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트 인 러브
마르크 레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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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그의 귓바퀴는 건반에 떨어지는 자신의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이미 러시아의 어딘가, 다른 세계에, 다른 시대에, 낭만적 격정 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 가 있었다.(35쪽)" 마치 주인공 토마의 모습처럼.


그런 모습이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여서 일까. <고스트 인 러브>에서 주인공 토마가 죽었던 아버지를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상상이 됐다.







"창문 손잡이는 그만 놔도 돼. 닫혀 있는 창문에서 추락하는 일은 없으니까.(23쪽)"


세상에 기꺼운 이별이 어디 있겠는가. 갑자기 찾아온 이별은 둘에게 전혀 준비할 시간을 주지 못했다.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는 가깝고도 먼 사이에서, 되돌아올 수 없는 관계까 되어버렸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서 아빠가 아들의 사랑을 도와 주는 이야기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왠걸. 내 예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육체를 갖고 있을 때 이루지 못한 사랑을 찾기 위해 영혼의 모습으로 아들의 앞에 나타난 아버지라니!


한국도 그렇듯, 프랑스도 아버지의 모습은 돌로 만든 벽 같은 침묵의 이미지인 걸까? 언제나 입만 열면 와르르 쏟아지는 것이 대화인데 왜 부모님과의 대화는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되돌아온 토마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말을 건다. 은근슬쩍 물어보는 사후세계에 대한 질문에는 대답해주지 않지만 말이다. "아빠가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어요. 하느님, 죽음이 아빠를 수다쟁이로 만들어 놓았으니 어찌하면 좋으리까!(104쪽)" 


돌아온 아버지는 어쩐지 생전의 모습과는 좀 달라진 듯 하다. 떠났던 생을 다시 찾은 것이 기쁜 것일까. 아니면 평생의 사랑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설렌 것일까. 아버지의 수다는 절절히 끓던 마음이 식어 그대로 굳은 아들을 프랑스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움직이는 데 성공한다.


도착과 옛사랑을 만날 생각에 설레임도 잠시, 그들(사람 한 명과 유령 한 명)의 앞에는 예상치 못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


사람은 오랫동안 바라본 것을 닮아간다. 


"이제는 작곡도 하니?"


"오래됐어요. 아무에게도 들려준 적이 없을 뿐이지……."


"왜 그랬어, 아주 아름다운 곡인데. 어떤 노래의 후렴구 같기도 하고. 제목은 생각해놨니?"


"고스트 인 러브."(306쪽)


책을 좋아하던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음악을 사랑하는 토마는 작곡을 시작했다. 세상에 내보일 준비가 되지 않았더라도 어느 새. 그것들은 점점 내게 스며든다. 그래서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는 말이 생긴 걸 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바닥에 부딪힌 빗방울 처럼 톡톡 튀어오른다. 가벼워 보이는 모습은 둘 사이를 친구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내내 미적거리던 구름이 살랑이는 바람에 밀려나면 드러나는 따스한 햇살처럼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에서 숨길 수 없는 따스한 애정이 느껴졌다.



※ 작정단 6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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