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것은 신탁 과정이었다. 물론, 신화이기 때문에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이야기겠지만 실제로 그리스 사람들은 무슨 걱정이나 고민이 생기면 델포이에 와서 신탁을 받았었다.
신화 속에서 존재하던 일이 실제로도 일어나게 됐고, 그 신탁 내용을 그들은 철석같이 믿어 시행을 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 신탁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며, 정말로 아폴론이 퓌티아를 통해 신탁 내용을 전달하는 것인가.
신탁 과정은 이렇다. 먼저 카스탈리아 우물에서 목욕을 한 뒤 아폴론의 첫사랑인 다프네가 나무로 바뀐 월계수의 잎으로 만든 관, 곧 월계관을 쓴다. 그리고 월계수로 장식된 삼각대에 앉는다. 이 삼각대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아폴론에게 만들어 준 것이다. 이 삼각대는 땅속 깊숙이에서부터 틈이 난 곳에 놓여 있는데, 지하의 동굴에서 발산된 이 '증기'를 마시면 무아경에 함몰되어 영감을 얻고 아폴론의 예언을 읊조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틈이 진짜 있는가와 그 증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지질학자와 고고학자들이 델포이에 가서 조사를 했다. 조사를 해보니, 신탁 장소 아래의 단층을 통해 지하에서 발생하는 에틸렌 등 여러 기체가 땅 위로 솟아 나오는 현상을 발견했다.
퓌티아는 '에틸렌'을 마셔서 무아경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들의 운명을 점치는 기적을 성취하기 위해 지상의 물질인 증기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종교를 과학에 접목시킨 셈이다. 이 수수께끼가 1996년에 지질학자, 고고학자, 화학자, 독극물 학자 등 네 명의 공동 연구에 의해 과학적으로 설명된 것은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사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