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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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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인트는 그러므로 상황이 더는 나빠질 수 없는 지점이 아니라-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틀림없이 훨씬 악화될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하강 나선에 갇혀, 기존 체제하에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시점이다.'
'1부 다시 원점으로'에서 지젝은 정의롭지 못하고 파괴적이며 이기적인 상황에도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다. 바로 지금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제로 포인트'다.
지금 세계 여러 곳에선 자기의 유익을 위해 혹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의 폭력성을 포장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나의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거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많은 매체는 우리를 자신들이 원하는 매개체로 만들고 있다. 어딘가에 소외된 사람들은 죽음과 고통, 성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고 지금 행복하다면 진실과 정의는 외면해도 되지 않냐고 생각한다. 정의가 사라진 세대에 살고 있다.
모두 잘 해결될 거라고, 정의는 죽지 않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가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지금 내려야 하는 결정들이 미래의 역사적 흐름을 결정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무작정 돌진하는 행동이 아니라 바른말을 해야 하는 때라고 상기시켜 주었다.
'2부 말하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인가?'는 지젝이 2023년 10월 17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에서 '상황 분석 금지'라는 연설을 한 후 몇 개월 동안 쓴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개막식 연설문에서 지젝은 가자 지구 인근의 이스라엘인을 공격한 하마스를 비판하고, 또한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를 공격하는 이스라엘을 비판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상황의 배경을 분석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하마스의 테러 행위를 지지하거나 정당화한다고 비난받는 이상한 현실 또한 비판한다. 그 후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았다.
그럼에도 지젝이 도서전에서 이런 연설을 한 이유는 독서를 통해서만 상황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곤경의 난해한 모호성과 복잡성을 뚜렷하게 만들어 주는 특권적인 수단이 문헌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리즘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모든 가치를 부정합니다. 네, 그리고 가자 지구 주민 수백만 명의 집단 응징도, 아다니아 쉬블리의 시상식 취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에 선 것이 자랑스럽기도, 부끄럽기도 합니다.'
[분석하지 말 것, 언급하지 말 것]
'나는 이 편안한 중립이라는 의미에서의 중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상황이 본질적으로 비극적이기에 어느 한쪽 편에 설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뿐이다. 하마스는 끔찍하고, 이스라엘은 무고하지 않다.'
도서전 개막 연설이 공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연설이 너무 극단적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매우 균형 잡힌 중도 입장이기 때문이다. 지젝은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운동 조직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테러 공격을 비난했다. 그러면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과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접근법은 이스라엘을 무조건 지지하는 세력들에겐, 이스라엘에 대한 전적인 지지를 주저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도 보게 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게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무조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걸까?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국가들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대인에게 안전한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언제나 이스라엘 편에 서기로 했다. 그래서 오랜 세기 동안 다른 민족이 거주하던 가자 지구와 팔레스타인인의 땅을 유대인에게 주었다.
'원죄는 오랜 세기 동안 다른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던 땅을 유대인에게 줌으로써 홀로코스트를 속죄하려 했던 서유럽국가들에 있다.'
그들은 지젝이 이스라엘 국가의 행위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그저 동참하리라 기대했다. 진실에 대해 어떤 분석도 하지 말고, 진실을 언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악행을 막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살기로 평화협정으로 맺지 않으면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 평화는 없다.
[모두가 들을 때 말할 것, 아무도 없을 때 철회할 것]
'희망을 향한 첫걸음은 모든 면에서 우리가 처한 절박한 곤경을 완전히 인정하는 것이다.'
지젝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벌이는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지지했다.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바로 보고 가자 지구 팔레스타인인의 인권과 고통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전쟁의 참상을 비판하듯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똑같이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종종 사람들이 불만스러워하며 '말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해!'라고 외치는 걸 듣는다. 이 맥락에서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황에 올바른 이름을 붙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 적절한 시기는 언제인가? 지젝은 진실이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언제 이야기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거짓이 전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순간 거짓말을 하고, 그 후 진실이 별 영향 없는 사소한 수정 사항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명백할 때 진실을 말함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였다.
같은 의도로 지젝의 도서전 연설에 대해 그것이 진실이지만 이것이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공개적으로 말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때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모두가 들을 때 거짓을 말하고, 아무도 없을 때 거짓을 철회하고 진실을 말하라는 의미다.
[듣지 않을 것, 멈추지 않을 것]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상황은 처음부터 존재했던 가능성을 실현하면서 본래 그랬던 것으로 되어가고 있다.'
내가 내 것이 아닌 땅 일부를 차지하고 내 것이라고 주장한다면(서안 지구, 또는 우크라이나의 일부 지역)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이 저항한다면, 나는 그들을 진압하려 하면서 자기방어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그렇다.
명백한 사실에 대한 존중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 이스라엘이 벌이는 잔혹한 행위를 서구는 무조건 옹호하고, 언론은 축소, 은폐하면서 진실을 왜곡한다. 진실은 서구 미디어에서는 경시되거나 무시되어 모든 외침은 묻히고 있다. 이것은 서구 자유 민주주의 종말의 징조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피해자 지위를 사용해 자신의 팽창주의적인 지역-초강대국 정치를 정당화하고, 스스로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조작하고 이용하여 수 세기 동안 다른 사람들 것이었던 땅을 차지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구는 이런 진실을 듣지 않고, 이스라엘은 야망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유일무이한 순간에 있다. 지금 내려야만 하는 결정들은 미래의 역사적 흐름을 결정할 것이다. 매우 의심스럽지만, 만약 미래에도 인류의 역사가 있다면 말이다. 환경의 대대적인 파괴를 피할, 충분히 실행 가능한 조치를 취해야 할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제로 포인트에 서 있다. 사회로서 우리의 생존은 유럽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대의를 위해 행동에 나설 수 있는 능력을 되찾는데 달려있다.
[다시 또 요약 : 안전선을 넘어 투쟁의 현장으로]
'나는 종종 동일한 글에 대해 정치적으로 분열된 양쪽에서 모두 공격한다면, 이것은 당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몇 안 되는 믿을 만한 신호라는 장 폴 사프트르의 주장을 떠올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막으려면 상호 인정하는 것이다. 강에서부터 바다 사이의 민족-종교집단 둘 다 그 땅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공존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은 말로는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이 행동하는 것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재정적, 군사적 지원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서구 미디어는 편향된 보도로 이스라엘의 악행을 눈감아주고 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전 지구적인 지정학적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고, 지역 전쟁이 일상화될 것이다.
'나는 기부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이 내 기부를 필요로 하지 않도록 그들과 함께 싸우고 싶고, 이것이 유혈이 낭자하고 피해자로 가득한 잔혹한 투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제로 포인트'를 읽으며 내가 참 안일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자 지구나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들이 나에겐 다른 나라 이야기였고, 뉴스를 보며 참혹함에 참담함을 느꼈을 뿐 내가 무슨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영상의 진위를 파악하지 않고 흘려보냈다. 나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행동들이 결국엔 우리에게까지 비극을 몰고 온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나의 이런 무지함에서 돌이킬 '제로 포인트'인 것 같다. 진실을 제대로 알고 올바른 말을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철학 에세이는 처음이라 초반에는 읽기가 어려웠다. 읽은 부분을 또 읽고 또 읽었지만 사실 지금도 다 이해하진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제로 포인트'는 계속 읽어야 할 거 같다.
슬라보여 지젝 선생님은 마음이 따뜻하시고 위트도 넘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부하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그건 어떤 잔혹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그들과 함께 싸우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겐 어려운 철학 에세이였지만 곳곳에 남겨진 재치 있는 말들이 읽는 동안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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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클럽_철학방에서 함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