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 ㅣ 트리플 37
임솔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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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임솔아의 『우리가 보고 있지 않았던 장면들』은 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37번째 책이다. 세 편의 소설과 에세이, 작품 해설이 함께 실려 있으며, 읽고 나면 인물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아주 작은 순간들이 빛나며 한동안 기억에 머무르는 책이기도 하다.

「금빛 베드 러너」의 지윤은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지윤아, 웃어야지”라는 말을 들으며 살아온 지윤에게 웃음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기보다 끊임없이 의식하고 노력해서 만들어온 표정에 가깝다. 인상적인 건 지윤이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폐암 말기인 엄마와 서울 여행을 떠난 지윤은 엄마의 기침이 시작되자 자신이 믿는 약을 찾아 쇼핑몰을 헤매지만 결국 약을 구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온다. 결국 금빛 베드 러너로 엉뚱하게 엄마를 둘러두는 지윤의 모습은 조금 서툴고 엉뚱해 보이지만, 엄마를 어떻게든 돌보고 싶어 하는 그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지윤을 바라보고 웃는다. 이 이야기는 자폐를 가진 사람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지 않으며, 오히려 지윤 역시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랑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도희의 한 시간」에서는 기차라는 공간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엄마에 대한 마음을 천천히 되짚어가는 도희가 있다. 특히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는 객실이 처음부터 막혀 있어 건너갈 수 없다는 설정이 의미심장하다. 도희는 기차 안에서 노수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어린 시절 엄마와 함께 기차를 탔던 기억까지 떠올리며 자신이 그동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들여다본다. 어린 도희의 편지에 답한 노수녀의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모든 마음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어도, 상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도 서로에게 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따뜻하다고만 말하기엔 조금 쓸쓸하고, 그렇다고 아주 어둡다고 하기엔 어렴풋이 온기가 돈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타인의 장면을 뒤늦게 상상하게 만들고,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곁에 머무르는 것이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의 어떤 장면을 보지 못한 채 살아왔을까. 그 질문 하나를 계속 곱씹어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보고있지않았던장면들 #임솔아 #자음과모음 #트리플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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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아일랜드 - 희귀 원고 도난 사건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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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존 그리샴의 『카미노 아일랜드』는 평소 작가의 법정 스릴러를 생각하고 읽었다면 조금 의외일 수 있는 작품이다. 변호사도 법정 공방도 없고, 대신 사라진 피츠제럴드의 자필 원고를 둘러싸고 도둑, 보험사, 사설 조직, 작가까지 모두 얽히면서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범죄를 다루면서도 분위기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아 읽는 내내 긴장과 재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피츠제럴드의 원고 5편이 도난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절도범들이 수장고에서 서랍을 하나씩 뜯어내며 마침내 원고를 찾아내는 장면이 책에 확 몰입하게 한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범인들의 계획이 틀어지고 원고까지 사라지면서 진짜 추적이 시작된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브루스와 작가 머서의 관계도 돋보였다. 원고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접근한 머서는 처음부터 순수한 의도로 카미노 아일랜드에 온 사람이 아니지만, 브루스와 시간을 보내면서 계획과 감정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 서로를 이용하려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감정에 빠져드는 이야기라서 더 흥미로웠다.

이 책은 피츠제럴드의 원고라는 엄청난 미끼를 중심으로 돈과 욕망, 배신과 속임수가 이어지는데도 전체적인 분위기는 의외로 가볍고 유쾌해서 좋다. 가슴 졸이는 공포보다도 원고의 행방에 대한 궁금증이 점차 커지고, 마지막까지 여러 사람의 속내를 의심하며 읽는 재미가 생긴다. 이 리뷰를 읽어주는 여러분들이라면 모두 그렇겠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희귀본과 자필 원고를 둘러싼 이야기도 꽤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책과 범죄, 로맨스가 적당히 섞여서 꽤 재미있게 읽었다. 존 그리샴이 법정이라는 그만의 익숙한 무대를 벗어나서도 이렇게 능청스럽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색다르게 느껴지던 책이다.

#카미노아일랜드 #존그리샴 #니들북 #하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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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호시스 ㅣ 슬라우 하우스
믹 헤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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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의 원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읽었지만서도, 드라마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던 책이다. 《슬로 호시스》의 주인공들이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유능하고 완벽한 스파이들이 아니라는 점이 참 재미있기도 하다. 이들은 실수 한 번으로 본부에서 밀려나 ‘느린 말’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슬라우 하우스에서 의미 없는 서류 작업이나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이들이 어느 날 무슬림 청년 납치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실패’했다는 이들이지만, 이들을 단순 실패자, 루저로만 분류하는건 좀 아닌것 같다. 리버는 계속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려 하고, 잭슨 램은 “여기를 왜 슬라우 하우스라고 부르는지 알지?”라고 빈정거리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상황을 읽어내는 인물이다. 담배에 찌들고 무례하고 불결하기까지 한 램은 정작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면 아주 믿음직스러운 인물이 된다. 꽤 묘한 쾌감이 있는 책이다.

빠르게 몰아붙이는 첩보물과는 다르게, 이 책은 서로의 약점을 쥐고 수를 읽으며 움직이는 사람들의 심리전이 주를 이루어서 더 인상적이었다. MI5 내부의 정치와 자리싸움, 책임을 떠넘기려는 사람들, 살아남기 위해 누구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분위기까지 살벌하고 수싸움이 가득하다. 스파이 이야기이지만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눈치 보고 버티는 우리들의 모습이 어쩐지 겹쳐 보이기도 하는 지점이다.

이 책에서는 한 번 밀려났음에도 다시 자신의 자리를 증명하려는 ‘느린 말’들에게 조명을 비추어 준다. 완벽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인간적인 스파이들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면 원작에서는 이들의 관계와 심리, 잭슨 램이라는 인물의 묘한 매력을 나만의 템포대로 조금 더 천천히 음미해볼 수 있다는 점도 꽤 반갑다. “내 시절은 끝났을지도 모르지. 근데 다시는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아.”라는 말처럼, 한물간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의 짜릿함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스릴러 소설이다.

#슬로호시스 #믹헤런 #비채 #김영사 #애플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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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의 삽목
마쓰시타 류노스케 지음, 마미영 옮김 / 반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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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년 전 유골과 실종된 여동생의 DNA가 일치한다.” 이 엄청난 한 문장만으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서 바로 책을 펼치게 되는 소설이다. 대학원생 하루카가 히말라야에서 발견된 200년 전 유골이 실종된 여동생 시하루의 DNA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하루카가 진실을 알아내기도 전에 사건은 계속 꼬여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시미자키 교수가 갑작스럽게 살해되고, 중요한 단서였던 유골마저 연구실에서 감쪽같이 사라진다. 여기에 석유통을 들고 나타나 자신을 “인골을 수집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소개하는, 인간성이 결여된 우시오라는 남자까지 등장하며, 전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은근 소름 돋았던 건 유전자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뒤틀린 호기심과, 생명을 마음대로 만들고 바꾸려는 인간의 오만함이 아닐까 싶다. “유전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향한 비틀린 호기심, 그리고 신이 되겠다는 오만함이었다.”라는 문장이 더 섬뜩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책이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들이 어디까지 욕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마다 마음이 불안해진다.

의붓아버지가 운영하는 제약회사와 수목회라는 종교단체, 그리고 24년 전 히말라야에서 있었던 발굴 조사까지 여동생의 실종과 하나씩 연결되면서 사건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등장인물이 많고 시점도 계속 바뀌는데도 이야기는 길을 잃지 않는다. “나는 완전히 이 수국의, 아니 수국 삽목의 미궁을 헤매고 있었다.” 오히려 독자인 내가 진실을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미궁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드는 느낌이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 제목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 또 좋았다. 완독후 제목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제목 자체가 사실은 하나의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복선이었다는 걸 깨달으며 머리를 한 대 콩 맞은 느낌이다. 스포가 될 수 있기에 일단 여기까지 적도록 하겠다.

과학 미스터리의 지적인 재미와 추적 스릴러의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하다가, 마지막 반전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머리를 강타하는 엄청난 책이다. 잔혹한 장면 없이도 과학적인 설정만으로도 강렬한 재미를 주기에, 궁금하시면 우선 읽어보시라 권유해드리고 싶다. 간만에 멋진 미스터리 스릴러를 만났다.

#1차원의삽목 #마쓰시타류노스케 #오팬하우스 #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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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지음, 해도연 옮김, 듀나 해설 / 다산책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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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프리드 베스터의 『타이거! 타이거!』는 읽기 전부터 ‘1956년에 나온 SF 고전’이라는 점이 가장 궁금했던 책이다. 지금의 SF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순간이동, 신체 개조, 거대 기업, 우주 전쟁 같은 설정이 무려 70년 전에는 과연 어떻게 그려졌을까 싶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신없어서 초반에는 조금 얼떨떨하지만, 그 속도에 익숙해지고 나니 다음, 다음장은! 하며 마구 넘기게 된다.

걸리버 포일은 우주선 사고로 170일 동안 우주를 떠돌다가 자신을 발견하고도 그냥 지나쳐버린 보르가호를 보며 복수를 다짐한다. 처음의 포일은 정말 별다른 목표도 없는 사람인디 반면, 그 한 번의 배신이 사람 하나를 완전히 바꿔놓아 버린다. 야만적인 환경에서 살아남고, 얼굴에 호랑이 문신까지 새긴 채 점점 괴물처럼 변해가는 모습은 거칠고 불편하게 느껴지면서도, 분노와 복수심 때문에 살아남으려 했던 사람이 결국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가는 모습으로도 비춰진다.

‘존트’라는 설정도 흥미로웠다. 생각만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개념이니 정말 편리한 세상이다 싶었는데, 그 세계에서도 범죄와 전쟁, 계급과 권력의 문제는 그대로다. 기술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는데도 인간의 욕망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씁쓸한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진보란 서로 적대적인 극단과 파괴적인 결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발전이라는 것이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겠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이 작품이 정말 오래된 SF라는 사실이다. 지금 보면 꽤나 익숙한 설정들이 많은데, 오히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이 이미 195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놀라움이 커진다. 활자의 크기와 배열까지 이용해 감각을 표현하는 부분에서는 당시 작가의 상상력과 실험 정신도 느낄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SF의 여러 장면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직접 본 기분이 들게 해주는 책이다. 낯설고 거칠고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라 더 매력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타이거타이거 #앨프리드베스터 #다산책방 #듀나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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