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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조국 교수. 딸아이가 '더 잘 살게' 도운 것일까,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살게' 도운 것일까.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교수의 청문회였다. 쟁점은 주로 조국 교수 딸의 갖가지 특혜였다. 동양대 교수의 표창장 수여 주체. 영재교육원 봉사활동 진위. 인턴십 논문 제 1저자 자격. 고려대 수시 합격. 한 국회의원은 청문회 자리에서,
"위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분노합니다. 왜 일까요?"
라고 말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질 검증 자리였는데, 마치 법무부 장관의 딸, 아내 청문회 같았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관심있게 지켜봤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쏟아지고 또 쏟아지는 언론보도 때문이다. 두 번째로 검찰 수사 때문이다. 검찰은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교육 기회 균등'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교육 기회 균등'이란, 아빠가 조국 교수든, 아니면 내 두 딸의 아빠처럼 초등교사든, 아이가 똑똑하고 실력 있다면 누구나 좋은 기회를 누릴 수 있음을 말한다. 어린 소년, 소녀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부모의 소득 아닌 자신의 실력을 갖춰야 하는 사회 말이다.
리처드 리브스가 쓴 <20 vs 80의 사회>에서 말하는 것과 같았다. 소득 상위 20%와 나머지 80%가 공정한 기회를 갖지 못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금수저와 은수저는 세대를 반복하며 금은수저가 되지만, 동수저와 흙수저는 마찬가지로 세대에 걸쳐 부유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배경은 '미국'이다. 바로 교육의 '기회 사재기' 때문이다.
(리처드 리브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소득 상위 20%의 평균 소득이 한화 1억을 넘는다고 하던데, 한국은 어떨까요? 재미로 찾아봤습니다. ^^ 한국에서 소득 상위 20% 가구의 2018년 기준 평균 연소득은 세전 1억 3천 521만원이었습니다. 커트 라인이 아니라 '평균'이에요다. 커트라인은 좀 더 낮을 것입니다.)
즉, 조국 교수 가족이 '교육 기회 균등'을 어겼다고 이야기 하려면, 그들이 돈과 권력으로 교육을 기회 사재기 했어야 한다.
150쪽. 내 아이가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잘사는 것을 도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원이 유한한 사회에서는 한 아이의 상황이 향상되면 불가피하게 다른 아이의 상황이 악화되기 때문이다.
... 자신의 아이를 돕는 행동과 다른 아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 사이의 구분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후자가 바로 기회 사재기다.
... 기회 사재기는 가치 있고 희소한 기회들이 반경쟁적인 방식으로 분배될 때, 즉 분배가 개인의 성과와 관련 없는 요인들에 영향을 받을 때 발생한다.
교육의 기회 사재기는 무엇일까? 중상류층이 좀 더 시간과 돈이 많아, 아이에게 헌신적일 수 있는 상황일까? 아니다. 기회 사재기는 '반경쟁적인 방식'이어야 한다.
70쪽. 우리는(중상류층 아빠들) 집에 와서 칵테일을 마시는 게 아니라 아이들 숙제를 도와준다.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마티니가 아니라 만다린(중국어)이다.
리처드 리브스는 중상류층 부모들이 자녀에게 헌신적인게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회사에서 퇴근 후, 소파에 드러누워 TV 보는 아빠, 엄마 말고 아이들 영어 숙제 도와주는 부모를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리처드 리브스는 모든 가정이 '퇴근 후 마티니가 아닌 만다린을 봐줄 수 있는' 양육환경을 개선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조국 교수 사태의 경우, 부모가 자녀를 위해 헌신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돈과 권력, 즉 불법적으로 아이를 고려대에 입학시켰어야 한다. 검찰 수사가 나오지 않은 지금은 조국 교수가 '기회 사재기'를 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조국 교수 딸이 똑똑한건 분명하다. 불법적인 경로로 유출된 조국 교수 딸아이의 성적표를 보면 알 수 있다. 한영외고 시절 외국어 과목 5개 중 4개 만점, 토익 990점에 이어 토플과 SAT 점수까지 너무나 출중했다. 헛똑똑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국 교수 부부는 딸아이가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준 것일까? 아니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준 것일까?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할 수 있다.
노력해서 중상류층이 되었다고 해서, 덜 노력한 나머지 사람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져도 될까?
다만, 시끄러운 이번 사태에서 생각해 볼 점은, 두 가지다.
먼저 한국은 '교육 기회 균등'한 사회인가? 부모가 바쁘거나, 건강하지 못 하거나, 혹은 경제적 여력이 부족해도, 아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사회일까? 리처드 리브스의 표현에 따르면, '어른들에게는 능력 본위 원칙이 적용되지만,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사회인가?
129쪽. 강건하게 능력 본위적 시장을 허용하되, 아니 촉진하되, 그와 동시에 시장이 인정하는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는 적극적으로 평준화하자는 사회제도를 마련하자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어른에게는 능력 본위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리처드 리브스가 말했던 것처럼, '능력 본위 사회'가 좋은 것일까? 리처드 리브스는 누구나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나라를 위해, 중상류층 20%의 세금을 나머지 80%의 양육 환경 개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심히 노력한 20%가 혜택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말이다. 누구나 20%에 들어가기 위해 무지하게 애쓰는 이유는, 그렇지 않은 80%의 삶이 너무 팍팍하기 때문이다.
112쪽. 아이가 상위 20퍼센트에 계속 있게 하고자 하는 부모의 절박함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21세기에 중간층과 하층 젊은이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보면서 느낀 두려움 때문이다. 직업의 불안정성, 임시직과 계약직 위주의 일자리, 의료 보험 부재, 아웃소싱 같은 것들말이다.
리처드 리브스도 알고 있다. 80%의 삶이 그다지 순탄치 않다는 걸 말이다. 80%의 일자리는 정규직이 아니고, 의료 보험 혜택이 없고, 하청 업체다. 정말 열심히 노력한 20%만이 '정규직'과 '의료보험', 그리고 '안정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걸 누려야 하는걸까?
굉장히 미국적이었다. 한국과 정서가 달랐다.
141쪽. 생애 첫 20년 사이에 생기는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는 화목하고 안정적인 가정, 헌신적인 양육, 양질의 교육 환경 등 중상류층 아이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것의 상당 부분을 더 많은 아이들이 누리게 해야 한다는 의미다.
리처드 리브스는 중상류층 아이들이 누리는걸 더 많은 아이들이 누려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본질은 '의자 뺏기 게임'이다. 2~3개의 의자를 놓고 10명의 아이들이 경쟁한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누구나 공평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음악이 끝난 후 2~3개의 의자에 앉지 못 한 아이들은 탈락이다.
그리고 20%의 세금으로 80%에게 '방문 양육 서비스'나 '양질의 교사 제공'이 이뤄진다고 해서, 중상류층과 나머지 사람들의 교육 환경은 같을까? 아니다. 한국에서 이미 수차례 경험하지 않았나. 과외를 없애거나, 학원 마치는 시간을 조정하고, 영아에게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제공해도, 중상류층은 또다시 '더' 많이 아이들에게 투자한다.
한국에서 누구나 유치원은 저비용으로 다닐 수 있지만, 영어 유치원은 누구나 다닐 수 없다. 우리는 높은 경쟁률을 뚫어 교대에 입학 후, 승진에 관심 많은 열혈 교사들이 벽지에서 근무한다. 양질의 교사는 고루 분포해있지만, 대도시의 부유한 아이들은 양질의 공교육 교사들과 공부한 후, 또 양질의 사교육 선생님을 만난다. 같이 줄넘기도 넘고, 창의 미술도 하며, 여러 악기를 배운다.
새벽까지 공부를 하는 아이도, 잠을 충분히 자는 아이도, 어른이 되어 큰 불편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새벽까지 공부한 아이가 좀 더 나은 삶으로 보상 받아야 마땅하지만, 잠을 충분히 잔 아이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