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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재앙의 책
오다 마사쿠니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3년 12월
평점 :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나도 평소 공포스럽고 기괴한 설정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화: 재앙의 책』은 그 기준을 한참 뛰어넘는 작품이다. 읽는 내내 기분이 서서히 잠식되는 느낌이 든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질수록 '혹시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나면 어쩌지' 하는 찝찝한 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게 하는 걸작이다.
이 책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입과 귀, 눈, 살, 코, 머리카락처럼 누구나 가진 '몸'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책을 먹으면 책 속 세계에 잠식되는 〈식서〉, 타인의 귓속으로 들어가 기억을 읽는 〈미미모구리〉, 잘라낸 코를 심어 인간을 재생산하는 〈농장〉, 머리카락을 신처럼 숭배하는 〈머리카락 재앙〉이 그 단편들이다. 설정만 보면 황당한데도 내용을 까보면 이상하리만큼 설득력이 있어서 더 소름이 돋는다.
단순히 잔인하거나 자극적인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기에 더 현실과 가깝게 맞닿아 있다. 오다 마사쿠니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 혐오를 아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다. 저자의 단편들을 읽다보면, 공포의 대상이 괴물이 아니라 결국 인간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우리는 먼 옛날 지옥에 떨어져서 여기 있는 거야. 익숙해진 나머지 지옥은 더 아래쪽에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라는 소름끼치는 문장이 바로 이 책을 대표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머리카락 재앙〉이 가장 인상 깊었다. 잘린 머리카락을 "산 자의 세계에서 추방된 시체 같다"고 표현하는 문장을 읽으니, 평소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마저 낯설게 보인다. 오다 마사쿠니는 이렇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데 정말 뛰어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호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다소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피와 신체 훼손에 대한 묘사도 적지 않고, 읽고 나서도 찝찝한 기분이 오래 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속 파고들어 읽게 되는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파고드는 이야기의 힘 때문이다.
『화: 재앙의 책』은 이처럼 무서움을 선사하는 것에 비단 그치지 않고,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감정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단편소설집이다. 한 편을 읽을 때마다 기괴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되며, 마지막 장을 다 읽고 나면 현실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뛰어난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결국 인간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나게 해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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