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을유세계문학전집 110
나쓰메 소세키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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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는 그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줄기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런던에도 갔다 온) 학문을 한 남자, 겐조'의 복잡한 가정경제사 이야기다. 겐조는 생부의 눈에도 양부의 눈에도 인간이 아니었다. 차라리 물건이었다. 단지 생부가 그를 잡동사니 취급한데 비해, 양부는 조만간 무언가 도움을 받아야지 하는 속셈을 갖고 있는 존재들의 아들이었다. '바다에도 살 수 없고, 산에도 있을 자리가 없는' 불안정한 존재였다. 이러한 그의 중간자로서의 불안은 개화기 일본인의 서양인도 아닌, 그렇다고 동양인으로 함께 묶이고 싶지 않은 어정쩡한 모습을 비유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특히 탁월하다고 생각한 문장은 다음이다. 겐조는 자신이 얽힌 원가정을 '자기 등 뒤에 숨겨진 세계'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이 학문을 하게 됨으로써 만나게 된, 자기 등 뒤에 숨겨진 세계와는 전혀 관계없는 방향의 세계. 

"겐조는 자기 등 뒤에 이런 세계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못내 잊을 수가 없게 되었다."(81쪽)

"과거의 교도소(학교와 도서관) 생활 위에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 낸 그는 현재의 자기 위에서 어떻게든 미래의 자신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방침이었다. 그가 보기엔 올바른 방침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방침에 따라 앞으로 나가는 것이 이때 그에게는 쓸데없이 늙어간다는 결과 말고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할 듯이 여겨졌다(83쪽).

이렇게 겐조의 과거의 현재와 미래의 연결은 그 이후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도 표현된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대조해보았다. 과거가 어떻게 현재로 발전해 왔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자신이 바로 그 현재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꺠닫지 못했다.......그와 시마다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바로 이 현재 덕분이었다. 그가 오쓰네를 싫어하는 것도 누나나 형과 동화하지 못하는 것도 이 현재 덕분이었다. 한편에서 보자면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낸 그는 가엾은 존재였다(259쪽)."

겐조는 과거의 자기 등 뒤에 숨겨진 세계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는 무의미하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뭔가를 이루어낸다,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였다(61-62쪽).  그는 모자라는 생활비를 더 벌기 위해 그의 학문이나 교육에 비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시간낭비로 생각했다. 

겐조는 가족들에게 무정하고 냉랭한 것 처럼 비춰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누나와 장인과 자신을 파양한 양부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는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한 이유가 다음의 문장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 자, 이 말은 해야겠는데, 나는 입으로만 논리를 가진 남자가 아니야. 입에 있는 논리는 내 손에도 발에도 온 몸 전체에 다 있다고."(279쪽).

이 책에서 겐조와 아내는 시종일관 원을 그리듯 엇나가는 관계로 그려진다. 아내는 겐조의 말을 형식적인 텅빈 이론이라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겐조가 힘주어 답한 말이 위의 문장이다. 작품에서 겐조는 학문을 한 남자로 그려진다. 학문을 한다는 건 의미를 추구하는 것과 뗄레야 뗄수가 없다. 시간도 돈도 '그냥' 사용할 수 없는. 어찌보면 학문을 한다는 것은 참 피곤한 삶을 스스로 자초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학문을 한다는 건 삶과 세계의 풍성한 의미를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진짜' 인간으로 산다는 말과 같은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자, 이 말은 해야겠는데, 나는 입으로만 논리를 가진 남자가 아냐. 입에 있는 논리는 내 손에도 발에도 온 몸 전체에 다 있다고."(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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