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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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 호로비츠의 ‘관찰의 인문학’을 읽고

우리는 주목하는 능력은 있지만 그것을 잊고 잘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의 시각에는 프랑스인들이 직업적 왜곡이라고 이름 붙인 특정한 편향성이 존재한다. 월리암 제임스는 말했다. 내가 무엇을 경험하느냐는 내가 어디에 주목하느냐에 달렸다고.
어쩌면 우리는 보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눈을 사용하지만, 시선이 닿은 대상을 경박하게 판단하고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기호를 보지만 그 의미는 보지 못한다. 남이 우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흥미를 끄는 요소에 초점을 맞추고 관심을 쏟는 한편 나머지는 전부 어둡고 먼지 쌓인 구석에 내버려두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스포트라이트 이론이라고 한다.

같은 동네를 십여 차례 산책하는 경험, 지질학자, 일러스트레이터, 의사, 시각장애인, 아기, 음향 엔지니어, 곤충박사, 타이퍼그라포, 야생동물 연구가, 도시 사회학자, 반려견과 함께 익숙해 보이지만 낯선 길을 걸어 보는 경험은 우리에게는 특별하다.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고 첫 5년 동안 깨어 있는 두 시간마다 단어 하나씩을 배운다고 한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팔을 이용해 시선이 머무는 지점을 확장시켜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본 것을 같이 볼 수 있게 하는 것, 즉 아이들에게 산책은 공유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지질학자의 눈으로 보면 도시의 대부분의 인공물이란 것도 자연적으로 발생한 재료들을 해체하고 조합해 사람의 목적에 맞게 다시 만들어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이 도시는 아니 모든 도시는 분해되어 다음 세대가 건물을 쌓아 올리는 데 쓸 재료가 될 것이다. 암석과 암석으로 쌓아 올린 건물로 가득한 거리를 거니는 것이 이제 영겁의 시간을 누비는 여행이 곧 도시에서의 산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퍼그라포에게는 우리가 보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단순한 기호 몇 개에도 과거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이다.

곤충박사에게는 우리가 지나친 거의 모든 나무에 벌레 흔적이 있고 그 잎사귀는 구멍투성이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한 종류의 식물, 심지어는 단 하나의 식물이 벌레에게는 온 우주를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야생동물 연구가에게 탐색 이미지란 혼돈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는 기대의 시각적 형태이다. 우리는 집중과 기대의 결합을 이용해 세상의 감각적 혼돈을 쉽게 이해하는 단위로 분류하고, 비로소 사람으로서 기능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인에게 누가 어떻게 ‘본다’는 단어를 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그(녀)는 “저는 볼 수 있어요. ‘본다’는 단어의 말 뜻은 하나가 아니라고요.”라고 답할지 모른다. 그(녀)에게 비는 시야의 모든 것을 두드리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에 색채라는 담요를 덮어씌우기도 할 것이다. 불규칙적이고 조각난 세상에서 꾸준히 떨어지는 빗방울은 단숨에 상황 전체를 충만하게 보여 주고,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는 잔디밭, 언덕, 울타리, 길, 덤불을 또렷이 그려낼 것이다. 빗방울이 이리저리 튀고 똑똑 떨어지는 소리로 사물의 거리와 변화와 높이 그리고 재질과 곡선이 단번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각장애인에게 소리는 세상을 보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자세히 살펴보는 행위에 가치를 두는 새로운 문화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관찰하는 사람의 눈앞에는 하찮은 동시에 굉장한 것들의 어마어마한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 반드시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먼 곳을 여행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통 멀리 여행할수록 결과는 나쁠 뿐이다. 단지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차리는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지닌 지식으로 말미암아 시선이 변화하는 방식, 즉 아는 만큼 보는 능력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이다. 세상의 온갖 요소들 중에서 찾아내야 하는 것, 보아야 하는 것, 반대로 무시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선택하는 메카니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어디를 봐야 할지 아는 게 추적의 절반이고 그곳을 보는 게 나머지 절반이다. 한 곳에 더 오래 멈춰 서 있을수록 더 많은 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지닌 지식으로 말미암아 시선이 변화하는 방식, 즉 ‘아는 만큼 보는 능력’이야말로 정말 소중한 것이다. 진정한 여행이란 낯선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눈으로, 그것도 백 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우리는 저마다 보고 있으며 우리 자신이기도 한 백가지 우주를 보는 것이다. 다양한 시선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 잘 정리된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살만한 세상, 공존의 행복을 맛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참 지식은 나를 위한 것임과 동시에 남을 위한 것이 된다. 그래서 제대로 보고 심도 있게 안다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중요한 수단이요 방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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