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안녕들 하십니까
강이수 외 지음 / 창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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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질문하고 경청하며 함께 듣고 생각하는 능력을 키우며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과 실천이다."

페미니즘의 현황, 특히 현재 대학 내의 페미니즘 현주소는 어디인가, (오래 전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명명한 것과 별개로) 이제 막 페미니즘 저서들을 찾아보기 시작한 입장에서 무겁지 않게 톺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유사한 고민을 가진 여성들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음이 좋았고, 사회학,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주의를 연구하고 공부해 온 여성 리더들의 페미니즘 견해를 엿볼 수 있어 유의미했다.


본 저서에서 제시한 개념 중 가장 주목했던 것은 "페미니스트 번아웃".


"여성들은 넘쳐나는 여성혐오에 맞서기 바빴고 내집단 결집을 위해 이견의 제시가 금지되는 상황을 맞기도 했으며 강고해 보이기만 하는 젠더 관계 앞에서 '페미니스트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했다."


페미니스트 번아웃, 그러니까 페미니즘 이슈나 운동에 마음 쓰는 일이 버거워지는 지점을 나는 꽤 자주 겪고 있다. 특히 뉴스기사를 볼 때,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여성혐오적 언어를 건네받았을 때 더욱 그렇다. "페미니즘이 개인의 부분적 위치를 성찰하는 도구로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지만 계속되는 젠더 폭력 소식 앞에서 나는 자꾸만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때론 회피하기도 하고, 과거를 미화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본 책에서는 "지식과 경험을 끊임없이 오가는 귀추적 사고의 과정은 페미니즘에서 언제나 공동으로 이루어진다"(위의 책, 49쪽.)고 말한다. 말하자면 페미니즘의 가능성은 대학이든, 광장이든 결집이 가능한 공간에서 "다양한 여성의 경험을 경유할 때 더 정확해"지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의 고민은 개인의 고초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 충분히 공유되고 논의될 수 있는 여성사회의 염증 같은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예컨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여성혐오 범죄 소식에 피로함을 느끼는 마음, 여혐 논란이 있는 남자아이돌을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 학내 성폭력 문제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는 마음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나는 내가 다니던 대학이 "자신의 경험을 지식으로 설명해내는 과정에서 공동의 지식을 찾고 생산할 수 있"을 만한 공간으로 만들지 못했음에 깊이 통감하는 바이다. 내 동기들과 후배들과, 더욱 건강한 방법으로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었을 텐데. 본 책에서도 계속해서 언급하듯이 총여학생회를 비롯한 학내의 다양한 여성 단체, 즉 여성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공부할 수 있는 고민의 장이 사라진 데에는 기득권을 등에 업은 안티페미니즘의 정서가 교내의 불안전함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불안전함이란, 주로 기득권을 가진 남성이 자신의 위치, 혹은 지위의 박탈을 두려워하는 비현실적 믿음, 또는 그럴 것이라고 믿어 주는 지배적인 남성중심적 사고로부터 비롯된 성차별이다. 이는 다음의 담론과도 결부되는 이야기다.


"대학 자체가 진리를 추구하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남성중심적 의사결정과 참여, 지식의 위계 설정이 이뤄지는 젠더화된 조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페미니즘을 통해 대학을 비판적 지식의 생산과 실천의 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과제로 제안한다."


이 책의 2장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 듯이 오늘날의 대학은 "대학 서열화와 기업화를 통해 경쟁력을 꾀하려"는 "기업의 조직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는 대학이 "오늘날 여자대학의 공학 전환을 둘러싼 논쟁에서 여실히 드러나듯 경제적 수익성을 우선하는 기업의 조직 논리, 학생들을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 구성원이 아니라 소비자로 국한하는 관점, 지식과 공간의 남성중심성, 여성들의 요구와 페미니즘을 세상 물정 모르는 이들의 치기 어린 투정으로 간주하는 왜곡된 관념 등을 통해" 운영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를 따르는 집단에서 성평등기구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강이수 교수는 이 같은 실정이 "천박한 실용주의 가 대학을 지배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제도나 평가 기준에 따라 기구는 만들어져 있지만,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담론을 논하는 학문적 공간은 계속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학생들이 제대로 된 여성학, 여성주의를 공부할 수 있을리 만무하고,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명명하기에도 공포스러운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당장 나의 모교만 해도 그렇다. 성평등기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쉽게 알 길이 없고, 에브리타임에서는 '페미'가 조롱의 언어로 사용된다. 융복합 교육을 추진한다는 빌미로 인문사회대학의 순수학문들은 모두 글로벌, 글로컬이라는 이름 아래 통폐합되었고, 제대로 된 인문학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소실되어 가고 있다. 자본주의 경쟁 논리를 바탕으로 한 "계급화된 대학 사회"는 "정치권에서 이대남에 주목하고 젠더갈등 운운하면서 또다른 불평등을 은폐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세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그저 연애 대상으로만 취급되는 여성들이, 사회계급에 굴복해온 여성들이,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이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젠더불평등, 젠더기반폭력은 젠더갈등이 아니다. 더불어 이는 개인만의 문제도 아니다. 나는 작년 10월부터 이어온 인권영화제 활동을 통해 내가 겪어 왔던 젠더폭력, 불평등의 경험을 나누고 연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로서 받았던 불이익, 학생으로서 경험했던 위계 기반 폭력 등의 인권 침해 현장을 소소하게 발화하기도 했다. 개인으로서 저항하려고 애쓸 때보다 단체 내에서의 결합을 통해 나는 연대 받고 연대할 힘을 더욱 강력히 부여 받곤 했다. 본 저서, 『페미니즘, 안녕들 하십니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운동의 강렬함이 늘 한결같을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자리에 남은 불씨는 필요한 때에 다시 불붙"어 나가고 있음을 본다." "색색의 포스트잇이 이어져 색색의 응원봉 불빛으로 얽혀간다." "이 다채로운 연대의 물결이 캠퍼스의 봄을 다시금 꽃피울 시간이다."

나는 또다시 이어졌던 시간을 감각하고 나와 여성들의 현재를 위해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구한다"고 믿어보려 한다. 앞으로 더 열심히 소통하고 공부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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