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시대 여행처방전 - 지금은 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시간
이화자 지음 / 책구름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행은 내가 떠나던 것이었다. 복잡하고 산란한 도시를 떠나 힐링을 위해. 맘 맞는 사람과 함께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다양한 면을 발견하기 위해.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해.


나의 첫 해외여행이 떠올랐다. 들썩 하고 북적대는 공항에서 처음으로 면세품을 수령하던 순간의 설레임. 첫 여행이자 4개월의 인턴 생활을 위한 것이었다. 어린 날의 치기라고 해도 좋았다. 실제로도 '어떻게든 되겠지.'하며 떠난 것이었다. 한국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먼저 와 닿은 것은 다른 언어로 적힌 간판을 보기 전, 비행기에서 내리며 폐부로 스며든 눅눅한 공기를 느꼈을 때가 아닐까 싶다. 눈으로 보고, 냄새로 맡기보다 먼저, 숨을 들이켰다. 올라탈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낯선 얼굴의 승무원들이 환영 인사를 했다.


그 후 10년. 사람이 운전하지 않는 자동차가 다니고, 내 방 침대 위에서 전 세계 사람과 소통하고, 내 목소리에 대답하는 AI가 있고, 드론으로 배달을 하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내 방에서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뜻밖의 재난災難이 찾아왔다.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는 상황은 타인의 온기를 쥐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게 했다. 사람 간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자라나고,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도 2주라는 시간적인 거리가 생겼다. 방역 수칙이 강조됐다. 그래서 여행은 우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치명적인 전염병에 의해, 혈연은 찢어 지거나 송진처럼 굳었다. 대면하는 자리에는 손소독제와 마스크가 예의가 되었다. 언제든 보던 가족들을 만나는 것을 자제해야 했다. 그럼에도, 세계 곳곳에서 마음이 소통하는 새로운 방법이 생겨났다. 그런 장면을 볼 때면 목에서 울음이 끓었다. 몰아내도 밀려오는 파도처럼, 우리는 언택트 시대로 내밀려졌다.


여담이지만, 이 '언택트(untact)'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생긴 신조어라고 한다. 컨택트(contact)의 반대어로 통용된다. 너무 자주 쓰이고, 굳어져 버려 당연한 듯 사용되어 이 말이 콩글리쉬라는 것을 우연히 듣고 더 놀랐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코로나로 인해 생긴 '공항장애(공항에 못 가서 생긴 병)' 치료차 떠난 국내 여행"


밖으로 떠날 수 없다면, 우리 나라 안에서 색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이 책에는 저자가 탐구하고 발견한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소가 실려있다. 지금 당장 떠나라는 말이 아니다. 비대면, 비접촉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 상황이 언젠가 끝나기를 바라며, '공항장애'가 발병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준비해 보자는 것이다.


웅진, 통영, 신안, 강화, 연천, 한탄강, 제주, 속초, 인제, 고성, 양주, 양평, 안양, 양양, 속초, 부산, 고창, 진안, 안주, 영주, 파주, 춘천 등. 24가지 장소에서 우리나라에서 만나보지 못했던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저자는 걷고, 빠져들고, 감상한다. '미인도'라는 이름이 붙은 비진도, 한국의 '섬티아고' 소악도, 소금꽃이 피어나는 섬 '신의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호로고루성', 유네스코에서 세계지질공원에 선정된 '한탄강', 치유의 공간이 된 박물관을 거닐었다. 지명들이 어떻게 그렇게 아름답고 적확한지. 섬 뿐만 아니라 산, 강, 공원, 사찰, 축제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을 비롯한 카페와 건축물. 나만 알고 싶은 장소들을 숨김없이 모두 내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사진은 사진집을 보는 것처럼 풍광명미가 실린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찍었을까 싶을 정도로 자연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지 않고 저자 본인이 직접 걸으며 하나씩 사진을 담아온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언젠가 내가 저곳에 간다면 눈 앞에 마주할 것 같은 경치가 선연했다.


바다에서 짭쪼름한 냄새가 느껴지고, 녹음에서 시원한 산바람이 살랑였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동네 책방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통영 '봄날의 책방'사진을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과 나무 냄새가 났다.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이 내는 소리가 부서졌다. 통영은 다른 어느 곳보다 내가 있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이어서 절로 몸이 근질거렸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건 지금 여기 당신과 내가 존재한다는 것. 행복이란 비 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있다는 것(Epilogue)"


[지금은 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시간] 이라는 부제목이 참 와 닿는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꿈은 가장 어두운 한밤에 꾸는 것이다.




※ 책구름 출판사 서포터즈, 「책구름지기」 1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