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괴물을 말해요 - 대중문화로 읽는 지금 여기 괴물의 표정들
이유리.정예은 지음 / 제철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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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프레임"이라는 말을 무분별하게 쓰면 그것이 전가의 보도가 되어 대상을 가치있게 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만연한 수사와 인상의 나열만으로 그것이 비평이 되진 않는다. 결국 비평이나 인문학 프레임의 용도는 사고를 전개시키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사고는 없고 수사만 있다. 수사를 제거하고 글을 보면 남아있는 건 처음과 끝의 지루한 동어반복이다. 너무 게으른 책이다.


1챕터의 뱀파이어도, 뒤에 나오는 드라큘라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본 좀비도... 그 어떤 부분에서도 결국 인문학적 프리즘은 없었다. 서브컬쳐도 없었고 괴물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수사 뿐.


서브컬쳐의 인문학적 비평이라는 말로 대중을 속이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건 "내가 많이 읽었어!"를 자랑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인문학적 행위처럼 포장되기 시작했다. 그럼 이공계열 서적을 많이 읽는 것은 이공계열적 행위인가 인문학적 행위인가.


이러한 모순을 돌파하지 못한 채, 착각은 밀고 나간다. '서브컬쳐의 인문학적 비평이란 서브컬쳐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는 것이다.'라고. 다양한 작품을 많이 이야기하는 건 오타쿠적 지식의 박람과 나열에 불과하다. 이것이 인문학적 비평의 영역으로 넘어오기 위해서 필요한 건 사고와 기반이다.


물론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 저서는 많이 읽었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읽은 작품들이 장르적 인과맥락을 따라 연결되지도 않는다. 그 연결도 굉장히 나이브한 해석이라 납득 못 할 장면이 너무 많다. 파편적이고, 근자의 훌륭한 연구나 논평까지는 아니더라도 장르적 독법의 수준까지도 내려가지 못한다. 그냥 대중 교양서적으로 나온 글들이나 인터뷰를 짜집기해서 새로운 대중 교양서적을 만든 것에 불과하다.


서브컬쳐를 알량하게 접근하는 많은 접근들이 있다. 허황된 수사에 속기엔 마니아의 비중은 넓어졌고, 지적 수준은 높아졌고, 지식을 접근하긴 쉬워졌으며, 대중과 학계의 관심도 생각보다 많이, 깊게 이루어진다. <우리 괴물을 말해요>의 가장 큰 실패는, 이미 말해지고 있는 괴물을 무시한 것이다.


지금 시대에 괴물을 발견하고 말한다는 건 이미 나이브하고 낡은 감각이다. 지금 시대에 괴물이 독특하고 특별한 것인가? 아니. 이미 콘텐츠와 미디어에 잠식된 우리는 괴물이 환상적 존재이고 리얼리즘과 반대된다는 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친밀성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지금 시대에서 괴물을 독특하고 특별한 것으로 지위하려는 발화는 그 자체로 리얼리즘에 대한 지위와 권위를 담보한다. 괴물을 '괴물화'하는 것. 그리고 괴물을 괴물화하는 그 자체가 이미 본문에 나온 괴물의 이야기를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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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18-08-2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얼리즘‘ 같은 개념어 오용은 뭐 그렇다손 치더라도.. 괴물을 ‘괴물화‘라ㅋㅋㅋ 내가 보기엔 이 리뷰야말로 수사만 있으신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웃고 갑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