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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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짧은 만큼 더 애틋한 가을이다.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처음 접하게 된 특별한 계절이기도 하고. 서평단 선정 후 도서가 제공되기 전 이미 SNS를 통해 올해 김승옥문학상 수상자 라인업이 대단하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 내가 좋아하는 배수아의 소설도 실려 있고, 좋아하는 스타일의 제목이 대상작으로 걸려 있기도 해서 기대가 엄청났다. 나는 한 단어로 이루어진 제목을 좋아한다. 김춘영, 바늘, 채식주의자 등등등…….

 일단 본 리뷰를 작성하는 이 시간, 아직 완독하진 못했고…… 마지막 황정은의 소설을 1/3 정도 읽은 상황이라는 점, 미리 밝힌다. 말하자면 모든 작품을 언급하지는 못한다는 것. 그렇지만 황정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도 흥미롭게 읽었으니 조만간 무사히 완독하게 될 것 같다.

 이전의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이하 작품집)을 읽어본 적이 없어 보통 어떤 기준으로 수상작을 선정하는지 아는 바가 없었다. (애초에 김승옥 작가의 글도 읽어본 적 없으니…… 부끄럽) 그래서 이번 기회에 디지털순천문화대전 사이트 좀 찾아봤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면서 탁월한 감수성을 무기로 단편소설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개척한 김승옥을 기리면서 제정된 문학상이란다. 내가 아는 김승옥의 작품은 무진기행, 내가 훔친 여름정도. 아진심 왤캐 아는 게 없지 물론 읽어본 적도 없다. 정진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일단은 본 문학상이 훌륭한 단편소설을 쓴 작가에게 수여되는 상이라는 건 알겠다. 나야 뭐 그 정도의 훌륭함을 가려내고 톺아볼 수 있는 식견이 부족하니 자세한 리뷰는 어렵겠지만, 일단 간단하게 인상적이었던 작품들 위주로 짧은 감상문 정도는 내보일 수 있겠다.

 

김춘영. 1980, “광부들의 노동쟁의로 촉발되었던 사북항쟁을 모티브”(p.38)로 한 소설. (사북항쟁이 정확히 어떤 운동이었는지 몰라 찾아봤다. 사북항쟁은 우리나라 최대의 민영탄광인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의 광부와 그 가족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어용노조에 항거하며 4일 동안 사북을 점거한 사건”(지역N문화, <탄광 소설들(회색도시, 내 사랑 사북, 사북탄광)>, https://ncms.nculture.org/coalmine/story/3804)이다.)

 본 소설에는 화운령사건속 피해자들과 시간을 공유함과 동시에, 그들의 피해 사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나와 면담 중 일부의 질문으로부터 회피했듯, 과거를 침묵하는 주인공 김춘영이 등장한다. 화운령 산중턱에 은둔하다시피 존재를 숨긴 이유는 아마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몰려오는 죄책감 혹은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방식이 반타의적이라는 점, 또한 녹취와 구술 면담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먼 과거의 일은 시간이 지나면 녹슬고 지워지기 마련,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관점이 녹아들어 지극히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앞에 나타난 50대 부부와 군인들의 대화(e.g. “피아식별”(p.31))는 김춘영이 혼자서 간직해왔던 과거를 대하는 자신만의 감각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듯하다. 이는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의도하지 않아서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사북항쟁을 모티브로 하여 쓰였지만 노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깊숙이 하진 않고, 그 시절을 살아온, 어떻게 보면 관찰자의 시선에 놓인 귀한 자원을 가진 분(p.13)”으로서의 인간을 그리고 있다. 작가가 그리는 인간다운 인간이 만드는 세상 이야기가 더 보고 싶어졌다.

 

 잠시 본 작품집에서 불호를 느꼈던 소설 속 요소에 관해 말하겠다거푸집의 형태(이하 거푸집)에 등장했던 어린 여자의 존재돌아오는 밤(이하 돌밤)에 등장하는 세 남자. 나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서사적 긴장감을 주기 위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제삼자의 존재가 달갑지 않다. 개인적으로 좀 동화적인 작위성을 느끼곤 한다김춘영의 경우에도 어떻게 보면 훼방꾼이라고 느껴질 만한 인물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로 서사적 긴장감을 위해 배치된 도구로서 작용한다. 반면 거푸집의 여자와 돌밤의 세 남자는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데 있어 도움을 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긴 하지만 아 뭐랄까…… 자동문 옆에 비상문을 하나 더 만들어 둔 느낌이랄까…… 나 지금 긴장 유발한다! 외치면서 억지로 끼워 넣은 것만 같은 재미 없는 클리셰 같은 것……. 소재라든가, 시의성 있는 주제라든가, ‘2025’ 작품집에 가장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 맞는데 작위적인 인물들의 등장 때문에 아쉬움이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작품은 스페이스 섹스올로지와 빈티지 엽서. 작품성과 별개로 내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이야기들이 마음을 움직였다.

 붙어 있으면 밉고 떨어져 있으면 애틋한 엄마와 딸의 이야기란언제 들어도 마음이 쓰인다. 나조차도 잘 모르겠는 나 유자와, 엄마 유자가 모르는 상처를 가지고 의연한 척 살아가는 딸 은율의 관계는 엄마의 사기 피해를 기점으로 완전히 틀어져 버린다. 모녀는 각각 다른 우주에서 언제나 떨어짐을 감각하고, 비좁은 오피스텔에서는 모순적이게도 가장 먼 곳에 있는 존재처럼 서로를 인식한다. 공간이란 참 두렵다. 나를 포근히 감싸면서도 동시에 나를 완전히 집어삼킬 수 있는 어떠한 상태가 되기도 하니까. 그 속에서 유자와 은율은 같은 꿈을 꾸며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빈티지 엽서는 나의 평생 숙제를 이야기로 풀어낸 것만 같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엽서에 담고 싶었던 숙원은 무엇이었을까. “희미해졌거나 놓쳐버렸을지 모를 꿈을 간직한 의 이야기”(p.188). 타인으로 인해 혹은 나를 둘러싼 불가피한 환경으로 인해 묻어두었던 나의 이야기를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와 빈티지 엽서를 읽으면서 해석한다는 작가의 (캐릭터에 대한) 해석이 반짝여서 읽는 내내 마음이 뭉클하고 부드러워지기도 했다. 소설과는 별개로 타인의 시간이 묻어난 빈티지 엽서를 수집한다는 거…… 오싹하면서도 낭만적인 듯.

나는 유자야.
그 말을 할 때 왜 갑자기 달콤하고 동글동글한 기분이 되었을까.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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