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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를 위한 바이러스 + 면역 특강 - 유튜브 100만뷰, 서울대 생명과학부 안광석 교수의 눈높이 과학강연!, 2021 개정판
안광석 지음 / 반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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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초쯤 넷플릭스에서 ‘판데믹’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우연히 봤다. 그때만 해도 다소 생경했던 그 단어가 올 한 해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늘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왔다지만, 이렇게까지 전염병이 모두의 일상을 쥐락펴락하는 경험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지구인들에게는 처음이다. 생물학/의학 지식이 미천한 나로서는 뉴스를 보다가 낯선 용어들을 만나곤 했는데, PCR 방식의 코로나 검사, mRNA 물질을 이용한 백신, 사이토카인 폭풍 등이 그 예다. 그 외에도 코로나 관련 온갖 정보들을 다소 무분별하게 접해왔는데, 이렇게 파편적으로 접한 정보들은 지식이 되지 않고 피상적으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 무지한 상태를 벗어나고 싶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 책을 찾아 읽게 됐다.

전염병 시대에 무지는 생존을 위협하는 독이다. 어느 교회에서 코로나19 예방책이랍시고 분무기로 소금물을 뿌리다가 대규모 집단감염이 일어난 걸 봐도 알 수 있다. 인터넷을 하다 보면 코로나19의 치사율이 그리 높지 않은데 너무 유난 떠는 게 아니냐는 댓글을 이따금 보기도 하는데, 과연 그럴까? 특정 전염병의 치사율과 전파력은 반비례하는데, 코로나19의 경우 치사율이 비교적 낮은 대신 전파력은 어마어마하게 강하다. 그만큼 바이러스의 숙주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전파를 많이 시킨다는 얘기다. 그런데 치사율이 0%가 아닌 이상, 엄청나게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를 억제시키지 못하면 당연히 사망자는 계속 늘어난다. 집단면역이 작동 가능한 수준(전 세계인의 60%)까지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도록 손 놓고 있는다면, 치사율을 우리나라 수준인 1% 후반으로만 잡아도 대략 8천만 명 이상의 인구가 사망한다. 별 거 아닌 게 아니다. 이를 막으려는 노력을 유난이라고 보는 시각은 제대로 된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의 저자인 안광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전염병은 아는 만큼 대처할 수 있는 질환”이라고 강조한다. 바이러스와 팬데믹, 코로나19에 관해 대중의 관심사와 핵심적인 내용들을 간략히 짚어주는 저자의 강연은 유튜브에서 100만 뷰를 기록했다. 책은 이 강연보다는 조금 더 깊이 있게 나아가되, 쉽게 풀어쓰고자 한 노력이 느껴진다. 문송한 나로서는 중간중간 읽는 속도가 늦춰지기도 했으나 그만큼 유익했다. 서두에 언급한 낯선 용어들뿐 아니라 우리가 평소 당연한 듯 여겨온 사실들이 왜 그런 건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왜 바이러스는 항생제가 통하지 않으며 저온 건조한 환경에서 잘 퍼지는지, 왜 환기가 중요하며 에어컨 공조가 위험한지, 바이러스가 해로움에도 왜 존재해야 하는지, 왜 감기에 걸렸을 때 근육통이 생기고 코막힘은 한쪽이 더 심한지 등 전염병과 건강에 대한 실용적인 상식들이 담겨있다.

저자는 코로나19가 독감처럼 토착화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백신 개발사들이 희망적인 예방효과를 발표하고는 있지만, RNA바이러스의 특성상 코로나19의 변이가 계속적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백신이 상용화될 즈음에는 이를 빗겨가는 변종이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 여지껏 인류가 종식을 고한 전염병이 단 1종(천연두)뿐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만 저자는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기생체의 숙명을 지닌 바이러스는 지나치게 치명적이면 절멸될 수밖에 없고, 한때 막대한 사망자를 낸 독감이 통제 가능한 질병이 되었듯 코로나19도 인류에게 길들여지리라는 예상이다. 종식보다는 공존, ‘포스트 코로나’가 아닌 ‘위드 코로나’의 시대로 흘러가는 지난한 앞날에서 막연한 공포감 대신 지피지기로 대처한다면 나와 소중한 이들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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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5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5
EBS 역사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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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EBS의 유명한 역사채널e의 내용을 정리한 다섯번째 책이다. 책으로 접하는 것은 처음인데, 방송보다 더 상세한 이야기들을 찬찬히 읽어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방송이 그렇듯 책 또한 본래 역사에 흥미가 없는 나같은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만한 콘텐츠들을 담고 있다. 조선의 궁녀는 격일근무제에 꽤 높은 보수와 특별상여금까지 받는, 의외의 '신의 직장'이었다는 것(물론 평생 독신으로 살아야 하니 기피했다지만... 격일근무는 넘나 부러운 것!), 조선의 인삼이 미국산 인삼과 경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홍삼이 나왔다는 것,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뿔 달리고 못된 도깨비의 이미지는 사실은 일본의 요괴인 오니라는 것, 한때 400여 종에 달했던 우리의 전통주가 주세법 등 일제의 개입으로 인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는 것, 궁에 최초로 전화기가 도입됐던 시절에는 전화를 향해 절을 하고 엎드려서 받았다는 것 등. 특히 유무형의 우리 문화유산이 일제의 식민지배로 인해 많은 부분 파괴되고 소실되었음을 느끼면서 새삼스레 안타까웠다.


빼놓을 수 없는 역사 이슈 중 하나인 독도문제와 관련된 꼭지에선 일본이 스스로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부인한 명백한 증거인 1877년의 '태정관 지령'과 '기죽도약도'를 소개하는데, 기죽도약도를 발견한 일본인 목사의 말이 와닿았다.


"우리가 자기 인생의 역사를 지울 수 없듯이

국가도 스스로 나라의 역사를 지울 수 없다."


힘을 이용해 역사마저 바꾸려 하는 시도들이 그 얼마나 많던가. 하지만 역사는 바꾸거나 지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지나간 역사를 방증하는 소중한 '기록'이야말로 세상을 깨우는 힘이라는 것을 이 책의 부제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이 말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 그리고 역사는 추천인의 말처럼 죽은 화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지금 책을 읽는 우리와 소통하며 우리가 무엇을 이뤘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 책 속에서 #


p.10

증자의 일일삼성(日日三省)을 가슴에 품고
왕세손 시절부터 일기 쓰는 습관을 지녔던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

"밤에는 하루의 일을 점검하고...
한 달이 끝날 때면 한 달 동안을 점검하고...
이렇게 실천하니 잘한 것과 잘못한 것,
편리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깨닫게 된다."


p.66

복원은 단순히 붙이고 칠하는 기술이 아니라 그 대상이 지닌 역사성에 대한 시대적 인식의 반영이다.

문화재 복원은 수많은 맥락을 고려한 '선택'이 필요하다. 역사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복원은 역사의 파괴와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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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도 읽지 못하게 하라 - 누가 왜 우리의 읽고 쓸 권리를 빼앗아갔는가?
주쯔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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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금서의 역사는 문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기원전 440년 고대 그리스 아테네 정부가 풍자 희극을 금지했던 때부터 20세기 중반 소련에서 작가들이 박해를 받던 때, 아니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금서의 아픈 역사는 계속됐다. 놀라운 점은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관용적으로 여겨지는 미국에서도 불과 몇십 년 전까지 불온서적, 음란서적이라는 명목 하에 문학적 가치를 지닌 여러 명작들을 금서로 지정하고 몰수했다는 것이다. 국왕과 정부, 종교기관, 사법부가 윤리와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신들의 권위에 반하는 작품들을 향해 검열의 폭력을 휘둘렀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기회를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작품이 불태워지고, 고발과 기소를 당하고, 투옥하고, 고국에서 추방당하고, 심지어 목숨의 위협을 받거나 사형선고를 당하는 등의 갖은 아픔을 겪었다. 열정을 불살라 낳은 자식같은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길 포기하거나 뜯어고치며 검열당국의 눈치를 봐야했을 괴로움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금서를 유통한 출판사들도 법적 분쟁에 시달렸으며 금서의 번역가가 살해당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용기있는 누군가들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살아남은 작품들은 훗날 명작으로서 그 가치를 재평가받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영향력이 상당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법한 작품, 문학의 새 지평에 도전한 작품들이야말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사상적 영향력과 예술성, 저항과 도전정신을 높이 살 만한 금서들, 그리고 그 저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떠돌고 정부가 영화와 드라마, 코미디에까지 도끼눈을 뜨고서 갖은 수로 개입을 일삼은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추진되는 이 사회는 여전히 우리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씁쓸한 일이다. 이 책의 수많은 금서의 사례들은, 진정한 문학의 가치는 아무리 짓누르고 불태우고 난도질해도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을 지녔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읽고 쓸 권리를 쟁취하고 지켜나가려는 노력이 존재할 때에만 가능한 이야기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책 속에서 #

 

p.10 (옮긴이의 말 중)

"나의 책들 속에서 언제나 나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이제 와서 너희들이 나를 거짓말쟁이처럼 취급한단 말이냐!

너희에게 명령한다.

나의 책을 불태워다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1938년에 쓴 시 <분서>는 나치의 분서목록에서 자신의 책이 빠진 것을 알게 된 한 시인의 외침이다.

 

p.13-p.14 (옮긴이의 말 중)

한마디로 금서는 한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거울이자 자유의 수준을 판단하는 잣대다. (…) 1933년 헬렌 켈러가 나치의 분서에 항의하며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당신들이 사상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p.40-p.41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 내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더 시간과 가까워졌다. 그것은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알았던 시간이 아니었다. …… 이제 그것은 벌거벗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자유로운 그 자체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가장 기본적이고 원시적인 상태의 시간이 내게 자신의 진정한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한순간도 자신을 잊지 말고 계속해서 내 앞에 두고 그 무게를 느껴달라고 했다.

(밀란 쿤데라의 <농담> 중, 정치범으로 강제 노역을 하던 루드비크의 생각)

 

p.55

솔제니친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정의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정의는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의 영혼이나 양심과 관계된 비밀, 생사의 모순과 관계된 비밀, 전쟁 승리에 관한 고통스러운 비밀, 전 인류에게 적용되는 법칙을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의 임무다. 그 법칙은 기억할 수조차 없는 수천 년 전에 생겨났으며 태양이 사라지지 않는 한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한 말 한마디가 이 세상 전체보다 더 중요하다."

 

p.113

작가[<벌집>을 쓴 스페인 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는 "이 소설은 삶의 단편일 뿐이다. 무언가를 감추지도 않고 대단한 비극도 아니며 선심을 베풀지도 않는다. (…)"라고 말했다. 소설의 묘사가 과도하다는 비판에 대해서 "내 펜 끝에서 그려지는 어두운 그림자가 너무 강렬하지도, 너무 진실하지도 않도록 하기 위해 내가 잉크병에 몇 번이나 물을 섞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p.114-p.115

그[셀라]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작가로서의 고충을 밝히며 "사소한 정치적 원인으로 언어ㅡ모든 언어ㅡ가 공격자들 앞에서 웃는 얼굴로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또한 작가는 "힘들지만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는 임무를 지고 자유와 인간의 창의성을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문학이 본연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라고도 했다.

 

p.138

그들에게 죽음은 하나의 은총이었다. 죽음만이 그들을 죽음의 공포와 끔찍한 고독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머가 쓰러져 죽어갈 때 사람들은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상황이 그렇게 해서 끝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당시 신문에서는 이런 냉혹한 한마디로 표현되었다. '서부 전선 이상 없음.'

 

p.139

두 눈을 감는다. 이대로 전쟁, 공포, 비열함이 다 사라지고 젊음과 행복이 다시 깨어났으면 좋겠다. …… 문득 그녀를 손에 넣어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를 감싸고 있는 두 팔을 꼭 끌어안으면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중)

 

p.159

비열한 사람은 이 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인격을 갖춘 사람은 저열한 말을 들어도 그 인격이 더럽혀지지 않는다. 진흙이 찬란한 햇빛을 더럽힐 수 없고, 땅 위의 더러움이 아름다운 하늘에 오점을 남길 수 없는 것과 같다.

(보카치오 <데카메론> 중)

 

p.279

한편 소설이 죄악을 고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황당한 논리라고 반박하며 "진정한 예술품은 죄악을 고발할 필요가 없으며 작품의 논리 자체로 도덕성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결론을 내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문학작품의 역할은 비판이 아니라 표현이라는 것이 그[<보바리 부인>의 작가 플로베르]의 주장이었다.

 

p.384

그는 나를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붉은 가운으로 감싸서 하늘을 가려버렸어. 길 가는 사람이 "추기경의 가운 안에 들어 있는 게 뭡니까?"라고 물으면 누구든 대답할 수 있을 거야. 그 안에 국왕이 있다고!

(추기경이 실질적인 국왕임을 한탄하는 루이 13세의 말. 남의 얘기 같지가 않은 게 웃프다.)

 

p.418-p.419

그들에게 '윤리'란 '신앙'의 동의어였다. (…) 앞에서 열거한 금서들을 보면 교황청은 천주교에 불경을 저지른 문학작품을 주로 금서로 지정했다. 많은 작품에 '문란죄'라는 죄명을 씌웠지만 사실 로마교황청이 걱정한 것은 교회의 명예와 권위였다. (…) 진정한 음란서적들이 당시 서점에서 아무 통제 없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는데도 <금서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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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안경 - 위대한 철학자가 되어보는 체험형 철학입문
미요시 유키히코 지음, 송태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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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서를 멀리한 지 오래되었다. 한 줄 한 줄을 붙들고 낑낑대면서, 분명 한국어로 쓰여있는데도 외계어를 읽는 듯한 절망감에 휩싸였던 기억... 그마저도 대학시절의 일이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생각하는 법을 점점 잊어버리는 것 같다는 위기감에 철학을 가까이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어렵고 지루한 철학서 앞에 좌절해본 기억을 가진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시대별 철학자들의 이론을 늘어놓은 이론서가 아니라, '철학자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기 위한 입문서다. 인식, 존재, 종교, 도덕, 과학, 죽음, 전쟁이라는 우리 삶의 핵심적 주제에 대해 철학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볍게, 재미있게 접근해볼 수 있는 책이다.


실용학문에 밀려 불필요한 구시대적 학문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철학이 사실은 모든 학문의 전제격으로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삶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님을 알려주고자 저자는 우리 삶 속의 흔하고 평범한 하나의 장면으로부터 각 챕터를 시작한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신호등 색깔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장면에서 과연 어머니가 보는 빨간색과 아이가 보는 빨간색은 같은 것인지, 귀가길 전철에서 자리양보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에 과연 이런 내적 갈등을 주는 도덕적 규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와 같은 의문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단초를 던진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신학을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과학이 사실은 신학의 피안 사상을 계승하는 후예라는 관점이다. 이는 5장을 비롯해 여러 장에 언급되는데, 생명을 입자화하여 바라보고 '생의 결과'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신학과 과학의 사상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살아 있는 것'을 모든 경험의 대전제로 삼는 세계관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생의 복권을 이야기한 20세기 이후 철학자들, 그리고 이미 애니미즘과 같은 원시신앙에도 존재했던 생명과 현세에 대한 긍정이야말로 우리 삶의 중심적 태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장에서 인용되는 메를로퐁티의 사상에 관심이 가는데, 나중에 책을 한 번 읽어봐야겠다.


모든 철학적 사고의 시작은 의심. 너무도 당연시되는 것들을 다시, 새롭게 바라볼 줄 아는 그 '안경'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가 바다 속인 줄도 모른 채 헤엄치는 심해어와는 다른 존재로서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철학자의 눈을 빌려 고민해보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 책 속에서 #


"결국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상이란 어디까지나 인간이 지닌 인식 능력을 전제로 한 '한정된 세계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이 세계의 진정한 모습을 인식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즉 이 세계에는 "다양한 지각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진리가 있는"(메를로퐁티, 『지각의 현상학』) 것이다."(p.57)


"우리는 이런 선천적인 인식 능력에 의해서는 가능적 경험의 한계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 그런데도 이 가능적 경험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이야말로 형이상학의 가장 본질적인 관심사다." - 칸트, 『순수이성비판』(p.75)


"영혼이 불멸할까 안 할까에 따라 도덕은 완전히 달라진다." - 파스칼, 『팡세』(p.123)


"인간이나 자연을 세분화하고 수치화하는 과학이란 바로 사후 세계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는 '신의 무기적(無機的)인 시선' 그 자체다."(p.156)


"요컨대 이러한 과학이나 도덕이 지고의 가치, 인류의 목적인 한 그것은 사후 세계의 숭배, 즉 현세의 부정, 생명의 부정으로 이어지고 말기 때문이다."(p.159)


"지금 살아 있는 이 세계야말로 천국이고 현세야말로 진실한 세계다. (…) 즉 '살아 있는' 것을 모든 경험의 대전제로 삼고 거기서부터 모든 가치관을 구축해가는 것이다."(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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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3 - 개정판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5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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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은 보통 사건 그 자체가 아닌 '비하인드 스토리'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이 '누가' '어떻게' 그런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열심히 추적한다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범인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그리고 사건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보다 집중하는 식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은 3권 다 합치면 1,5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저러한 일본 추리소설의 특성상 쿨하게 전반부에 범인이 누군지를 다 밝힌다. 그러고도 남은 이야기를 흡인력 있게 끌어갈 수 있다는 어떤 자신감이 느껴진다. 긴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범인들이 어떤 비뚤어진 욕망을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는지, 어느날 갑자기 덮쳐온 범죄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그 폐허로부터 더디게나마 어떻게 회복되어 가는지까지를 그리고 있다. 발에 채일 만큼 넘쳐나는 실종사건들이 제각기 얼마나 짠한 사연들을 감추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은 분명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다. 그런데 범인이 대체 왜 그렇게까지 잔인한 범행들을 저지르기로 맘 먹었는지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가 그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인 각본을 한 순간에 포기하는 장면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결말이 좀 달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는 유족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희생자들을 충분히 보듬어주지 못하는 사회, 진실보다는 자극을 좇는 매스미디어와 같은 씁쓸한 현실의 모습을 탁월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죄책감은 범인이 아닌 희생자 주변인의 몫이며, 죄책감의 감옥에서 풀려날 열쇠를 쥔 것은 자신 밖에는 없지만, 그 열쇠를 찾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약간 옆길로 새자면, 여자로서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한동안 밤길을 다니기가 찜찜해진다. 책 속에서도 나오는 얘긴데, 그저 제 3자로서 흉악범죄의 소식을 접하는 것과 '나도 어쩌면 그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듣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몇 다리 건너 아는 여자아이가 뉴스에 나오는 흉악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약자로 산다는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다. 밖에서 만취하도록 술을 마시지 못하고, 인적 드문 밤길을 가게 되면 뛰듯이 걷고, 혼자 있을 때 배달음식을 시켜먹지 못하고, 혼자 택시를 타면 통화하는 척을 하며, 낯선 남자와 단둘이 엘레베이터를 타면 긴장한다.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해도 이런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이런 불편에 대해 보다 존중하고 배려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또, 이같은 조심성의 부족이 결코 희생을 용인할 정당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는 점은 수도 없이 강조해야만 한다. 서람들의 선의를 믿는 순간 끔찍한 악의의 피해자가 된다는 건 너무도 슬픈 일이지 않는가.


# 책 속에서 #

1권 p.298
문득 신이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사건의 범인을 잡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놈이 잡히더라도, 분명 놈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다. 범인 또한 사회의 희생자라는 논리로. 거기에 반론을 펴는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이 세상에는 그런 희생자들만 가득하다. 신이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짜로 싸워야 할 '적'은 누구인가?

2권 p.343
누군가를 향해 손을 내밀고 내가 곁에 있으니 괜찮다고 말을 거는 순간에, 그는 다른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처음부터 한 인간은 없다. 처음부터 힘있는 인간은 없다. 누구든 상대를 받아들일 결심을 하는 순간에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권 p.415
실종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쪽에도 절망과 희망은 동시에 찾아온다. 어느 날 절망이 머리 위를 덮쳐 온갖 불길한 영상을 펼쳐 보이다가도, 그 다음날에는 희망이 날개를 펴고 내려와 딸이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는 환영을 보여주기도 한다. 거의 상상력의 자가중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3권 p.263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 정말 웃기는 이야기지만, 사실이 그래."

3권 p.485
"진실은 아무리 멀리까지 가서 버려도 언젠가 반드시 되돌아와. 그러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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