 골라 가져갔는지,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묘미는 사건을 따라가며 당시의 월급과 쌀값, 화폐 가치 같은 자료를 함께 보여주는 부분에 있다. ‘100만 원’, ‘2만 원’이라는 돈의 무게도 지금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 속 한 줄에 불과할 수 있는 사건에 구체적인 생활상이 더해지면서, 100년 전의 경성이 갑자기 멀지 않은 곳처럼 느껴진다. 또 살인범과 피해자, 사기꾼과 부호, 하녀와 노동자, 경찰과 기자까지, 일반 역사책에서는 만나볼 수 없던 그들의 욕망과 실수, 탐욕과 좌절을 따라가는 것 자체도 굉정히 흥미롭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삶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고도 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100년 전 사람들의 욕망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오면서도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경성기담』은 과거의 기이한 사건들을 모아놓은 흥미 위주의 책을 넘어서, 사건을 통해 사람을 보고, 사람을 통해 한 시대를 들여다보게 하는 생생한 역사 르포르타주가 되었다고 하겠다.

#경성기담 #전봉관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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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의 생애
버지니아 울프 지음, 우르밀라 세샤기리 엮음, 이미애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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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미공개 소설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기다릴 가치가 충분한 책!! 다른 분들께도 추천하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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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을 잇는 바다
이요하라 신 지음, 김다미 옮김 / 비채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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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책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읽는 일은 생각보다 즐거웠다. 블라인드 서평단으로 제공받아 작가도,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펼쳤는데 그래서인지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짐작하지 못한 채 온전히 나만의 리듬으로 읽을 수 있었다. 『파랑을 잇는 바다』는 과학과 자연을 소재로 하지만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를 이야기하는 단편집이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 ‘잊히는 것과 남겨지는 것’, ‘돌아가고 싶은 곳’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표제작 「파랑을 잇는 바다」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사람이 백 명도 채 살지 않는 외딴 어촌마을 히메가우라에서 유일한 중학생으로 살아가는 사쓰키가 이 단편의 주인공이다. 개발로 제방이 생기면서 바다거북이 찾아오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결국 사쓰키는 거북이를 지키기 위해 몰래 알을 옮긴다. 사쓰키는 그곳에서 만난 외지인과의 인연을 통해 자신이 품고 있던 고민에 대해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바다거북을 늘리려면 연구자를 내쫓지 말고 제방부터 없애야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끊임없이 바꾸고 밀어붙이면서, 우리는 정작 그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자리를 빼앗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되는 구절이었다.

사와 할머니의 “좋아하는 곳, 마음에 드는 곳, 거기서 살면 돼”라는 말은 사쓰키뿐 아니라 나에게도 묘하게 위로가 되어 준다. 연어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오고, 바다거북이 자신이 태어난 모래사장을 찾아오듯 사람에게도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는 ‘돌아갈 곳’이 있는 것 같다. 설령 그곳의 모습이 달라지고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과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에 의미가 있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보니, 제목 속 ‘파랑을 잇는 바다’는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떠남과 돌아옴을 이어주는 거대한 흐름이라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사실 다섯 편의 단편이 결국 같은 질문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건네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는가, 그리고 사라져가는 것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가 바로 그 질문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해서 더 좋았던 책이다. 어쩐지 읽고 나니 외로워야 할 누군가와의 이별도 더이상 외롭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가 헤어지고 멀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서로의 시간을 이어가고 있을 것 같아서.

#파랑을잇는바다 #이요하라신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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