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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기담 - 경성의 밤을 뒤흔든 살인 사건으로 들여다본 식민지 조선의 속살
전봉관 지음 / 더숲 / 2026년 9월
평점 :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일단 『경성기담』은 두께가 어마어마한 책이다. 하지만 그만큼 재밌어서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역사를 읽는 재미가 꼭 위대한 인물이나 거대한 사건에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경성기담』을 읽으며 다시금 느꼈다. 이 책에는 100년 전 신문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 사기, 도난 같은 사건들이 담겨 있지만, 사건들만 주구장창 파헤치는 그런 뻔한 책은 아니다. 그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욕망과 돈, 가족과 사랑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식민지 조선의 일상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다.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이야기는 ‘이수탁 살부 공판’이었다. 아버지가 남긴 100만 원의 재산을 협잡배들에게 빼앗기고, 자신이 써보지도 못한 20여만 원의 빚까지 떠안은 이수탁은 한순간에 백만장자에서 알거지가 된다. 재산이 사라지자 하이에나처럼 몰려들던 사람들도, 친척들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게다가 이수탁은 아버지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 결국 살부 혐의로 8년 1개월을 옥살이한 뒤에야 협잡배들의 모함 가능성이 제기되고, 무죄가 확정되어 풀려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씁쓸했다.
반면 ‘경의선 특급열차 2만 원 도난 사건’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금고 위에 앉아 졸고 있던 사람에게서 현금 2만 원이 사라졌는데, 열차가 잠깐 멈춘 시간까지 따져도 도난당할 틈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금고를 열고 돈만 골라 가져갔는지, 정말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묘미는 사건을 따라가며 당시의 월급과 쌀값, 화폐 가치 같은 자료를 함께 보여주는 부분에 있다. ‘100만 원’, ‘2만 원’이라는 돈의 무게도 지금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 속 한 줄에 불과할 수 있는 사건에 구체적인 생활상이 더해지면서, 100년 전의 경성이 갑자기 멀지 않은 곳처럼 느껴진다. 또 살인범과 피해자, 사기꾼과 부호, 하녀와 노동자, 경찰과 기자까지, 일반 역사책에서는 만나볼 수 없던 그들의 욕망과 실수, 탐욕과 좌절을 따라가는 것 자체도 굉정히 흥미롭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도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던 수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삶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고도 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100년 전 사람들의 욕망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다가오면서도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경성기담』은 과거의 기이한 사건들을 모아놓은 흥미 위주의 책을 넘어서, 사건을 통해 사람을 보고, 사람을 통해 한 시대를 들여다보게 하는 생생한 역사 르포르타주가 되었다고 하겠다.
#경성기담 #전봉관 #더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