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발간된 추리 소설 자체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가 너무 큰 탓일까.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느낌이다. 

우선 너무나도 단조롭고 상투적인 문체가 상당히 눈에 거슬린다. 관습적인 문장들이 상당히 자주 등장해서 읽다 보면 몰입에 방해를 줄 정도다. 게다가 재기 넘치거나 아름다운 문장도 거의 없어, 그저 사건을 전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글을 사용한 듯한 기분이다. 심지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마저도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본 듯한 흔한 이름들이라 이러한 기분을 더욱 진하게 한다. (크리스, 라일라, 패트릭 등등..) 문학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헐리우드 시나리오를 보는 기분이다. 

또한 추리소설답지 않게 전지적 시점을 사용한 것도 몰입에 상당히 방해를 준다. 일반적으로 추리소설의 경우 직접적인 심리 묘사는 최대한 피하고, 간접적인 인물의 묘사 등을 통해 심리를 조금씩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악의 추억'에서는 심리를 그냥 직접적으로 써버린다. 그것도 한 인물의 시각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건 전개 도중 거의 모든 인물의 심리를 서술해버리기 때문에, 긴장감이 상당히 떨어지고 몰입감이 떨어진다. 딱 잘라 말해서 읽는 재미가 너무 떨어진다. 개인적으로 추리소설은 글쓴이와 독자 간의 게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쓴이가 얼마나 많은 패를 갖고 있다가, 독자의 뒤통수를 치느냐. 그런데 대부분의 패를 공개해버리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가장 중요한 패를 하나 들고 있다고는 해도, 그걸 공개하는 건 결국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시간까지 무슨 의욕을 가지고 이 단조로운 문장을 읽어내려 가라는 말인가?

결정적으로 사건 자체가 식상하고 어디선가 본 듯한 이야기라는 점이 가장 문제다. 기억을 잃어버려 이중 인격으로 행동하는 살인자? 물론 전체적인 사건의 구성 자체는 새롭게 짰지만, 기본 모티브 자체가 굉장히 익숙하다. 가뜩이나 문체도 단조롭고 네이밍 역시 눈에 익으며 심리 묘사도 직설적이라 긴장감이 떨어지는데, 핵심 사건 자체도 이처럼 흔하디흔한 모티브를 울궈먹었으니 재미가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데니스와 크리스가 동일 인물이라는 마지막 반전을 통해 재미를 주려 했지만, 그까지 가는 과정이 지루하기 짝이 없고 그 반전 역시 흔하디흔해 진작부터 예측이 가능할 정도다. 이런데 읽을 맛이 나겠는가...

최소한 끝까지 읽긴 했기에 별점을 한 개 준다. 한 마디로 말해 책값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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