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이 서평은 '황금가지'출판사의 도서지원을 받았습니다.

나는 이유를 모른다. 당신도 이유를 알지 못한다.

대체로 신조차 이유를 모른다.

정부가 하는 일이 원래 그렇다고 한다. 그게 전부다.

- 1967년 베트남 전쟁에 관한 일반인 인터뷰에서 인용

<로드워크> 中 프롤로그

간단한 줄거리

평범한 40대 가장인 바튼 조지 도스는 '죽은 아들'이 아직 살아 숨쉬는 집과, 평생 일해온 직장을 고속도로가 밀어버린다는 시의 계획을 알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도 회사 부지 이전 문제나 본인의 집 이사 문제 등 시급한 문제들을 미루며 위태로운 삶을 이어간다. 그러나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들이 다가오고, 결국 파국을 맞는다.

감상

애니메이션'up'이 떠오르는 소재이다. 기업체나 국가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공사들로 인해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는 원래 살던 사람들. 두 작품은 분명히 연관이 깊다. 하지만 풀어나가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 누구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해결점을 찾아가지만, 이 책에서 바튼의 상황은 분명한 비극이다. 두 작품은 모두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극단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그런 양 극단 중간 어디쯤에서 이런 일들이 항상 발생하고 있다. 누군가는 쫓겨나는 삶을 맞이해야 하며, 때로는 그에 맞서 연대하기도 한다. 이 책의 소재는 우리의 근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또한, 에필로그에서 '도스의 마지막 저항'으로 인해 사건의 전말이 나타난다. 784번 고속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된 목적은 교통 여건이나 통근자의 편의성과 같은 이유와 무관하게 매년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도로공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연방 정부가 배정하는 예산을 잃게 되어 예산을 타기 위함이다. 아마 우리나라도 같은 이유에서 하는 공사들, 예산을 위한 보여주기식 정책이 많을 것이다. 갑자기 멀쩡한 도로를 뒤집고, 보도블럭을 뜯고 새로 까는 일과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행정의 오류들은 언제야 바뀔지 모르겠다. 예산 배정과 사용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비판해주었으면 한다.

"안녕, 조지" 그리고 "안녕, 프레디"

표현의 특징

원래 자신의 아들과 하던 놀이의 일환이었다고 하는 이 '증상'은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는 데 이 작품이 가진 독특한 요소이다. 머리 속에서 '이성'에 가까운 역할을 하는 '프레디'와 바튼의 대화를 통해 심리를 묘사한다. 어떤 갈등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 프레디는 바튼을 말리거나 나무란다. 작품의 초반에 조지와의 말다툼이 많았던 프레디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사라지게 되는데, 이는 바튼의 심리적인 붕괴, 절망을 나타낸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 다음, 경찰과의 총격전이 있으면서부터 다시 프레디는 바튼을 말린다. 이 표현 장치는 그가 망가져있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심리적인 갈등을 잘 표현해준다.

또한,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망가진 그의 마음과 알코올에 대한 의존과 약물에까지 손을 댄 그를 표현하는 방식이 구체적이다. 초월적인 감각을 묘사한다거나 후각 표현 등은 그의 심리상태를 잘 나타낸다. 도수 높은 양주를 마시고 나서 신물이 올라오는 냄새를 짙게 묘사한 느낌이다. 그런 표현들이 심한 불안과 초조로 시들어가는 바튼을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당신을 보면 뭔가 오금이 저려, 도스. 꼭 갈 길을 정해놓고 거기서 한 발자국도 안 벗어나려는 사람 같아."

"맞습니다."

<로드워크> 中 p.412

총평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대한 묘사가 뛰어나서 충분히 호흡이 잘 쫓아가지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토리가 눈에 띄게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이 망가지는 과정에 대한 표현이 날카로웠다. 분노, 허탈감, 초조, 긴장, 불안을 잘 섞어가며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책을 읽게 만들었다.

표현에서 생각해볼 점

표현상에서 불편했던 점이 꽤나 있었다. 바튼이라는 인물이 나타내는 격해진 감정 표현을 위해 굳이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있었어야 했냐는 의문이 있다. 또한 묘하게 흑인과 백인 라틴아메리카 계열을 구분짓는 표현은 꼭 필요했었을까. 바튼을 지극한 백인중심의 남성으로 나타내야 했었다면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잘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이 서평은 '리텍콘텐츠'에서 지원을 받았습니다.

요즈음 들어 숫자들이 적힌 책들이 많이 보입니다. 명언 700~, 1일 1페이지~, 365일 읽는~와 같은 책들 말입니다. 좋아하는 종류의 책은 아니지만, 심리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교양서라도 먼저 읽어보고, 나중에 찾아보고 싶은 내용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고 읽었습니다.

책의 구성과 특징, 긍정적인 점

책의 구성은 총 5가지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PART1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 마음속에 숨겨 둔 무의식과 잠재력 -

PART2 불쑥 튀어나오는 우리의 본능 - 인간 행동 심리학에 대한 모든 것 -

PART3 그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 - 개인과 집단은 다르다, 사회심리학 -

PART4 무거운 마음에서 벗어나는 법 - 심리 치유와 마음챙김의 비법-

PART5 함께 사는 세상, 나만의 관계망 만들기 - 관계와 대화법에 대한 심리학 비밀 -

『사람, 장소 환대』를 읽으면서 사람이 가지는 속성과 심리학 용어 persona의 의미, 사람들이 연기하는 것들을 심리학에서 다룬 것이 신기했기 때문에 어빙 고프만이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584.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뜻이 '가면(persona)'이라는 게 역사적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It is probably no mere historical accident that the word person, in its first meaning, is a 'mask(persona)'.

586. 역할에 맞는 행동을 하려고 분투하면서 우리가 구축해온 스스로에 대한 관념을 가면이라 한다면, 가면은 우리의 참자아,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자아이다.

If we call a self-conception that we have built through struggles acting our role a mask, the mask is a true self, a self that we want to be.

본문 中 PART 5 함께 사는 세상, 나만의 관계망 만들기, 어빙 고프만, p.250~251

짤막하게 본문의 문장을 끌고 왔는데도, '어빙 고프만'이 어떤 것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해한 대로 풀이해보자면, 사람은 연기하는 존재이며, 역할에 맞게 행동하면 스스로 쌓아온 자신의 모습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향해 간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해서 어떤 이론이 뒤에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사고를 했는지는 명확하게 윤곽선이 보입니다.

역시, 명언이라는 것이 이런 면에서 장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는 '한 줄 요약'이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명언은 보통 삶을 관통하는 말이나, 학자의 견해가 압축성을 띠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이되어 전해질 때 비로소 전해져 내려옵니다. 따라서, 명언을 모아서 읽어본다는 것은 핵심 축을 읽어본다는 뜻입니다. 함축적으로 전해진 말은 '시'처럼 읽기 힘든 면도 있으나, 명언은 보통 문학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고의 흐름을 한눈에 보기에는 손색없습니다. 제목 그대로 명언이 가진 특성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명언이 주제별로 분류가 되어있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주제별로 학자의 사고를 비교해볼 수 있고 인물에 대해서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책의 대부분 분량이 명언 모음에 맞춰져 있어 내용 자체로 비교는 힘들지만, 어떤 주제에 관한 심리학자의 존재를 알아보는 것 자체로 연계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저와 같은 아는 심리학자라고는 '프로스트, 융, 파블로브, 밀그램, 아들러, 고프만' 정도의 초보자인 저에게 말입니다.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35人)를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심리학 책을 많이 읽어보지도 않았고, 초심자로써 어던 인물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심리학은 연구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교양서적으로 심리학을 많이 접해 본 사람이라면 쉽게, 원하는 심리학 지식을 찾기 위해 알맞은 학자의 저서를 읽어볼 수 있겠지만,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다양한 학자들의 말을 짧은 구절로 전해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입니다.

숙련자에게 있어 선배 심리학자들의 짧은 말 한마디가 오히려 보다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명언으로 접한다는 것은 함축성을 띠기 때문에 지나가는 한 구절의 말로 읽었던 책의 내용이던, 배웠던 심리학 지식이던 자신의 생각을 환기하는 데 유용합니다. 자신이 깊이 있게 다루는 주제 이외에 주변을 둘러본다는 것은 어느 학문에서나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다만, 자료의 출처. 즉 책의 구절 중 하나라면 어디서 나왔는지 부록에 첨부를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작은 글씨로 2장 정도) 심리학자들이 남긴 말들만 적혀있다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심리학에 대해 막 알아보고자 마음을 먹고 읽은 책이어서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명언을 읽고 나서 관심이 생겼다면, 그 주제에 대한 책을 읽어볼 수 있도록 이어지는 흐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 흐름이 깨졌습니다. 물론 진정으로 찾아보고 싶다면 영어 원문을 검색해서 찾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아쉽습니다. 명언집을 보고서 맘에 드는 설명이 있으면 바로 책을 찾아 읽으려고 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심리학자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중요한 사람들인데, 그에 비해서 설명이 부족한 점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숙련자가 정독할 책은 아니라서 굳이 상술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초보자의 입장에서도 조금 더 자세하게 서술이 되어 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명언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추측이 가능하지만, 명언을 이해하는 데에도 좀 더 이론 설명이 있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마무리

명언 700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심리학의 좋은 글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는 점에서 좋았습니다. 다만, 책을 읽어볼 때 명언집이라는 것을 확실히 숙지하고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글이고, 중간에 이론과 학자에 대한 설명도 짤막짤막하게 들어가 있어 크게 어려움은 없지만, 심리학 입문서로 여기시면 안될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에는 충분하고 다양한 심리학자들을 가볍게 만나보기에는 좋은 책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이 서평은 '푸른숲 - 심심'의 도서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기다림은 끝내기로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오래다. 그는 결코 내게 그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상해야만 한다. 상상 속에서라면 경계를 넘어 꿈을 꿀 수 있고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 현실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이 편지는 소환장이다. 아버지라면 그랬을 법한 방식으로 아버지가 내게 이야기하게끔 적어보았다. 아버지가 해주었으면 좋았을 이야기를 쓰되, 나를 통해 그가 모습을 드러낼 여지도 만들어야 했다.

아버지에 관해, 또 아버지의 역사에 관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많다 보니, 상당 부분을 머릿속에서 그려내야 했다.

이 편지는 경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 그에 필요한 말을 아버지에게 부여하고 사과의 언어로 표현하게 해 마침내 나를 자유롭게 만드려는 노력이다.

아버지의 사과 편지 中 독자에게

위의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작가 자신이 당한 피해 사실과 상처를 '아버지의 사과 편지'라는 형식을 빌려 작가 자신을 위로하고 극복해나가기 위한 책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고, 힘듦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소개하는 까닭은 단순한 고통이자 한 순간의 분노로 이 책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연대해주면 좋겠습니다.

서평을 쓰기에 앞서, 먼저 모든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아동성폭력에 관해서 무지하고 있었습니다. 인지하고서도 무관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고통이 단순히 한 순간의 분노로만 소비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따라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볼 것을 약속하고, 하나의 사건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때로는 분노하고 연대하며 사과를 얻어내기 위한 과정에 동참하며, 그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제도와 관습을 벗어나고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감사합니다. 또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다른 피해자들이 위로받을 수 있도록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모든 사람들 그런 용기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그 지옥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준 생존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냅니다.

이 글이 피해자인 딸이 아버지의 입장이 되어서 쓴 편지인 만큼 서평을 작가인 '이브 엔슬러'에게 주는 편지로 써보고자 합니다. 지금 쓰는 이 편지는 지난 무지에 대한 사죄이자, 어렵게 알게된 사실들을 흘려보내지는 않으리라 다짐하는 자신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서평으로나마 쓰는 편지가 다른 생존자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무관심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이브에게.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었을 때 잠깐 멍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의 입장에서 쓴 편지라니. 어떻게 다시 기억을 헤집어 당신 스스로에게 해줘야 할 말을 찾았는지, 그 과정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가해자를 이해하고(용서의 의미가 아닌 분석의 의미입니다.) 다시 글로써 표현하기 위해서는 해체에 가까운 분석작업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재차 상처를 입게 될 것은 자명하고, 오히려 숨기고 싶은 기억에 가까울 것입니다. 아무리 운동가로써 끊임없이 상처를 끄집어내고 공유, 연대하는 과정을 반복했다고 해도, 여전히 아니면, 오히려 더 힘든 작업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다시 기억을 끄집어내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 선택에 대해 감격할 따름입니다. 고통과의 싸움에서 나아가는 길, 기록하고 맞서며 상처를 꺼내보이는 일이 보다 당신이 자유로워지는 길이기를 바랍니다.

처음 읽기를 시작하면서 몇 페이지 읽자마자 책장을 덮었습니다. 애초에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인간으로써 갖는 두려움이 책장을 넘기기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나락으로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를 시작한 것은 영원히 준비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범죄의 피해자들이 그렇듯 누구나 예상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채로 찾아옵니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준비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준비를 해도 여전히 고통스러울 것이 자명하고 애초에 대비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예상대로 그러했습니다. 어떤 다른 책을 읽더라도, 대비책을 새우더라도 피해자의 진심 어린 이 증언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에비'로 시작하는 말이 시작부터 구역질이 났습니다. 그딴 짓거리를 하고 나서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지칭할 수 있는지, 아니, '사랑'이라는 표현 자체가 죄악이었습니다. 어떻게 피해 생존자로써, 글을 쓸 때 그가 당신을 부르는 말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표현해 지칭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면 '사랑'을 머나먼 과거로 나타냄으로써 그의 죄악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사건이 벌어지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것인가요.

​ 작중에서 범죄장면을 묘사하면서는 책을 덮었습니다. 정말 못보겠더군요. 처음의 각오가 무너졌습니다. 목격자로써 읽어나가리라, 글로나마 고통을 읽으리라 생각하고 시도한 것들이 의미가 없었습니다. 전쟁이 가져온 참혹함 보다, 자신의 부모에게 처참하게 살해를 당하는 그 모습이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가정이라는 최후의 안전지대에서 무참히 일어난 일은 그저 지옥의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이 지켜야할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가 자신의 손에 빛을 잃어가고 깨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나 했을까요. 알아도 멈출 생각이 있기나 했을까요.

어찌보면 그도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써, 혹은 교육의 파멸을 가져온 학자(Daniel Gottieb Moritx Schreber)의 한 피험자로써 정신 이상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한 분노와 반발이 사라지고 오히려 휩쓸리고 가학과 파멸을 선택하는 길 밖에는 몰랐습니다. 저는 인간성과 사랑, 교육의 모든 첫 조건인 '모성적 사랑'을 무시한 모든 사람에게 분노할 뿐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방식은 많은 사람들을 나락으로 몰고 았으며 정신적 이상과 인간으로써의 죽음을 낳았습니다. '그림자 인간'으로만 존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도 같은 희생자이지만 동시에 끔찍한 가해자가 되도록 만들면서요. 어떻게 하면 피해자로써의 그와 가해자로써의 그를 이해하고 연민하며, 동시에 분노하고 비판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범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죄악을 저지른 것을 이해해 볼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의지가 그런 죄악을 인정해야 할 만큼 나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타고난 의지. 그 사회에서 만들어진 규범과 도덕에 대한 의지는 욕망에 쉽게 휩쓸린 만큼 가볍게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 사람도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써 정신이 온전치는 못한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써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것이 그냥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니? 기억하는 것만큼 정말로 끔찍했니? 왜 다른 사람들은 이 일에 신경 쓰지 않았을까? 왜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거지? 왜 그 자리를 조용히 비켜가지 않았니? 왜 너 자신에게만 신경을 썼던 거지? 너무 유난을 떤 건 아니야? 세상일은 원래 그런 것인데 말이야. 왜 안전한 새장을 흔들어 소리를 내고 둥지를 망쳐 놓았지?" 이 장에서 나온 그 모든 변명들이 다시금 상처로 돌아와 피해자들에게 비수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사과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편지가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 글을 마무리하기 전에 아동에게 가해진 폭력의 참상을 기록한 한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 류이근, 임인택, 임지선, 최현준, 하어영 (한겨례 신문 탐사기획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을 다룬 책입니다. 저자분들께서 마음아파도, 읽기 힘들어도 무관심해지지 말고 읽어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이들이 학대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 중에는 우리의 무관심도 있습니다. 정부와 아동단체의 무관심도 무관심이지만, 그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읽으면서 많이 아픕니다. 읽으면서 호흡이 가빠져서 책을 내려놓고 다시 읽기를 수차례 반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사과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여성을 위해, 모든 어린이를 위해, 모든 존재를 위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현대지성'에서 도서지원을 받았습니다.

왜 고전인가

먼저 고전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밝히고자 합니다. 고전은 그 자체로 가장 검증된 글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각기 다른 세대를 거쳐오면서 다양한 해석으로 풀이되었고, 인간의 본질을 명확히 분석하여 인류의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서로를 관통합니다. 공자가 말한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무지를 아는 것이 곧 앎의 시작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처럼 인류의 고전은 서로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방향이겠지요. 이것이 고전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앞으로도 고전이 읽혀질 이유입니다.

고전古典이 소중한 까닭은 그것이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가장 정확하게 분석하고 인간이 지향하여 나아갈 바를 가장 본원적으로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러한 연유로 인류의 장구한 역사에서 고전이 그토록 많이 회자되고 널리 읽혀온 것이리라.

머리말 中, 옮인이

감상

논어를 읽으면서 '仁義禮智信' 유가의 오상(五常)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읽어보았습니다. 또한 '덕德'이란 무엇인가 고민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각각에 대해서 정의내리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하지는 못하나, 행할 수는 있을 것 같았습니다. 유학의 문화권에서 살고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실천'을 가지고 접근한다는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선조(선비)들이 들을 읽으면서 하루를 연 이유도, 다시 되새기면서 삶을 시작하기 위함입니다. 논어의 텍스트를 독파하고 이론을 깨닫는 것이 아닌, 부처가 수행을 행하듯 이해한대로 행한다면 공자꼐서 남기신 말씀의 의미가 살아나지 않을까요.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닫았던 부분은 아래의 말씀입니다.

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고자언지불출, 치궁지불체야.)

"옛 사람들이 말을 가벼이 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이뤄내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겼기 때문이다.

4편 이인里仁 22절

언젠가 심리학 책을 보면서, '무엇인가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공유하고 다시금 자각하게 만들어라'는 의미를 가진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입으로 내면서 행하라는 뜻이었지요. 그러는 과정에서 말하고 나서 행하지 않은 것들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것을 행하지 않음이 부끄러웠습니다. 공자께서 하신 이 말씀은 '이뤄내지 못한 것이 수치이니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뜻일 것입니다. 자신을 자각하게 하기 위해서 내뱉은 말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행동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나가면서 눈에 띄는, 마음에 걸리는 문장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반성하고 다짐하면서 읽어나갔습니다. 아마 '논어'를 읽는다는 것은 이런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설명

'논어'라는 책을 서평하는 데 있어 내용의 측면에서 비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검증되어 전해져 온 것이기에 평가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애초에 동양철학에 대해 조예가 깊어 역사적인 맥락에서의 이해가 많지 않고, 해석을 함에 있어서도 책에 끌려다닐 수 밖에 없기에 판단을 보류하겠습니다. 아마 무기한 연기가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이 책에서 다른 번역서들과는 다른 점과 설명의 구체성등을 갖고 있는지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번역만 적혀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자 자체에 대한 풀이를 함으로써 내용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는 점입니다. 한자는 그 자체로 뜻글자이기에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더 많은 의미를 함축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글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점을 활용하고 언어에 대한 의미를 더 잘 이해함으로써 명확하게 텍스트를 읽어갈 수 있습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중요한 핵심 단어, 문맥을 관통하는 단어들에 대한 해체를 좀 더 많이 싣는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해설을 읽으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책들에서는 해설을 하면서 유학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해할만한 점들을 짚어서 설명하는 부분을 찾아볼 수 없었는데, 이번 해설에서는 오해할 만한 부분에 대해서 설명해주어서 좋았습니다. 읽으면서 발견한 부분 한 구절을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충忠'은 흔히 '충성'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그보다 더 넓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 본래 뜻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진심을 다하다"라는 의미이다.

4편 이인里仁 15절, 해설 中

항상 오해하고 있던 내용인 것 같습니다. '충'을 이야기하면, 군신관계로써 임금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진심을 다한다'는 뜻을 가지고 이해해야 논어에서 언급하는 '충'중에서 군신관계가 아닌 사람들 사이의 맥락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무리

읽어보실 분들에게 추천을 해 드리자면, 해제를 반드시 읽고 나서 천천히 시도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전공을 하지 않고, 새로운 경험과 인문학에 관심을 갖고 이해해보기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써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고전이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다루고 있듯이 '머리로'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우리의 문화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다만, 읽고 난 이후의 삶의 태도가 얼마나 바뀔지 그것으로 진정 이해했는지를 알아보아야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보면서 공자께서 남긴 언행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한층 관계에 대한 깊이가 깊어지고, 인(仁)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평] 『얼개』 정문

* '바른북스'에서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소명선은 아버지 소명국의 얼굴을 돌 절굿공이로 찧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숨이 끊어진 아버지의 얼굴을 계속 찧었다. 아홉 살 영선의 얼굴은 핏물로 덮였다. '엄씨 나가 잘해 부럿지?"

소설 『얼개』 中 첫 문단

첫 문단부터 잔인했다. 원래 인생살이를 이야기하고, 업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소설들이 그럴 수밖에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첫 문장부터 너무했다. 이렇게 충격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접한 기억이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흠칫했다.

'얼개'라는 단어 자체를 잘 몰랐다. 생소했다. '얼기설기 엮인 것들'이라는 뜻인가 하고 대충 추측했다. '어떤 사물이나 조직의 전체를 이루는 짜임새나 구조'를 말한다. 제목을 이해하니 소설의 내용이 좀 더 와닿았다. 이 소설의 주된 줄거리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상황, 저지르는 일들과 선택들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굴러간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삶의 짜임새, 구조를 나타내기 위해서 '얼개'라는 제목을 지은 것 같다. 주된 내용이 '업'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사람들 사이의 연과 인과응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이런 종류의 책은 처음이라 서평을 쓰기에는 곤란한 면이 있다. 소설의 갈래를 설명하기에는 조금 까다롭다. 여러 인물들의 사건의 차례로 이어가기 때문이다. 처음은 전후 소설로 시작했다가 군부정권 시대까지 흘러간다. 그 중간에서 부동산의 어두운 면과 관련된(책에서 사업이라고 표현하는 것들), 사람과 사람의 욕심이 끝없이 이어진 소설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욕심과 상황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간다. 사람과 사람을 속이고 죽이는 그런 삶이 돌아간다.

이 책에서는 여러 사람의 죽음이 나온다. 살해라는 표현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재산을 얻기 위해, 어쩌면 천벌로, 어쩌면 자신의 선택으로 그런 일들이 벌여졌을지도 모른다. 책에서는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데자뷔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얼개'인 것 같다. 악순환의 굴레와 구조. 인과응보와 선택 그 사이에서 사람들은 이익을 쫓아 움직인다. 욕심이 가진 힘은 사람들을 다시 파멸로 몰고 간다.

가장 소름 돋는 부분은 "저기, '류찬형 회장님'이 왔다."(p.151)라는 부분이었다. 여전히 반복되는 새로운 시작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와닫는 부분이었다. 그에게 빌붙는 사람들. '사업'의 이름으로 할 일들이 다시 펼쳐지는 듯했다. 작중에서 설명하는 돼지가 돼지인지 사람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대상이 헷갈리는 게 아니라, 느낌이 헷갈린다. 하찮게 여기는 돼지나 구역질 나는 사람들이나.

태생의 비밀을 서로 모르는 채, 사업과 음모와 갈등에서 얽혀 가는 '생기'의 이야기에서 피는 물보다 인연의 정도가 더 깊다고 믿지만, 그러나 결국, 인연이라는 것 자체는 얼개, '헛것'이라 깨닫고 그 업보를 포괄적으로, 도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저서 소개 글

사실 아직 읽어도 한 번에 확 와닫는 글은 아니다. 불교적인 이해를 좀 더 갖춘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수월할 것 같다. 지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인연과 업보들 새롭게 생기고 반복되는 것들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정도로 이 책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런 '사업'에서, '얼개'에서 허상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인과응보는 생각하지 않은 채, 얽혀 지내고 있지 않는가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