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ㅣ 오늘의 젊은 작가 17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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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라는 어려운 것에 대하여..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민음사의 젊은 작가 시리즈,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외동딸을 둔 엄마인 '나'는 노인요양병원에서 치매환자를 돌보는 요양보호사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던 그녀의 담당환자 '젠'. 그러나 치매환자인 젠은 이제 가족도 없고, 찾아오는 이도 하나 없고, 병원에서 귀찮은 취급만 받을 뿐이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바친 젠이 홀로 고독하게, 무시받으며 늙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는 나는 그녀를 성심성의껏 돌본다. 그러나 병원의 이익을 위해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는 병원측과 그녀는 대립하고.... 그녀를 (다른 병원으로) 쫓아낸 병원측에 분노하며 그녀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나'에게는 하나 남은 딸이 있다.

계약직 교수를 하고 있는 딸은 어느날 그녀의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처하자 나에게 도움을 구한다. '빚받으러 온 빚쟁이'처럼 딸은 자신에게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돈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녀는 나의 딸이니까...

집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한 나는 그녀의 '동거인'을 마주하게 된다.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딸의 비밀..

딸은 '여자'인 그녀의 연인과 함께 들어온다. 그녀를 내쫓고 싶지만, 그녀에게 몇 달치 생활비를 받았기에 큰 소리치며 내쫓을 수 없다. 

 

많이 배워 똑똑한 내 딸.. 

딸은 너무 많이 배워 자신보다 약자인 사람들을 위해 대신 나서고, 싸우기까지 한다. 오지랖 넓게, 쓸데없이... 미래 안정적인 직장과 가정을 위해 자신의 안위만 나서면 될텐데, 쓸데없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부당한 이유로 해고당한 자신의 동료를 위해 시위를 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 없지만, 막상 다치기까지 한 딸의 모습을 보자,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분노와 억울함이 생긴다. 왜 내 딸이 그런 대접을 받고 있어야 하나요?

 

삼십대와 오십대 쯤 되었을 딸과 엄마.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연인과 가정을 갖겠다는 딸을 엄마는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연인을 인정해주지 않는 엄마를 딸은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에 대한 이해의 간극은 저 멀리 떨어져 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함에 답답하고, 그럼에도 완전히 떨어질 수 없음에 답답함을 느끼는 딸과 엄마.

 

문화적, 세대간의 차이일까?

사적인 관계에서 엄마와 딸의 간극은 정말 이렇게 그 간극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의 엄마와 나도 그랬다.

왜 그럴까? 남이면 그러려니 하던 것이 왜 이렇게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더 인정하기 어려운 것일까?

완전히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기에,

완전히 이해받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남이라면 50% 정도만 이해해도 좋다고 넘어가던 것을,

엄마라면, 딸이라면, 100% 이해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1%의 간극마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 사적인 욕심이 커다란 블랙홀마냥 그 간극을 더 커버리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을까?

 

'딸과 엄마'의 개인적인 간극, 이해의 차이에서 오는 삐걱거림은 사회적으로 확대된다.

동성애자라는 성소수자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사회는 동성애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우리는 여기 있어요. 여기 있다고요. 그래, 너희가 여기 있구나, 그렇게 알아주는 것. 저희가 원하는 건 그뿐이에요.  - p.168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하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그러나 그 단순하고 당연한 권리가 그들이 사회적 약자(소수자)라는 이유때문에 그들은 인정받지 못한다. 그들의 시위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방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거세게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누구나 이런 일에 대해 냉정하고 쿨하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일이 되면 그것을 냉정하고 쿨하게 넘길 수 없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해? 왜 내 자식이 동성애자가 되어야 해? 

이렇게 우리는 내 자식을 억압한다.

 

그러나 또 다른 거대한 힘, 사회가 내 자식을 억압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어찌할 수 없게 된다.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지만, 내 자식이 억압당하는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턱턱 막힌다. 

 

 

나는 내 딸이 이렇게 차별받는 게 속이 상해요.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은 그 애가 일터에서 쫓겨나고 돈 앞에서 절쩔매다가 가난 속에 처박히고 늙어서까지 나처럼 이런 고된 육체노동 속에 내던져질까 봐 두려워요. 그건 내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잖아요. 난 이 애들을 이해해 달라고 사정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이 애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고 그만한 대우를 해 주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예요. - p.168-169

 

 

'있는 그대로 그들을 인정하고 바라봐 주는 것'

이런 단순하고 당연한 일을 요구하는 그들에게 진정 마음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바로 상처받고 아픈 당사자가 바로 내 딸이기에...내 딸의 친구이고, 내 딸의 동료이기에...

 

 

이 두 사람을 보면서 서로를 참 많이 닮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를 위해 시위에 뛰어든 딸이나, 젠을 위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엄마.

다른 듯 보이던 두 사람이 왠지 비슷해 보인다.

 

딸과 엄마라는 개인적인 관계에서 시작하지만, 세대간의 관계, 사회 계층간의 관계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풀어나갈지에 관한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이해하고, 인정하고, 그렇게 못하겠으면 최소한 노력이라도 해라... '라고 말이다.

 

이런 당연한 말을 쓰지 않고, 소리내지 않고, 보여주지 않으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사회(사람들)에게 이 소설이 대신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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