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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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의 <흰>이라는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첫 인상은 하나의 사진집같았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느낌과 꾹꾹 눌러쓴 감정을 절제한 단어들이 주는 무거운 분위기가 마음을 깊게 침잠시킨다. 


'흰'이라는 단어에서 나는 무엇을 연상할까?

하얗고 깨끗한 순백의 색과 어떤 것도 담지 않은 순수의 것. 

어떤 색과도 섞일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그러나 그렇기에 조금의 티끌에도 더럽혀질 수 있는 연약함. 


우선 먼저 떠오른 순백의 느낌은 생각을 거듭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순백의 의미를 상실한다. 기분 좋은 흰눈에서 시작되어 수많은 사람들과 자동차의 발자취들로 인해 거리의 더러워진 흙바닥처럼....

사람의 일생이 그러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난 아기가 시간이 흘러 그들의 삶을 살아갈수록 더 많은 것을 담고, 그 순백의 색은 희미해지며 다른 색과의 섞임에 이해 때로는 혼탁해지고, 때로는 더 선명한 색상으로 변해가는 과정. 그리고 이 모든 희노애락이 섞이면서 흰 색은 그 존재가 사라지고 아무것도 찾을 수 없는 검정의 늪으로 침잠하는 것.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흰'과 '하얀'의 의미를 되새기며 그 의미의 차이를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파지지만, 그 과정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왠지 모를 부담감과 강박관념이 생기기도 했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흰'과 '하얀'이 서로 같은 듯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순백의 '하얀'에서 시작하여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있는 '흰'으로 바뀌는 것이 아무 감정없는 무생물에서 감정이 섞여들어간 생물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무에서 시작하여 유로 종결되는... 시작과 끝이 이어지듯이 삶의 시작과 삶의 끝인 죽음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 바로 '흰'이라는 의미인 것일까. 


다른 소설(산문)들과 달리 한 글자 한 글자 모두 쉽게 읽히지 않았다. 쭉 이어지는 서사보다 꾹꾹 밟혀진 발자국의 의미와 깊이를 더 자세히 봐야하는 글 같았다. 문장의 유려함보다 단어의 깊이를 되새겨 봐야할 것 같은 책이었다. 소리내어 읽으며 듣고, 보고, 생각하는 공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는 글이었다. 그래서 작가의 '하얀'에서 시작했지만, 작가의 '흰... 그것을 넘어 나의 '흰' 이야기를 그려내는 과정이 필요한 글이었다. 


이 책 저변에 태어난지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삶을 마감한 그녀의 언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죽은 언니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삶 내내 함께 하는데, 그 부분이 참 이해가 가기도 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지만, 시간을 들여 꼼꼼히 읽고 생각하고 싶은 책이었다. 

나의 삶의 무게가 좀 더 묵직해지는 기분. 

나의 그 삶에서 그 무게를 껴안고 다시 시작할 용기와 희망을 찾아낼 수 있을까....



더럽혀지더라도 흰 것을, 오직 흰 것들을 건넬게.

더이상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게.

이 삶을 당신에게 건네어도 괜찮을지.  - p. 39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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