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가을 2019 소설 보다
강화길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가볍게 즐길수 있는 한국문학 <소설 보다> 시리즈.
처음엔 짧은 분량의 소설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어서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이제는 매분기마다 출간되길 기다린다. 이제 익숙해서 계절마다 찾아올 손님을 기다리는 느낌이다. 젊은 작가들의 시선이 어떤지 기대감을 가득 안고서..

<소설 보다 : 가을 2019> 에는 강화길의 「음복」, 천희란의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허희정의 「실패한 여름휴가」 3작품과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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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길의 「음복」

제삿날 모인 가족 풍경속에서 이제 막 결혼한 나는 누군가를 악담하는 분위기가 못내 불편하다. 그런데 이런 악의어린 시선이, 누군가를 악인이라 매도하는 시선이 이곳에만 있던 것이 아닌 자신의 집에도 있었다는 불편한 진실이 떠오른다.

명절이나 가족, 친지들의 모임에는 항상 대화를 빙자한 뒷담화가 존재한다. 이것은 누군가를 거침없이 매도하여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죽을 만큼 큰 잘못이 아닌 경우도 많다. 가족이라는 친밀한 사이이기 때문에 감정이 더 극단적으로 치솟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 내 엄마가 우리 집 악역이었다...
엄마 편이니까. 우리엄마 한테는 나 밖에 없으니까. 나만은 절대 엄마를 미워하면 안된다고.'

나에게도 그런 엄마가 있었다. 성격이 강한 우리 엄마를 보는 시선은 항상 좋지 못했던 것 같다.

왜 내 엄마는 악역이 될 수 밖에 없었을까.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았을까.
그 시절의 치기어린 나는 나 자신을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생각하며 엄마의 언행이 너무 불공정하고 악의적이라고 폄하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류에 휩쓸려가는 어린 아이에 불과했고, 함께 누군가를 악역으로 몰고 갔다.

그 수위는 다를지 몰라도 우리는 이런 모습을 우리 가족 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심각한 악역으로 몰아갈 수도, 심각하지 않게 가볍게 논쟁하는 수준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냥 엄마 편을 난 왜 한번도 들어주지 않았을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홀로 몰렸을 엄마의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엄마를 몰아가는 내 모습이 정말 후회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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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희란의 「우리에게 다시 사랑이」

'그녀는 삶의 주권을 포기한 자조차 끝내 제 인생은 스스로 책임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폭력적인 관계, 자기 파멸적인 관계 속에서 벗어나야 함에도 벗어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 내 삶의 권리를 포기하면 내 의무와 책임도 없어질 거라는 자포자기의 감정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 이야기. 내가 상처 받고 최악으로 떨어져도 그 이후의 삶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 이야기.
비정상적인 관계 속에서, 나를 파멸로 몰아가는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무책임한 사람의 이야기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며 오싹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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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희정의 「실패한 여름휴가」.

계획과 전혀 다른 여름 휴가를 보내게 된 실패한 여름휴가 이야기. 그런데 그 모습이 왜 이리 익숙한지..항상 나의 계획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뭔가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되는 단어와 이미지들의 나열이 정돈되지 못한 서술자의 의식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약간 난해한 작품 같다.

'스스로를 박탈하는 일의 즐거움, 나는 계속해서 이야기 속으로 나를 옭아매고, 그것들은 이야기 할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나를 짓누르는데, 나는 압사당하는 꿈을 꾸는 것이 즐겁다고 열심히 생각한다.'

소설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소설 속 이야기 속에서 내가 숨겨 놓았던 혹은 알지 못했던 내 모습과 생각들을 드러나 놀랍기도 하고, 오싹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진정한 내 모습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겠지..
오늘도 좋은 소설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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