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 아저씨 문학과지성 시인선 3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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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 광주항쟁 이후의 전두환 독재시대, 노골적인 저항시가 없다고 해서 정현종 시인이 그 시기를 편하게 지낸 것은 아닙니다. 살아 있는 것이 창피하고 치욕스러웠습니다. “그런 정치적인 분위기가 작품에 알게 모르게 작용한 게 틀림없을 것입니다. 억압의 상태를 쓸 수는 있지만, 억압의 원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요. 고전적인 명제가 예술이 삶을 견디게 하는 것이라면, 그런 흔적들이 명백하게 정치적인 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배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정치적 억압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한 시들에 대한 정 시인의 생각. “그것은 일종의 체질이나 개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때그때의 문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나의 체질은 아닙니다. 70년대 80년대 정치적 상황에서는 노골적으로 비판한다거나 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정치권력과 매체, 그리고 쓰는 사람 자신이 3중으로 검열을 했으니까요. 모두 자기 방식대로 그런 것을 뚫고 나오려고 하는 노력들은 했다고 봅니다. 좀 더 직설적인 경우는 화제가 되었을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을 것이고, 예술가의 삶의 배경과 체질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나쁜 정치 환경 때문에 안으로 꼬여들어간 부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좀 더 복잡한 예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나는 물론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작품을 쓴 적은 없지만,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있기는 합니다.”(이상 인용은 《정현종 깊이 읽기》, 문학과지성사, 1999, 33/34면) 앞서 말했듯이 〈최근의 밤하늘〉그런 정치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를 산문으로 바꿔 서사화 합니다. 우선 첫 연.

 

옛날엔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이 있었으나

지금은

빵 하나 나 하나

빵 둘 나 둘이 있을 뿐이다

정신도 육체도 죽을 쑤고 있고

우리들의 피는 위대한 미래를 위한

맹물이 되고 있다

 

별 하나, 나 하나...에서 !빵 하나, 나 하나...의 나라로. 꿈을 노래하는 동화의 나라에서 생활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의 세계로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밥을 짓는데 죽이 됐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잘 되는 게 없습니다. ‘위대한 미래’, 전제의 냄새가 짙게 풍깁니다. 독재자의 시대가 찾아 왔습니다, ‘위대한 미래’를 건설한다며, 내 피를 빼앗아 갔지만, 제대로 쓰이는 게 아니니, 내 피는 맹물이나 마찬가지가 됐습니다.

둘째 연.

 

최근의 밤하늘을 보라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말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의 고통과 죽음을

별들은 자기들의 빛으로

가슴 깊이 감싸주고 있다

실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우리들을 향하여

유언流言 같은 별빛을 던지고 있다

 

현실 세계에 사달이 난 게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죽음’이, 참담한 비극이 찾아왔으나, 그를 막아내기는커녕, 사람들은 그를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기억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오직 밤하늘의 별들만 그 빛으로 이 비극을 감싸주고 있으나, 별들조차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고 애매모호한, 유언 같은 희미한 빛만을 던지고 있습니다.

정 시인은 김지하 시인과 엮여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갔가 고초를 겪은 일이 있습니다.정 시인의 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썩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이런 조그마하고 사적인 삽화가 1970년대 씌어진 정치시에 드리워져 있는 무거움과 괴로움의 배경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느끼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다.” 같은 시기, 같은 상황, 창피하고 치욕스런 몸과 맘의 상태에서 쓴 시들입니다.

 

통 사 초痛史抄

 

옛날옛날에 덫과 올가미가 살았습니다. 덫은 올가미를 노리고 올가미는 덫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생명 있는 건 돌뿐이었습니다

생명 있는 건 쇠뿐이었습니다

우리야 돌 속의 돌이요 쇠 속의 쇠였습니다

덫이 올가미를 덮치는 순간 그야 올가미는 덫을 얽었습니다.

아, 덫과 올가미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78/1994, 28면)

(정현종, 《정현종 시전집 I》, 문학과지성사, 1999, 124면)

다시 정현종 시인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의 한국과 그 국민의 한심한 운명에 대해 써본 것인데, 1974년 9월부터 약 6개월 동안 미국 아이오와대학 국제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동안에는, 군사독재 아래 참담한 상태에 있는 한국에 대한 연민에 휩싸여, 눈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동안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때 쓴 작품이 〈술잔을 들며〉와 〈다시 술잔을 들며〉다.”(이상 인용, 정현종 산문집, 《두터운 삶을 향하여》, 문학과지성사, 2015, 82/83면) 두 시를 싣습니다.

 

술잔을 들며

― 한국, 내 사랑 나의 사슬

 

1

불행이 내게 와서

노래 부르라 말한다

피 흘리는 영혼 내게 와서

노래 부르라 말한다.

내 인생은 비어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잃어 버렸다고 대답하자

고통이 내게 와서 말한다―

내 그대의 뿌리에 내려가

그대의 피가 되리니

내 별 아래 태어난 그대

내 피로 꽃 피우고 잎 피워

그 빛과 향기로 모든 것을 채우라.

 

2

우리들의 고통을 헤아려 보겠다고?

모래알을 헤아리면 된다

모래알 하나에서 우주를 본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수 많은 우주를 갖고 있다.

 

3

김씨 이씨네의 한 많은

두부찌게들이 보고 싶습니다

보면 먹지 않고

한없이 바라만 보겠습니다

고통의 별 아래 태어난 우리들,

한국을 사랑하는 것은

그 별빛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새의 날개를 만든 뒤

더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겨드랑이에서 눈물이 돋습니다

돋으면서

슬픔으로 날자 상처로 날자 외칩니다

 

4

꽃들 좀 피어나거라

지식 국화, 농부 진달래

학생 장미, 노동 패랭이

제값으로 피어나는 소리 좀 열려라

남도창, 정선 아리랑

천안 삼거리, 명동 블루스

부채춤, 강강수월래, 구고무九鼓舞, 불놀이

북, 꽹과리, 가야금, 기타아……

이쁜 가슴 비벼 이는

푸른 빛의 메아리 속에

자유 있는 육체와 육체 있는 자유로

일과 춤을 섞고 사랑한다 말하며

농부들은 씨뿌리고

시인들은 노래하며

학자들은 생각하고

애인들은 사랑하는 땅

아 우리들의 명절이 있어야겠다

한국, 내 사랑 나의 사슬아!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78/1994, 46-48면)

(정현종, 《정현종 시전집 I》, 문학과지성사, 1999, 142-44면)

 

다시 술잔을 들며

― 한국, 내 사랑 나의 사슬

 

이 편지를 받는 날 밤에 잠깐 밖에 나오너라

나와서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을 바라보아라

네가 그 별을 바라볼 때 나도 그걸 보고 있다

(그 별은 우리들의 거울이다)

네가 웃고 있구나, 나도 웃는다.

너는 울고 있구나, 나도 울고 있다.

(정현종,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78/1994, 49면)

(정현종, 《정현종 시전집 I》, 문학과지성사, 1999, 145면)

 

정현종 시인은 앞의 인용문에서 참담한 현실에 직접 대응하는 시를 쓰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정치적인 의미를 담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들에서 우리는 ‘삶의 현실’을 시인이 어떻게〈시적 현실〉로 바꾸고 있는지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 두드러지는 게 〈시적 유희성〉의 문제입니다. 이는 다음으로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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