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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 - 잘해주고 상처받는 착한 사람 탈출 프로젝트
한경은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11월
평점 :
엘레베이터에서 큰 아이가 소리를 빽 지른다. 서러움이 울컥 솟아오른 목소리다.
"엄마는 나를 미워하는거 같아!"
아이를 얼른 안아줬다. 사랑한다고 수습했다. 등을 쓸어주었다. 하나도 안 밉다고.
엄마한테 미움 산 것 같다고 느꼈던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유치원 등원 시간. 바쁘다. 1분, 2분 사이로 유치원 차를 놓칠지도 모른다. 큰아이는 동생과 스티커 놀이를 시작한다. 몰입한 사이 옷을 입히고 양말을 신겼다. 머리도 빗기고 스카프빕 똑딱 단추도 채워줬다. 이제 출발하면 되는데...!
"저 오늘 공주할거에요."
기껏입힌 바지와 셔츠를 벗고, 원피스와 스타킹으로 갈아입겠다고 한다. 안 된다. 신발 신을 시간만 촉박하게 남았다. 하지만 아이는 떼를 쓴다. 시간 부족에 마음이 다급해져 아이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늦었잖아! 빨리 안 와?"
거칠게 아이 발에 털부츠를 신겨 엘레베이터에 탔다. 이미 늦었다. 유치원 버스는 도착했을거고, 아이들과 선생님은 우리만 기다리고 계실거다. 초조해졌다. 다시 한 번 아이를 다그친다.
"어휴, 늑장 피우다가 또 늦었잖아. 이러지말자. 제발!"
아이는 서운함에 눈을 질끈 감고, 엄마가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해버린거다.
내가 실수했다. 야단 한 번 더 친다고 지각을 모면할 수 없다. 아침 시간에 부지런 떨어야 하는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해주었어야 했다. 아이 키우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운지. 바라볼건 엄마, 아빠 밖에 없는 연약한 어린 것에게 너무 호되게 대했다. 부모 역할은 자주 힘에 부친다. 나는 엄마로서 자주 부족함을 느낀다.
예전 같았으면 기분이 가라앉아, 혼자 땅굴을 파고 있었을거다.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한지 스스로를 채근하고, 반성했을거다.
하지만 한경은 심리치료사의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를 읽고 조금 뻔뻔하지만, 더 건강한 마음을 다잡는다.
251쪽. 최선은 최상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이다.
"내가 보살도 아니고. 지금까지 사랑 많이 줬으니까 한 번 퉁 칠 수 있지뭐.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거야. 완벽한 부모가 되는게 최선은 아니야.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부모가 최선이지."
낯짝이 두껍다. 애 한테 소리 빽 질러놓고, 최선을 다 했다니? 하지만 적당한 뻔뻔함은 정신 건강에 좋다. 이미 지나간 일 어쩔 수 없다는 마음. 대신 다음에는 조금 더 잘 해 보자는 다짐.
'완벽해야 한다'는 비현실적 기대를 놓아버리는 연습을 시작한다. 더 나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다짐 자체는 건강하지만, '기대만큼 훌륭하지 않은 내 모습'에 우울할 필요는 없다. 나는 원래 그저그런 사람이다. 자기비하가 아니다. 누구나 그저그런 사람으로 살아간다. 표준분포 범위 안에 보통 사람으로 사는게 뭐가 나쁜가.
244쪽. '훌륭한 사람' 가면을 쓰고 헉헉거리고 사느니 '보통 사람'으로 편히 숨 쉬고 사는 게 자연스럽다. 나를 나대로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나를 존중하는 일이며 사랑하는 일이다.
프로 엄마의 가면을 쓰고 살면 힘에 부친다. 프로 엄마가 되어 아이에게 헌신을 하다보면, 모성애(愛)와 자기애(愛)의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오직 엄마 자아로만 살다가, 내 목소리를 잃어버린다. 아이를 위한 일에 집중하다보면, 나를 위한 일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당신 생각은 사양합니다>는 자기 욕구를 잃어버리고, 타인의 요구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사람들을 위한 처방전이다. 주로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기 삶을 숨죽이고, 남이 좋아하는 내 모습대로 산다. 사람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기 위한 수준의 인정 욕구를 넘어서서, 오직 타인의 예쁨을 받기 위해 움직인다면 삶이 불행해진다. 나를 먼저 챙기는게 우선이다. 내 속이 단단해지면, 타인의 인정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있으면 좋은 정도의 것이 된다.
146쪽. 인정과 사랑을 '원할 수는' 있지만 '필요로 하는' 것은 경계하자. ...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하자.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받은 인정과, 타인이 좋아하는 것을 만족시켜주면서 받은 사랑은 진짜가 아니다.
엄마로서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엄마' 이미지를 구축해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을 필요 없다.
부모로서 과한 헌신을 떠올리면, 온 몸을 갈아 자식만을 위해 사는 이미지만 떠올렸다. 하지만 내 마음을 돌보지 않고, 아이에게만 전념하는 것 또한 과한 헌신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치킨 일화가 있다. 한경은 작가의 어머니는 늘 치킨을 시키기 전에 '너 치킨 먹을래?' 물으신다 했다. 딸인 한경은 작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다.
"응"
진짜 먹기 싫어서 '아니'라고 했다가는, 엄마도 먹고 싶은 치킨을 참으실테니까. 작가는 엄마 눈치를 보느라, 진짜 자기 생각을 말 할 수 없었다. 되려 엄마의 의중을 한 번, 두 번 더 짚어야 하는 감정 노동을 해야 했다.
작가는 말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사랑을 주는, 부모를 돌보는 어른 역할을 하게 되어버리면, 그건 그 아이가 어른스러운게 아니라고 말이다. 벼랑 끝에 몰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167쪽. 내가 자녀를 위해 지나치게 헌신하는 만큼 내 아이도 나를 위해 희생되고 있다는 것을.
자식을 위해 바친 부모의 시간을 여러 방법으로 돌려드리는 건 분명히 효(孝)다. 하지만 자기를 챙기지 못 해 탈탈 털리기만 한 부모를 다시 자식이 돌보느라 자기 삶을 잃어버리는건 악순환일 뿐이다. 부모 마음과 아이 마음을 균형 있게 챙기는게 중요하다. 아이가 속이 텅 빈 부모를 채워주기 위해 독립 못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야무진 엄마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식탁 위에 올라가는 여러 밑반찬 중,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 하나는 있어야 한다. 치킨이 먹고 싶으면, 그냥 치킨을 시키면 된다. 아이가 치킨을 안 먹는다고 해서, 내 치킨마저 미룰 필요는 없다.
209쪽. 한정된 경험이나 특정한 능력이 내 전체나 실체는 아니다.
오늘 아침 아이에게 소리 빽 질렀다고 해서, 엄마로 살아온 50개월이 못난건 아니다. 나는 마음이 급해지만 버럭하기도 하는 면도 있다. 조곤조곤 따뜻하게 훈육하는걸 잘 못 한다. 하지만 평소 아이들에게 상냥하게 말하고, 시간이 허락하면 넓은 자연으로 찾아가며, 좋은 책들을 구해다 읽어주며, 양질의 식사와 깨끗한 집을 마련해준다. 이런건 나의 장점이다.
211쪽. 그저 그런 세상에서, 그저 그런 나 자신과 친하게 지내보자.
완벽하지 않은 보통 엄마다. 그저 그런 사람이다. 약간 뻔뻔한 자세로, 스스로가 그저 그런 사람인걸 인정하고 나면, '못난 엄마'라는 죄책감에서 한결 놓여난다. 그렇게 생긴 마음의 여유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난다. 뭐 어떤가. 완벽한 엄마가 되려는 기적을 바라는거 보다 훨씬 편안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