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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 사윌 때
최시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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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라란 무엇일까? 이 소설은 역사 소설로, 나당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이 단지 그때만의 이야기로는 읽히지 않았다. 


지금도 끊임없이 나라를 잃고, 집을 잃는 사람이 세계 어디선가에선 계속 나오고 있으며, 가끔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안락한 집에 앉은 나조차 나라를 잃고 헤매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는 단지 역사책에서 단 한 구절로, 혹은 몇 문단에 걸쳐서 나당전쟁에 대해 읽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언젠가는 역사책에 그저 한 구절로, 한 문단으로 정리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나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에서 주목하고 있는 인물은 만들어 낸 가상의 인물, ‘오서물참’이지만, 그는 어쩌면 그 당시 실제로 살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언젠가, 내가 모르는 때를 조명하고 그 안에 살아 숨쉬던 사람들을 주목하는 것. 그리고 거기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는 것. 

역사 소설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한다.

어쩌면 나는 나와 가까운 이를 멸시하고, 먼 이와 도모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또, 내가 지금 살아 가고 있는 이 땅의 나라란 무엇일지.

우리는 계속해서 시름에 잠겨, 계속 되새기고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투가 끝나면 그랬듯이, 발에 느껴지는 땅의 감각이 새삼스러웠다. 목숨이 아직 몸에 붙어 있었다. - P14

누가 이 인과응보를 끊겠느냐? ……너, 중생을 구하러 부처님이 오신다면 극락으로 오시겠느냐, 이 지옥 같은 싸움판으로 오시겠느냐? - P76

저놈의 뱀 같은 혀에 말려들지 마시오! 저놈이 사실이라고 한 건 진실이 아니고, 저놈의 말에는 충성이 아니라 오로지 제 욕심과 어리석은 생각만 들어 있소! 백제는 저런 소인배 때문에 망할 것이오! - P97

물참은 지난 세 해 동안 백제 사람의 뜻은 오직 백제국의 부활이라 여기며 살아왔는데, 따지고 보면 그 ‘백제’가 반드시 성이 ‘부여’인 왕족의 나라여야 할 까닭은 없었다. 왕이라 부르든 니리므라 부르든 백제라는 나라가 곧 왕은 아니며, 그와 함께 대대로 지위를 물려받는 귀족들만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 P125

그러니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어찌 될까보다 어찌해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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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안녕 - 박준 시 그림책
박준 지음, 김한나 그림 / 난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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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비는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박준, 「단비」,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박준 시인의 시집 안의 시 중에는 단비라는 시가 있다.

시인의 아버지가 직접 기르는 강아지를 모델로 한 시라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책 또한 그러하다. 그림책 안에 나오는 강아지가 바로 그 <단비>인 것이다.


 알라딘의 편집장의 선택을 보면, 유아 MD분이 하신 말씀이 있다.

"만남도 안녕(hello), 헤어짐도 안녕(good-bye), 오늘도 안녕(peace)."

한국어에선 우리가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당신의 평화를 기원하는 것도 전부 '안녕'으로 표현한다.

안녕이란 그런 말인 것이다.

시인이 그림책 속에서 표현하는 안녕도 전부 그러한 부분에서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녕은 처음 하는 말이고 처음 아는 말이다.

마음으로 주고 마음으로 받는 말이고,

같이 앉아 있는 거고, 가리어지지 않는 빛이며 혼자를 뛰어넘고 당신을 등 뒤에서 안아주는 말이다.

안녕은 그게 무엇이든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셈하지 않고 들어주는 것이다.

안녕은 서로를 놓아주고, 뒷모습을 지켜봐주는 일이며, 말하기 싫을 때에도 해야하는 말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림책에서의 안녕의 순서는 HELLO - PEACE - GOODBYE라고 할 수 있겠다.


시 <단비>에서 여섯 마리의 새끼를 전부 어딘가로 보낸 단비는 마당에서 울고, 밖으로 나가서 울고 돌아온다.

단비는 곁으로 날아온 새와 친구가 되고, 떠나보내지만

어쩌면 새가 아니라 어느날 하나씩 떠나간 자신의 새끼들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안녕》은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안녕, 하고 말하는 일, 안녕을 고하는 일, 안녕을 비는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면서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어린이도, 어른도 읽어보면서 만나고 헤어지는 일, 우리가 관계를 이어감에 따라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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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영화 언어
이상용 지음 / 난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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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태어났을 때부터의 연대기를 짧게 훑은 후에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을 마주하면서,

처음 들은 생각은 '와, 이 사람은… 진짜다…!'하는 생각이었다.

소위 덕질이라고 해야할까. 어떤 한 사람의 발자취를 쫓는 과정은 애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못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읽는 내내 영화평론가로서 저자가 가진 봉준호 감독에 대한 애정을 읽을 수 있던 것 같아 좋았다.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한 것은, 어쩐지 학부 시절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학부 시절 때 비평수업이나 다른 수업을 들으면서도 계속 언급되었던 이야기들(라캉의 도둑맞은 편지 분석 등)이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분석하는 데에도 언급되고 쓰이는 것을 읽으면서, 내내 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책에 언급되어 있는 감독의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영상물에 집중을 하려면 옆에 누군가 있어줘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에 ... ... ) 유명한 『괴물』,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 그리고 『기생충』은 봤기 때문에, 아는 영화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더욱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을 좋아하고, 그의 영화에 대한 다른 사람의 분석을 읽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은 책... 이지만, 혹시라도 나처럼 그의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다 보진 못했다!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고민해봐야 하는 책이다.

모든 비평이나 분석이 그러하듯, 이 책에는 그의 영화에 대한 A to Z가 담겨있다. 내용 전개 방식부터 결말에 관련한 부분까지 모두 들어가 있다는 소리이고, 아직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앗, 스포일러 봤어…! 하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오히려 스포일러를 보면 그 장면이 언제 나오는지 더 두근두근하면서 보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책이었던 것 같다. 『마더』나 『흔들리는 도쿄』를 한번쯤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엄마나 친구를 붙잡아 옆에 앉혀 놓고 봐봐야겠다.


책을 읽으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대해 가장 공감한 것이라는 '추격전'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괴물도 설국열차도 살인의 추억도, 기생충도 물리적이든 아니든 어떤 추격, 그러니까 '쫓고 쫓기는' 느낌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괴물에서도 괴물을 쫓고, 괴물을 쫓으려는 가족을 쫓는 국가의 모습을 보았고, 살인의 추억에서도 범인을 쫓는 것을 봤기 때문에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또 인상 깊은 부분이었다면, 악의 평범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냥 뻔한 얼굴인데……" "그냥 평범해요"라는 말에서 오는, 악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다는 것. '그들이 벌인 행위에 비해 인간 자체는 평범하다는 사실은 봉준호의 영화가 지닌 핵심 중 하나다'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현실을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봤을 때, 저 사람은 그럴 것처럼 생겼다 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 그렇게 안생겼는데, 하는 말을 더 많이 뱉게 되듯이.

마지막으로 기생충에서 "둘이 냄새가 똑같아"하고 언급된 부분을 보면서 생각했는데, 어떤 집이나 어느 사람이 가진 고유의 냄새는 정말 잘 지워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나 소설에서 곧잘, 어떤 냄새가 났다, 라든가 어떤 향수였다고 언급되는 부분들도 많지만, 평소에도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체향은 정말 바꾸기 어려운 것이라고. 특히 집에 스며든 냄새가 그렇다고.

읽고 난 후 생각한 것이라면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만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영화든 음악이든 책이든…….

모든 창작물이 작가를 대변하지 않고, 작가는 창작물의 캐릭터의 모든 생각에 공감하지 않겠지만(이건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창작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것을 만든 창작인이 어떤 인물인지 알 때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이 책으로 인하여 봉준호 감독의 창작물을 더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그가 새 작품을 내놓을 때, 이 책을 떠올리면서 전작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어떤 방식이 쓰였을 지를 더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준 것 같다.


그전에 모든 영화를… 섭렵해야겠지만……! 이건 일단 나중의 이야기로 미뤄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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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 김승희가 들려주는 우리들의 세계문학
김승희 지음 / 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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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김승희 지음 / 난다 출판사 / 2021년 01월


https://youtu.be/y5paOQU66hg

(책을 읽을 때 이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읽었는데...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과제로 페이퍼를 많이 내준다. 

내가 다닌 학과는 문예창작과였으므로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페이퍼를 자주 써야했다. 

비평 수업도 매 학기마다 있었으므로, 

나는 곧잘 세계문학과 한국문학, 어려운 이름의 철학가와 그들의 이론에 대해 공부하곤 했다.

그렇지만 그 생활이 너무나도 '대충'에 점절되어 있었고, 아직도 갈 길이 멀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이 책, '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를 읽으면서 느꼈던 것처럼.


이 책은 추천사를 빌리자면,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 아니라 네가 아니라 바로 '내'가 일허게 읽었음이 너무도 중요하고 보무도 당당함을 증거로 보여주는 책. 서사라는 단단한 줄거리에 시달리지 않고 다만 사유라는 유연한 이파리에 흔들려도 좋음을 안도하게 하는 책. 그 떨림으로 큼지막한 주제보다 작디작은 단어 하나에 매달려 나만의 어휘 사전을 재편집하게도 만든 책."


이라고 할 수 있다.


-

사실 책을 읽으면서 서평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던 나는,

작년에 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뭐라도 해야겠다. 이대로 더이상 책을 놓을 수는 없다.'같은 위기감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인스타를 만들어 운영하면서 짤막하게라도 책에 대한 생각을 남겨뒀는데,


김승희 작가님의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아직도 글을 쓸 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 가는 것만으로 책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는 글,

책의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음에도 '아, 이 책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느껴지게 하는 글,

이 목차에 실린 책들을, 읽었던 책마저 다 다시 읽고 이 책을 다시 뒤적이면서

작가의 말에 온전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여보고 싶게 하는 글.


나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런 감상을 들게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이 책이 처음 나온 때로부터 30년이 흘렀다고 하지만,

여전히 감탄만이 나온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슬픔 또한 기쁨과 마찬가지로, 절망 또한 희망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이 책은 역설하고 있다. 눈물과 미소는 분리될 수 없는 신의 선물이므로. - P48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이라는 따스한 심장을 지켜나간다는 점에서도 홀든과 허클베리 핀은 시대의 파수꾼적인 휴머니스트라 부를 수 있겠다. - P61

삶의 길을 묻는 그대들에게 이 문학 속의 인생론을 바치고 싶습니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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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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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실수로 탄생한 휴머로이드가 있다.


그는 말에 타는 기수다.


학습 휴머노이드에 들어가야 할 인지, 학습 능력이 포함되어 있는 칩은 어떤 실수로 인하여 말에 올라탈 기수 휴머로이드에게 들어가게 됐고, 그리하여 콜리가 탄생하게 된다.


SF소설 리뷰를 올리면서, 나는 SF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을 자주 읊고는 했다. 그 이야기는 여전히 동일하다. SF소설의 인기 만큼이나 나는 많은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내가 읽어본 소설 중에서 이번에 읽은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은 단언컨데 어떤 소설보다 인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껴졌다.


소설에 중심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연재네 가족이다. 연재와 언니인 은혜, 그리고 엄마인 보경. 그리고 그들과 이어진 존재로, 연재의 친구인 지수와, 콜리. 콜리와 호흡을 맞춘 경주마 투데이와 복희, 민주, 서진……. 소설 속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 모두 현재 어딘가에서 살아 숨쉴 것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 기수 휴머로이드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볼 때부터 알았어야 할 진 모르겠지만 소설은 단지 휴머로이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동물권과 장애에 관하여도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동물권에 대해, 인간의 유흥을 위하여 더 빨리 달리기 위해 학대 당하는 말의 이야기, 인간이 버린 유리조각에 발바닥이 찔려 병원에 온 강아지, 밀렵을 계속 당하자 아예 상아를 없앤 채 태어나도록 진화해버리는 코끼리들. 


소설을 읽다보면 수도 없이 "인간이 미안해……!"하는 말을 반복하게 된다. 사실 그들은 푸른 초원을 달리면서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고, 자기들 끼리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나가며 공존해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만 아니라면.


-

그리고 소설은 장애에 관련해서도 이야기를 한다.


은혜는 다리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그렇듯, 도로 정비며 휠체어를 위한 정비는 거의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같아 지기 위해 기계 다리를 달기엔 그 비용이 너무나 크다. 은혜처럼 홀로 안경을 쓰던 아이는 은혜에게 거짓말을 하며 미국으로 가서, 거기서 렌즈삽입수술을 받고 온다. 그 아이의 심정은 알지 못해도, 그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다른 사람과 다른 은혜를 떼어놓기 위해 그곳으로 갔다는 것 만큼은 알 수 있었다.


사실 소설을 읽으며 새삼 깨달은 사실이다.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갑작스레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하는 일, 그들이 우리에게 고마워하지 않거나 웃어주지 않는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못된" 사람으로 몰아버리는 일들 모두,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휠체어를 밀어주거나 멋대로 선행을 베푸는 일이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폭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은혜의 이야기를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

소설은 연애적인 이야기도 담담하게 그려내는데, 


보경의 이야기가 그랬고, 은혜의 이야기, 복희의 이야기가 그랬다.


그들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나 사랑을 자각하는 이야기를 짧고 간결하게, 그리고 알기 쉽게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다른 무엇보다 더 간질간질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비중이 큰 이야기도, 이야기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도 아닌데도, 보경이 남편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한 문장만큼은 계속 생각이 났다.


언젠가 나도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해 적을 때 저런식의 문장으로 표현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거창한 수식어나 말이 필요없이, 젠장… 하고 후회하면서 삶의 이유를 간단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그런 무심함으로.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관계는 연재와 지수의 관계이다.


여자 고등학생들의 우정이야기를 평소에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 걸까?


아픈 은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의 요구 사항이나,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하여 그저 수긍하고 말하지 않는 연재와 외동 딸로 태어나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어딘가 외로운 지수.


지수의 아버지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연재를 꼬시려는 지수에게 점점 감겨서, 콜리의 말을 듣고 지수와 친해졌음을 인정하는 연재의 모습이, 어느 순간 친해져 있는 두 사람이, 어떤 청춘 영화보다 더 맑은 청춘 같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수의 이야기가 좀더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이야기가 더 추가 되었다면 너무 중심적인 내용과는 벗어나는 내용이 되어버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그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언젠가 연재와 지수의 다른 성장적인 이야기를 더 보고 싶을 뿐이다. (둘의 캐릭터 합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천 개의 파랑은 표지가 파랑색인 것처럼, 정말 세상에 현존하는 수 많은 파란색같은 소설이다.


어두운 이야기가 아니라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고, 우리는 그리운 어느 시점에서 머물러있다가도 천천히 일어나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해주고 있다.


말의 이름이 투데이인 것도, 투데이가 말이라서 계속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도. 우리는 언제든 오늘을 달려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천 개의 파랑은 희망찬 소설이자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으며, 다른 사람을 좀 더 이해하게 만드는 소설임이 분명하다.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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