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이 무엇인지는 좀처럼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소설을 쓰고 싶다. 물에 빠져 죽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어딘가에 가닿을지는 알지 못하지만, 필사적으로."(72쪽)


소설가의 문장들은 어쩜 이렇게 감정이 풍부할까. 끝끝내 쓰지 못해 아무것도 싹틔우지 못하더라도 좋다. 창작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쓰고 나서야 느껴지는 것들도 있다. 내뱉어야 되새겨지는 마음도 있듯이. 이 산문집을 읽기 전까지 나는, 요즘 유행하는 수필집들이 가볍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코끝에 와닿는 향취가 달랐다. 빵이 구워지는 달콤고소말랑한 향기가 점막으로 스며들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케이크, 식빵, 티라미수, 마들렌, 메론빵 같은 익숙한 빵들과 사과머핀, 침니 케이크, 그리고 델리만쥬의 발걸음을 멈추는 냄새가 달콤했다. 자허토르테, 구겔호프, 트로페지엔, 바움쿠엔, 아마레티 처럼 지역적 특색이 느껴지는 것들도 있었다.


그리고 잘 구워진 작가들이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거나 받기도"(122쪽) 하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기 위해선 스스로를 충만히 사랑해야"(148쪽) 한다는 다정한 말을 건네주고 싶은. 


빵과 소설이라니. 신선한 조합이기도 했지만, 뭔갈 먹거나 마시면서 책을 보기보다 온전히 책에 집중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에게는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목처럼 다정한 문장들이 어색한 마음마저 모두 감싸안아주었다.


작가님이 얘기하신 소설가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문장으로 단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가에게도 자신의 글에 확신이 없는 시절이 있었다니. 그는 "소설이 상상력의 산물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삶에서 비롯"된 글이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싶다면 삶을 집요하게 관찰하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수십 년 동안 작품을 써왔던 사람도, 오늘 하루의 일기를 쓰는 사람에게도 글은 평등하다. 모두에게 어렵다. 아마, "삶이 불가해한 것인 한 소설 쓰기 작업 역시 언제나 어려울 수밖에 없"(100쪽)을 것이다. 게다가 잘쓰기 위한 것에는 지름길이 없다. 삶에도 그렇듯. 언제나 묵묵하게 제 자리에서 관찰하고, 적으며 쓰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아갈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아주 가끔, 그런 순간을 만날 때가 있다. 글자가 머리로 이해되기 전, 문장들이 내 마음속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힐 때의 그 저릿한 느낌. "오페라"라는 케이크는 과거의 내가 포기했던 것이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새롭게 배워보고 싶은 것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피아노가 그렇다. 그런데 작가님도 피아노에 대해 그런 기억이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그저 음악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기쁨에 매혹되어 건반을 누르고 또 누르던 그 아이"(134쪽)였던 작가님은 예고치 않은 이별에 의해 피아노와 이별했다. 나의 경우는 진학을 하면서 피아노와 멀어지게 됐다. 5살 때부터 다니던 피아노 학원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며 그만두게 되었다.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예식장에서 한 쌍의 부부를 탄생시킨 적도 있었던 선율이었다. 그로부터 스무 해가 넘게 흐르면서 많이 퇴색되었지만, 지금도 가끔 그 음악을 흥얼거리고는 한다.






"세상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당신과 나는 반드시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고 고독과 외로움 앞에 수없이 굴복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렇더라도."(222쪽)


나이가 들어서도 꼭 하고 싶은 일을 꼽자면, 나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 그렇다. 이상하게도 활기가 돋아나고 생명력이 충만할 시기인 20대 때는 창작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 오히려 인생의 빛깔이 다른 색으로, 가을의 단풍처럼 점점 무르익어 가는 나이라고 생각했을 때 타오르기 시작했다. 보통은 나이가 들수록 하고 있는 것에만 점점 집중하게 된다던데. 


퇴근시간이 다가 올수록 내려앉는 검은 하늘 사이로 가로등의 불빛들이 점점이 빛난다. 힘들고 어두운 인생에서 마주친다면, 잠시나마 길목을 비춰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 작정단 6기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