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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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는 결국 가장 오래된 서사 방식이며, 가장 보편적인 서사입니다.(46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행복함을 중독적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동감한다. 검은 활자 사이를 누비다 보면 얇아지는 뒷 페이지가 야속하다. 읽었던 모든 걸 다 기억할 수 없는 내 머리에 그나마 단편적인 감상이라도 쌓아둘 수 있는 방법이 글쓰기인데, 나는 종종 읽는 것은 쓰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읽고 쓸 수 있는 서평 활동이 참 좋다. 읽을 기회와 쓸 기회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다.


나는 특히 판타지 장르가 좋았다. 태생부터 비범한 능력을 지녔건, 아니건 그 세계는 나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오롯한 나만의 세계였고 그들의 도덕은 나의 도덕이 되었다. 선명한 이미지들이 살아 숨 쉬었다. "상상은 현실을 알고, 현실에서 출발하고, 돌아가서 현실을 풍성하게 만들(192쪽)" 어 주었다. 과거와 미래의 틈새인 현재를 사는 나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사람들은 '다 지어낸 이야기라서' 판타지를 읽지 않는다고들 말하지만, 판타지의 재료는 리얼리즘이 다루는 사회 관습보다 훨씬 영구적이고 보편적이에요. 판타지의 바탕은 정신적인 요소, 불변하는 인간의 정수, 우리가 아는 심상들이거든요. 설령 만나 본 적이 없다 해도 어디에 있는 누구든 드래곤은 알아보는 게 사실이잖아요.(47쪽)" 


처음 읽어본 판타지 소설은 학교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발견한 것들이었다. 내게 소설은 친구였고 시간이었고 세상이었다. (영상 시대로 접어들며 가장 아쉬운 점이 동네마다 있었던 책방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퇴마록, 드래곤라자, 눈물을 마시는 새, 룬의 아이들. 그리고 어스시 이야기. 세월에 곰삭은 두뇌는 내용을 잊었지만 특이했던 작가의 이름 만큼은 간직하고 있었는데, 어슐러 르 귄의 삶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볼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뻤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1장, 강연과 에세이, 어쩌다 내놓은 조각글들.


2장, 책 서문과 작가들에 대한 글 모음.


3장, 서평.


소설 작가들의 에세이는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다른 소설에 대한 글을 읽어보는 일은 서문에 소개글이 대부분이었다. 작가가 바라보는 장르 문학과 다른 소설에 대한 글들이 너무 궁금해서 나는 서평 부분 부터 읽었다.


책 속 책들의 이야기는 세헤라자데가 그의 왕에게 살기 위해 바친 천일야화를 떠오르게 했다. 그 이야기들은 연애, 범죄, 여행 등 여러가지 주제를 품고 있었고, 마치 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기도 했다.


한 권의 책은 하나의 세상과 같다. 한 작가가 쓴 책이어도 다 같지 않다. 그러다보니 같은 작가에 대한 다른 소설의 평가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녀는 번뜩이는 재치와 날카로운 이성으로 책에 대한 비평을 썼다. 평가를 부탁 받는다면 냉정한 비판을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그녀는 그런 내용도 솜씨 있게 적어 놓아 감탄했다. 행간을 읽을 뿐 아니라 작가까지 깊게 탐구하는 열정에 탐복했다. 나도 앞으로 책을 읽을 때 문자 아래에 깔아 놓은 작가의 말을 이해하려 애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평 파트가 끝난 뒤에 그녀가 작가들의 공간에서 생활한 일주일의 기록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컴퓨터 화면으로 작업할 때와 다르게, 작업에 완전히 몰두하면서도 주위 세계에 열려 있는(508쪽)" 체험을 한 점이 부럽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장소에서의 일주일.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안온한 시간 속에서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기회가 아닐까. 나는 고요한 시간을 참 좋아해서 집에서 TV를 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있는 곳의 층간 소음과 벽간 소음이 적응되지 않아 꽤 힘들었다. 그녀의 일주일을 함께 하면서 잠시나마 내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떨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인간 공동체의 핵심 기능은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삶이란 어때야 하는지,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웠으면 하는지에 어느 정도 합의하고, 그다음에는 우리와 그들이 우리 생각에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데 있습니다.(25쪽)"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진정한 목적은, 이전 세대로부터 전승되는 것을 익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읽고 사유함으로써 산란했던 정신을 모아, 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손을 맞잡는 것이다. 



※ 황금가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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