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토록 무미건조한 월요일에 나를 찾아왔군요. 이 세상의 덧없음을 아는 사람이여,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넙니다. 우리의 사랑만이 덧없는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나에게 비밀을 말해주세요.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길어요."

 

 

  소설가 김중혁(43)의 장편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문학과지성사)은 지워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딜리터(deleter)’에 대한 이야기로 자신의 비밀을 탐정에게 의뢰해 세상에서 지워지게 한다는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탐정의 이름은 구동치. 누군가의 과거가 담긴 하드디스크며 일기장,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것을 딜리팅 해주는 게 구동치의 업무이다. 그의 사무실엔 1920년대에 녹음된 이탈리아 테너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 사무실에 고객이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 그럼 일 얘기를 해볼까요?”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삭제해주신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들었다면 그런 거겠죠.” “저는…실은…딜리팅에 대해서 상의하려고 왔습니다.”

  딜리팅은 사람들의 불안을 먹으며 성장하는 신종 직업인 것이다. 구동치와 계약한 사람은 죽은 뒤에 기억되고 싶은 부분만 남기고 떠날 수 있다. 힘 있는 재력가와 그의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거래가 성립되고 그들로부터 비밀을 지워달라는 요청을 받은 구동치는 점점 깊게 그 검은 거래에 휘말린다. 급기야 타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구동치의 삶을 억누르고 그는 점점 자신의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에 먹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51쪽)

 

  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문장을 지웁니다.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또 지웁니다. 그걸 지워야 새로운 걸 또 쓸 수 있어요. 썼다가 또 지웁니다. 그걸 지워야 새로운 걸 또 쓸 수 있어요. 새로운 걸 쓰려면 계속 지워야 해요. 그렇게 지우고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누군가는 후배들과 후학들을 위해 모든 걸 지우고 지우다 마지막에 남는 것들, 그런 것들이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 누군가는 후배들과 후학들을 위해 모든 걸 지우지 말고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소설이란 건 말이죠. 길이 없는 겁니다. 길이 다 다른 겁니다. 제가 지운 글은, 그냥 제 길이고 제가 쳐낸 나뭇가지들일 뿐입니다. 그걸 보고 뭘 배울 수 있겠어요. 어설픈 길만 만들어줄 뿐입니다.....

  덤불에 길을 내려면 잔가지들을 계속 쳐내야죠. 잔가지들이 있으면 시야를 가립니다. (82쪽)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 우리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를 줄여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85쪽)

 

  결국은 자기 중심적인 치밀함이 돋보이는 그의 계획을 들으며 구동치는 자신의 흔적을 지우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아 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328쪽)

 

  때로는 알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비밀도 필요한 법이다.(345쪽)

 

 

  소설은 인간의 불안을 미끼로 성장하는 이른바 불안산업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김중혁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죽음 이후에 남겨진 삶의 자취는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생은 딜리팅에 의해 지워지거나 수정될 수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화차火車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

 

<휴직중인 형사 혼마 슌스케는 어느 날 먼 친척 청년 가즈야로부터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결혼을 앞두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려다 심사과정에서 과거에 개인파산을 신청한 적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는 것. 의아한 것은 그녀 본인 역시 자신의 파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눈치였다는 것이다.

단순한 실종사건으로 생각하고 개인적으로 조사를 시작한 혼마는 시간이 갈수록 그녀 뒤에 또 다른 여자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다중채무자라는 딱지를 내버리고 타인의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려 했던 한 여자. 대체 세키네 쇼코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녀는 왜 그렇게까지 자신의 존재를 감추려 했는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자기주장을 하는 행위는 자신이 떳떳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9쪽)

 

 

마찬가지입니다. 다중 채무자들을 싸잡아서 '인간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판단하기는 쉽죠. 하지만 그건 자동차 사고를 낸 운전자한테 전후 사정은 전혀 들어보지 않고 '운전 실력이 나빠서 그렇다. 그런 인간들한테 면허같은 걸 줄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과 같은 소립니다. 그 증거로 '자 봐라! 한번도 사고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죠.(142쪽)

 

 

세키네 쇼코 양은 특별히 형편없는 여성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바람의 방향만 조금 바뀌었어도 혼마씨나 저 자신한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상황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 두시기 바랍니다. 안 그러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148쪽)

 

 

그녀는 도망 다니고 있다. 아직 그 정체는 모르지만 집요하게 자신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그녀는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일을 혼자서 해내고 있다. 그녀는 혼자다. 누구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고 누구의 명령에 따를 필요도 없다.

밝은 꽃무늬 벽지를 한 장 벗겨 내면, 그 밑은 철근으로 지탱하고 있는 콘크리트 벽이 숨어 있다. 누구도 쉽게 돌파할 수 없고 무너뜨릴 수도 없는 벽이.

그 철근과 같은 존재 의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그녀는 그런 여자다. 그리고 그런 여자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른다.(165쪽)

 

죽은 자는 산 자의 내면에 흔적을 남기고 간다. 사라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벗어 던진 윗도리에 체온이 남아 있는 것처럼, 머리빗 사이에 머리카락이 끼어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무언가가 남아 있다.(189쪽)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신조 교코는 외로웠고 혼자였기 때문에 타인의 신분을 가로채는 짓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 한명이라도, 그녀의 처지를 이ㅐ하고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는 남자가 있었다면, 그녀는 신조 교코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협력자의 손을 빌려 시조 교코로서 도망갈 일만 생각지 않았을까? 이름이란 타인들에게 불리고 인정받음으로써 존재한다. 곁에서 신조 교코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녀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의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는 펑크 난 타이어를 버리듯 절대로 신조 교코란 이름을 버리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름에는 사랑이 스며 있으니까.(283쪽)

 

“뱀이 왜 껍질을 벗으려는지 알고 계세요?”

“껍질을 벗는다라면...?”

“허물을 벗잖아요? 그거 생명을 걸고 하는 거래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나요. 그래도 허물을 벗으려고 하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성장하기 위해서요.”

“아니오. 열심히 몇 번이고 허물을 벗는 동안 언젠가는 다리가 나올 거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래요. 이번에야말로, 이번에야말로 하면서요.”

“별 상관도 없는데 말이죠. 다리 같은 게 있든 없든 뱀은 뱀인데.”

“그렇지만 뱀의 생각은 다른가 봐요. 다리가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있는 쪽이 행복하다고요. 여기까지는 제 남편의 말씀. 지금부터는 제 생각인데요. 이 세상에는 다리는 필요하지만 허물을 벗는데 지쳐 버렸거나, 아니면 게으름뱅이거나, 방법조차 모르는 뱀은 얼마든지 있다고 봐요. 그런 뱀한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겨울을 팔아대는 똑똑한 뱀도 있는 거죠. 그리ㅐ고 빚을 져서라도 그 거울을 갖고 싶어 하는 뱀도 있는 거구요.”(311쪽)

 

 

'두 사람은 같은 족속이었다.'

순간 혼마의 뇌리를 스친 것은 바로 그 말이었다. 세키네 쇼코와 신조 교코... 두 사람은 같은 괴로움을 짊어지고 살았던 것이다. 같은 것에 쫓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가! 이 두 사람은 동족끼리 서로 잡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329쪽)

 

자신한테 일어난 일을 그런 식으로 밖에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란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가야 할 이 사회에는 자기 자신과 현실에 대한 불만을 폭발적이고도 광적인 힘으로 해결하려는 인간들이 더욱더 늘어날 것이라고. 그런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지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을 키워 줘야 한다.(373쪽)

 

 

이 세상에는 타인이 하는 일이 전부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걸 보면 우선 그걸 부숴 버리고 나서 자기한테 편리한 대로 변명을 한대요. 그러니까 보케를 왜 죽였는지 타자키가 아무리 변명을 해도 그런 걸 들을 필요는 없댔어요. 그리고 중요한 건, 어떤 생각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했느냐 하는 거래요.(37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술자리였다. 이야기 끝에 심한 공격을 당했다.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구차함이 느껴져 꾹꾹 억눌렀다. 차마 내 뱉지 못한 말들이 분노라는 형태로 자꾸 울컥거렸다. 그 날 밤 꿈속에서 명확하지 않은 상대를 향해 이유모를 화를 폭발시켰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기분은 좀 찝찝했지만 속은 후련했다.

  생각해보니 화를 밖으로 표출하는 일이란 나에게 일종의 두려움이었다. 분노란 얼마든지 참아도 마땅한 일이며 자신을 억누르는 일은 습관이자 미덕처럼 여겨졌다.

 

  “날 좀 내버려둬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거요?”

 

  꿈속에서의 분노의 발현은 바로 내 안의 아까끼인 작은 인간이 외치는 소리였다. 19세기 고골이 표현한 아까끼란 인물은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을 받아야 마땅한 오늘 날의 바로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고골의 뻬쩨르부르그 이야기에 나타난 공통 테마는 혼돈과 무질서의 도시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속물성과 탐욕이다. 속물들은 추상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그들의 주요 관심은 주로 세속적인 욕망으로 의, 식. 주, 성, 부, 명예, 승진에 대한 관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러한 속물성은 단순히 도덕적이며 인간적인 결함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속물성은 어떠한 창조성도 결여한 채 그 사회의 가장 저열한 정신만을 모방하고 있는 자의 속성인 것이다.<작품해설 318쪽>”

 

 

  “인간은 누구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실 성취욕이 악은 아니다. 그러나 지나친 욕구는 일그러진 욕망으로 변하고 왜곡된 행위로 나타난다. 자존심이 부패하여 교만이 되고, 물질적 안정을 추구하는 마음이 지나쳐 탐심이 되고, 개인적 친교를 바라는 바람이 타락하여 욕정이 되는 것이다. 고통은 분노가 되고 굶주림은 과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숭배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질투가 되고 휴식을 바라는 마음이 게으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309쪽>”

 

 

“악마란 외부의 초자연적인 어둡고 불가사의한 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양심을 저버렸을 때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그를 정신적 파멸로 이끌어가는 인간의 내면에 살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악마성은 인간이 어떤 가치 추구 하느냐에 따라 수십 배로, 확대되어 나타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이 발붙일 공간이 없을 정도로 극복 가능한 것이 될 수도 있다.<310쪽>”

 

이러한 인간들의 속성에 대한 고골식의 해답은 이러하다.

 

“자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성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수도와 정진을 통해서 악의 힘을 물리치는 것, 바로 종교적 귀의를 해결책으로 제시한다.<309쪽>”

 

  그렇다면 내 안의 작은 인간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 인간으로 변하게 할 수는 없을까? 없다에 한 표다. 인간 내면에 마그마처럼 들끓는 모든 세속적 욕망을 근절시킬 수 없으므로.

  우리 내면에는 악마도 천사도 공존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다만 우리 안의 속물적 근성에 주눅 들지 않고 보편적인 사회통념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설계한 자신의 이상향으로 가기 위해 정진할 수 있을 때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마다 다른 자신의 이상향은 분명 인간의 본질과 충돌하겠고 그 충돌 과정 중에서 자신의 성찰을 늦추지 않는다면 그 충돌은 곧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근접해 가는 하나의 계단이 될 것이다.

  고골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게하고 씁쓸한 미소를 짓게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테레사 유감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 그림일까?

 

 

 

  그녀는 사랑했으며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 또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될 그에 대한 사랑에 수치심을 느꼈다. 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건조한 그녀의 일상을 상쇄시켜줄 낱말로 포장된 것은 아닌지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전날 밤을 상기하며 그녀는 명치끝이 아려왔다.

  “당신을 다 가질 수 없어서 유감이지만 어쩔 수 없는 내 한계를 느껴요.”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침묵이 관계의 골을 더 깊게 파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팔을 뒷머리에 두른 체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솟아나는 눈물을 삼켜야했다.

  어쩌면 그로서도 그녀의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집요하게 그녀에게 위로를 가져다주었다. 눈가에 어리는 눈물 때문인지, 눈을 부시게 하는 햇빛 때문인지, 그녀는 눈을 감았다. 저절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가만히, 가슴 아프게 고독을 되씹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물결이 내부의 고독을 건져 올리며 그녀의 존재를 환기시켰다.

  그 순간 그녀는 열 살은 더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삶에 굴복한 나머지 피로해 지친 자신을 발견한 셈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오랫동안 유보해왔던 현실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맞닥뜨려야만 했다.

  “나만 사랑해줘요.”

  실현가능하지 않았던 꿈을 꾸며 뻔뻔할 만큼 지독한 열정을 퍼부었던 그와의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부질없었던 것인가, 그녀는 지금 자신에게 묻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는 그에 대한 고통스런 욕망을 느꼈다.

  “나는 두려워. 나는 겁이 나. 제발.”

  충동 뿐, 입 밖으로 내 뱉고 싶었던 말들이 거세게 소용돌이를 치다 침몰했다. 어쩌면 그도 누구에겐가 진심으로 그런 말들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말이다. 단지 그의 상대가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그녀는 자조의 입술을 깨물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쾌락이 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쯤은 우둔하고 때로는 상스러운 욕망에 거침없이 몸을 맡기리라 예상되는 그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변하고자 하는 어떤 의지도 없었다. 아니 어쩌면 육체의 쾌락이 그의 삶의 진부함을 상쇄해주리라 기대하며 사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일으켰기에 얼마간은 참아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새삼 그에게 반감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일까 그녀는 곱씹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그 없이, 그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그들은 여섯 개의 연속적인 우연을 거쳐 서로에게 이르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 사랑했고 함께 죽었다.  슬픔이란 그들에게 마지막 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행복은 그들이 함께 있다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에게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이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Muss es sein? Es muss sein. Es muss sein. 그래야만 하는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선율의 비장함이 그들을  파고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은 그녀에게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나 할까?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 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p5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란 장미가 좋아요? 흑장미가 좋아요? 마끼아또, 에소프레소? 비오는 날이 좋아요? 바람 부는 날이 좋아요?’ 등등을 포함한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며 이 호기심은 관심을 대변한다. 이 관심은 무한대의 확장을 계속하며 결국 사랑이라는 색깔로 귀착된다. 상대의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은 애착으로 까지 이르고 그 애착이 도를 넘으면 고통이 된다.

  이 고통과 신음하던 시절이 까마득하며 이제 그 시절이 그립기마저하다. 어느새 나는 사랑이라는 열병에 기인한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그 누구라도 부러운 나이가 되었다. 그토록 선명했던 내 색깔, 내 자아, 내 정체성은 점점 퇴색되고 있다. 자학하는 심정으로 내 인생을 정리해보면 몇 번씩 서툰 붓질로 덧칠해놓은 탁한 유화, 덕지덕지 파리똥이 묻어있는 이발소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이르게 된다. 독한 양주라도 들이켜고 싶은 밤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희구하며 살았을까? 명예와 사랑이라고 답하는 것이 왜 이리 쓰기만 할까? 과연 내가 희구하며 살았던 것들이 나에게 그리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가치를 알 수 없었기에 또 그것들에 100퍼센트의 나를 던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의 덧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또 그렇게 살아가야하다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남아있는 내 생애에 누군가 다시 이렇게 묻기라도 할 사람이 있을까? 아니라면 나는 또 누구에겐가 그렇게 물을 수 있는 용기와 기회가 오기는 올까?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p44>

 

 

  고독 형을 선고 받고 살아있는 내내 신음해야 하는 내일이, 완성작이 없는 밑그림, 초벌뿐인 인생이 무겁기만 하다. 오늘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