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은 그녀에게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는 여전히 갖고 있기나 할까? 스무 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누구에겐가 속내를 털어 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p57>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은 ‘노란 장미가 좋아요? 흑장미가 좋아요? 마끼아또, 에소프레소? 비오는 날이 좋아요? 바람 부는 날이 좋아요?’ 등등을 포함한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며 이 호기심은 관심을 대변한다. 이 관심은 무한대의 확장을 계속하며 결국 사랑이라는 색깔로 귀착된다. 상대의 모든 것에 대한 궁금증은 애착으로 까지 이르고 그 애착이 도를 넘으면 고통이 된다.

  이 고통과 신음하던 시절이 까마득하며 이제 그 시절이 그립기마저하다. 어느새 나는 사랑이라는 열병에 기인한 고통과 슬픔을 느끼는 그 누구라도 부러운 나이가 되었다. 그토록 선명했던 내 색깔, 내 자아, 내 정체성은 점점 퇴색되고 있다. 자학하는 심정으로 내 인생을 정리해보면 몇 번씩 서툰 붓질로 덧칠해놓은 탁한 유화, 덕지덕지 파리똥이 묻어있는 이발소 그림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이르게 된다. 독한 양주라도 들이켜고 싶은 밤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희구하며 살았을까? 명예와 사랑이라고 답하는 것이 왜 이리 쓰기만 할까? 과연 내가 희구하며 살았던 것들이 나에게 그리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가치를 알 수 없었기에 또 그것들에 100퍼센트의 나를 던질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인생의 덧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또 그렇게 살아가야하다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남아있는 내 생애에 누군가 다시 이렇게 묻기라도 할 사람이 있을까? 아니라면 나는 또 누구에겐가 그렇게 물을 수 있는 용기와 기회가 오기는 올까?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p44>

 

 

  고독 형을 선고 받고 살아있는 내내 신음해야 하는 내일이, 완성작이 없는 밑그림, 초벌뿐인 인생이 무겁기만 하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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