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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전작을 흥미롭게 읽어 그의 신작인 이 연애소설을 흥미롭게 펼쳐보았다.
그의 연애소설에서 기억이란 과연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이 소설은 일흔 즈음의 남자가 오십년 전 자신의 연애의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시작된다.
19세 청년과 48세 중년의 연인과의 사랑..
그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파괴적인가.
그들이 나눈 사랑은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지만, 불친절한 현실들 속에서 점차 변화한다.
과연 그들의 연애란, 그들의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 p.136
첫사랑이 압도적인 1인칭으로 벌어질 수 밖에 없듯이 사랑에 빠진 폴의 1인칭 입장에서 1부는 서술된다.
순진하고 순수한, 자신감과 아둔함으로 둘러싼 그의 첫사랑은 자신의 세계에 빠져 그 밖의 세계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하지 못한다.
19살 청년의 입장에서 사랑에 대해 갖고 있는 감성과 환상들을 그는 마음껏 표현하고 만끽한다.
그의 신조이자 목적, 사랑과 진실... 그것은 그에게 단순한 진리이자 삶의 가치였다.
"사랑과 진실, 그것이 나의 신조였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나는 진실을 본다. 그렇게 간단해야 한다. - p.142
그러나 사랑에 빠진 그의 연인 수전은 사랑의 순간에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하는데, 그녀는 언젠가 그가 현실을 깨닫게 될 때, 자신을 포기할 것을 예상한 것일까?
"아직 나를 포기하지 말아줘. 케이시 폴." - p.142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폴과의 사랑을 위해 그들은 집을 나와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비좁은 집과 경제적인 문제, 자신을 하숙생 혹은 대자로 소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점차 서로를 버거워하게 된다. 점차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는 수전의 모습을 보며 그는 '나'라는 '사랑의 1인칭'에서 빠져나오며, 나와 너의 2인칭에서 심지어 그와 그녀라는 3인칭으로 점차 그와 그녀를 바라보게 된다.
'너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계속 파괴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결정한다. ' - p. 254
수전은 알콜중독자가 되고, 폴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밤이 많아지고, 나중에는 집을 따로 얻기까지 한다.
점차 악화되는 알콜중독에 빠진 수전을 그가 견디고 보호하기는 버거운 일이었고, 수전이 아이들 때문에 예전 집을 방문하고, 남편과 아이들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그 시점에서야 생각한다. 과연 '세상에서 그녀의 자린 어디일까?'
소설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사랑, 연애에 대한 기억은 점점 심연으로 가라앉는듯 하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그들의 기억을 객관화시키고, 그들의 생활 또한 현실적으로 변화된다.
그녀에게 닥친 죽음의 순간, 장례식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순간이라니...
어쩌면 이렇게 너무 비인간적인 동시에 인간적일까?
그 과정이 자못 씁쓸하기도 하고, 일반적이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이 소설은 폴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어, 폴의 관점에서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만약 이 소설이 수전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까?
아마도 그녀의 이야기는 더 열정적이고, 더 씁쓸하고, 더 안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만의 사랑을 갖고 있다는 조운의 말이 생각난다.
누군가의 사랑을 다른 사람은 이해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이해를 받아야할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사랑을 갖고 있고, 자신만의 연애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고, 이것을 누군가가 평가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읽고 나니 가을과 참 어울리는 소설이었다.
한 여름의 열정과 같은 그들의 사랑은 시간이 지난 후, 가을의 서늘하고 쓸쓸한 완전히 말라버린 낙엽과 같았다. 연애의 흔적만 기억으로 존재하는 그들의 사랑은 늦가을의 낙엽과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